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31 16:00
기획/코레일·물류업계 갈등 점입가경
코레일, 선사·포워더 대상 마케팅 강화…CTCA ‘공정위 제소’ 발끈
물류기업 철도수송 진출도 모색…정부 ‘경쟁체제 도입’ 검토
●●●지난해 7월 철도수송 전환보조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8개월여가 흘렀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제도 도입 이후 지난해 시범사업기간 동안 62만2천t의 화물을 도로에서 철송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말했다. 보조금도 예산 25억원 중 11억원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컨테이너물류 부문에서 이 제도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코레일과 기존 철도물류기업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철도공사는 철도물류기업들의 고객사들에게까지 마케팅을 확대하고 있고 물류기업들은 공정거래를 해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코레일은 지난해 7월1일 체결했던 한국철도물류협회 컨소시엄과의 협약을 2달 만에 해지했다. 운송사들이 두 달 연속으로 목표물량을 채우지 못한 까닭이다. 당시 코레일은 컨테이너 수송부문의 경우 단일기업 형태로 협약을 맺으면 운송사간 철도물량의 수평이동(교차물량)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해 컨소시엄 형태로 사업에 참여토록 했었다. 수도권-부산 구간에서 16곳, 수도권-광양 구간에서 11곳의 물류기업들이 철도물류협회를 ‘간판’으로 컨소시엄에 참여했다가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코레일은 철도물류협회와의 협약 해지 후 철도물류기업들의 외면 속에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범한판토스 삼성전자로지텍 하나로티엔에스 현대해운 국보 삼익물류 세방 천일정기화물 등 8곳과 협약을 새로 맺을 수 있었다. 기존 철도물류기업 중 다시 시범사업에 참여한 곳은 국보 삼익물류 세방 천일정기화물 등 4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포워더들로 채워졌다. 포워더들의 경우 종전까지 철도물류기업들의 고객사(화주)였던 까닭에 화주가 직접 코레일과 계약을 한 형태가 된 셈이다. 코레일은 이 협약에선 컨소시엄 방식이 목표물량 달성에 어려움이 크다는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단일운송사 협약 방식으로 전환했다.
보조금 산정 개별협약 방식으로 전환
이 같은 상황에서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시범사업기간 동안 제기된 문제점들을 보완한 ‘개정 전환교통 협약에 관한 규정’을 3월30일 공포했다.
개정된 고시의 핵심은 기준물량 산정방식을 단순화하는 한편 그 기준을 완화했다는 점이다. 종전 기준물량 산정방식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엄격해 전환교통 활성화에 제약요인이 돼 왔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기준물량이 ‘직전 3년간 평균 수송량 또는 직전년도 수송량 중 큰 값’에서 ‘직전 3년간 평균 수송량’으로 변경됐다. 기준물량 기간 중 전환교통보조금을 지급한 물량이 있을 경우 해당 물량의 20%만을 인정한다는 내용도 삭제됐다.
보조금 단가 산정방식도 대폭 바뀌었다. 종전엔 일률적인 요율표 방식으로 보조금을 산정했다면 개정된 고시는 협약사업자별로 협상해 결정하도록 했다. 화물별·노선별로 수송 특성이 서로 달라 평균적인 보조금 단가로는 전환이 불가능한 구간이 존재한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종전 보조금 단가는 수도권-부산 5만4천원, 수도권-광양 3만6천원이었다. 보조금단가자문위원회도 폐지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규칙 개정으로 보조금이 사업자별로 달라질 수 있다. 단가를 책정할 때 증빙자료를 제출토록 할 계획”이라며 “협약사업자의 개별적인 물류여건이 반영돼 전환교통에 참여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 고시는 또 목표치를 초과달성했을 경우 최대 30%까지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종전엔 보조금 조정기준에 따라 초과물량의 10%까지만 인정하는 식이어서 물량 전환 효과가 크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복잡하게 도식화된 ‘전환목표 달성률별 보조금 지급물량 조정기준’은 삭제됐다. 또 수송모드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경우 보조금의 50%까지 선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철도·연안해운 수송으로 인한 손해를 미리 보전해 줘 전환교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개정 규칙에 심사결과 등을 타인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보 보호조항을 신설, 협약 내용의 외부 유출을 차단하는데도 신경을 썼다.
