2011-05-07 10:00

이호영칼럼/ 한진텐진호 납치모면과 해적할증료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지난 4월21일 우리의 국적선사 한진해운의 6500 TEU급 컨테이너선 <한진텐진>호가 아덴만근처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줄 알고 온 국민이 한진해운 임직원들과 함께 가슴을 졸이고 있을 때, 일반인들의 반응은 “아니, <삼호주얼리>호 납치 석 달 만에 또?” 하는 것이었다면 해운·무역전문인들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컨테이너선들이라면 해적할증료를 받아가며 대처하고 있을 텐데, 정말 당했을까?” 하는 것과 또 하나는 “만일 ‘인질을 구하기 위해 돈 주는 협상’을 한다면 해적과 협상불용을 선언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에 내린 행정명령과 관련해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하는 두 가지 점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결과는 같은 날 늦게 “납치모면. 승무원과 화물, 선박 모두 무사. 우리 해군함정 호위 하에 정상운항복귀” 로 알려져 전 국민이 환호의 박수를 쳤지만 차제에 국적선사의 해적대처능력, 해적할증료, 오바마의 행정명령에 관하여 정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해적할증료(Piracy Risk Surcharge)

이는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위험이 있는 해역을 항행하는 선박의 해적피습의 위험에 대비해 해운선사가 하주들에게 부과하는 할증료인데, 해운회사는 이 돈으로 위험에 대해 보험도 들고 승무원과 선박, 화물을 보호하기 위해 배안에 요새화된 피난처(시타델), 무장경호원탑승 등의 보호책을 마련한다. 해적할증료는 선사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소말리아해적이 극성을 떨고 있는 아덴만을 통과하는 경우 대략 TEU당 44달러에서 55달러 정도인데 우리의 한진해운은 낮은 수준인 TEU당 44달러를 부과하고 있다.

해적의 피해로 인한 위험은 선원과 선체, 화물, 모두 근본적으로는 해당 보험으로 진보되는 것이지만 해적할증료는 하주가 선사에게 내는 돈이므로 이 돈을 받는 선사로서는 해적으로부터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해야 돈을 받는 선사로서 하주에 대한 약속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이번의 <한진텐진>호의 경우를 보면 한진해운은 이 약속을 훌륭하게 지켜서 해적 피습 시에 요새화한 시타델로 대피해 해적이 스스로 포기하고 물러갔으므로 선원, 선체, 화물 모두 무사했으니 믿을만한 선사로서의 신뢰도를 높인 것이며 대해적대처 역사상 좋은 선례로 남을 것이다.

이 문제는 약 3개월 전의 <삼호주얼리>호가 피랍되었을 때 한국의 해군함정이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해적을 소탕하고 선원전체와 선박, 화물을 지켜낸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한진텐진>호를 습격한 해적들도 피난처를 찾을 수 없게 되자 황급히 회선해 버린 것도 ‘한국 배이니 한국 해군이 조만간 나타날 것이므로 도망가야 되겠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받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결과가 실제로 그렇게 됐으니 이는 우리나라의 국격을 다시 한 번 높인 쾌거이며, 한국 배를 건드리면 한국 해군이 반드시 온다는 이 사실이 우리 해운의 보호막이 되고 또한 국민 모두에게 국가를 믿게 하는 좋은 사례가 됐다 하겠다.

둘째, 오바마의 ‘해적과 인질 몸값협상금지’ 행정명령

2011년 4월13일 발효된 오바마의 행정명령은 ‘선주들이 해적들에게 몸값을 주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몸값을 주고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원들을 풀려나게 하는 개인이나 기업, 해외지사에 대해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할 뿐 아니라 미국운항도 금지’하는 조치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이 조치가 발표되자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납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선사들이 우회항로를 선택하면 결국 운임률를 올릴 수 밖에 없고, 해적할증료와 보험료의 추가 인상도 피할 수가 없게 되니 해적으로 인한 위험부담이 금전적으로 엄청나다는 소리가 커지게 됐다. <삼호주얼리>호의 경우도 협상에 의하지 않고 ‘무력 인질구출’이라는 카드를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이번에 <한진텐진>호의 경우에 만일 선원이 인질로 잡혔다면, 그리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 청해부대에 의한 무력제압이 어려웠다면 어찌 할 뻔 했을까 하니 <한진텐진>호의 모면사건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점에 있어서 한진해운의 CEO나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그리고 박상운 선장을 위시한 선원들, 해적할증료를 받은 선사로서 적절한 대처를 한 한진해운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고 한편으로는 믿음직한 국적선사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석해균 선장 및 선원들의 저항정신과 <한진텐진>호의 박상운 선장을 중심으로 평소에 연습했던 매뉴얼대로 일사분란하게 상항에 대처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해기사의 수준을 전 세계에 과시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을 인질로 잡으면 한국정부가 나서서 후한 몸값을 지불한다는 인식이 퍼져 세계 도처에서 한국인 인질사냥이 성행했는데 아덴만 여명작전이래 <한진텐진>호의 경우처럼 “한국인은 저항정신과 대비가 철저하고 한국배가 공격당하면 타협을 모르고 용맹한 한국해군이 반드시 온다”는 신화를 믿게 될 때, 우리의 해운산업이 세계에서 무사히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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