정부는 올해 전환교통보조금의 예산을 50억원으로 정했다. 이중 철도 부문 예산은 30억원이 책정됐다. 특히 올해부터 보조금 예산은 전액 국고에서 지원돼 철도공사의 부담이 줄게 됐다. 지난해 시범사업에선 전체 예산 25억원 중 철도공사가 7억5천만원을 내놨었다. 정부는 내년과 내후년엔 철도수송 전환보조금 규모를 57억원 110억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코레일, 글로벌 선사 6곳과 MOU
코레일은 정부의 제도 개편이 마무리되자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특히 보조금 지급기준이 완화된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예전엔 한진이나 대한통운 세방 등 철도물류기업들이 마케팅의 대상이었다면 최근엔 선사와 포워더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코레일은 3월22일 오후 서울사옥에서 선사 6곳과 ‘친환경 국가물류체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엔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적선사 2곳과 머스크라인 APL 짐라인 에미레이트쉬핑 등 외국선사 4곳이 참여했다.
MOU에서 양측은 철도·해운 연계수송체계를 구축하고 국가물류비 절감에 기여하는데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철도공사는 도로운송물량의 철도전환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철도인프라를 공유할 계획이다. 선사는 내륙운송사의 철도수송을 장려하는 방법으로 철도공사에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큰 틀에서 철도물류 활성화를 약속한 셈이다.
코레일은 또 같은 날 한국국제물류협회 회의실에서 포워더들을 대상으로 전환교통보조금 설명회를 열고 사업 참여를 독려했다. 코레일은 4월1일부터 20일간 사업자 모집공모를 진행한다.
코레일의 공격적인 행보에 한진 삼익물류 세방 천일정기화물 대한통운 등 전통적인 철도물류기업들이 발끈하고 있다. 전환교통보조금제도 도입 이후 코레일이 “단골고객을 홀대하고 있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여 온 이들 기업은 코레일이 자신들의 고객들에게까지 영업을 확대하자 시장질서를 흐리고 있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CTCA) 15개 회원사는 코레일을 공정거래위원회나 감사원에 정식 제소할 방침이다.
CTCA측은 ‘독점사업자’인 철도공사가 물류까지 직접 관여하게 되면 철도물류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적자에 허덕이던 자회사 코레일로지스가 지난해 말 47억원 유상증자한 것을 두고 철도공사가 코레일로지스에게 운임할인을 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코레일로지스가 적자 걱정 안하고 저가 영업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한 물류업계 임원은 “전환교통협약 고시엔 운영사업자(코레일)가 물량이 늘어난 만큼 운임을 인하하도록 적시돼 있음에도 운임은 안 내리고 나랏돈을 갖고 시장질서만 교란하고 있다”고 코레일을 비판했다.
“철도수송사업 진출 정부 승인이 관건”
ctca는 선사나 포워더들은 지금까지 CTCA 소속 운송사들을 통해 철도물류를 진행해 왔기 때문에 코레일이 이들 물량을 신규 유치한 것이라기 보다 자신들의 고객을 빼앗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명의만 바꾼 이들 기업의 교차 물량을 코레일이 신규물량으로 판단해 보조금을 지급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신규물량의 경우 ‘철송실적 없음’을 증빙하는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는 코레일 주장에, 운송사들은 제출서류의 진위를 코레일이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되묻는다.
CTCA 회원사 한 임원은 “회원사 임원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최종 의견을 결정한 뒤에 공정거래위원회나 감사원에 제소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제소 시기는 4월 초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철도물류기업들은 철도공단이 지금과 같이 시장질서를 교란할 경우 자체적인 철도수송사업 진출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민간회사들이 사유화차 700량 가량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기관차만 구입해서 연결할 경우 철도수송에 나서지 못할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사유화차 보유량은 한진 220량 삼익물류 150량 천일정기화물 120량 대한통운 50량 정도다. 물류기업들의 이같은 계획은 선로가 철도공사가 아닌 철도시설공단 소유인 데다 철도사업법상 복수사업자 진출을 허용하고 있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결국 정부의 승인 여부가 물류기업들의 계획이 현실화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해양부 철도운영과 관계자는 “현재는 철도공사가 단일운송사로 돼 있어 (제3의 사업자가 들어오려면) 운영에 필요한 제도들이 정비돼야 한다”면서도 “정부도 (철도) 운송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환교통보조금제도 도입 이후 코레일과 철도물류기업간 신경전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물류업계에선 철도물류활성화를 위해선 보조금 지급보다 운임할인이 더 효과적인 유인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철도공사가 보조금 예산을 운임할인 방식으로 활용할 경우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기업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철도 이용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보조금 제도 도입 이후 철도 이용금액의 0.4%를 되돌려주는 볼륨인센티브와 철도물동량이 5% 늘어날 때마다 운임을 0.5%씩 최대 2.5%까지 할인해주는 증수송인센티브를 없앴다. 또 블록트레인(전세형 고속화물열차) 할인율도 10%에서 9%로 축소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을 보였다.
물류업계의 이 같은 주장은 보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철도 컨테이너물동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한국철도물류협회에 따르면 전환교통보조금이 도입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8개월간 철도 컨테이너물동량은 63만5870만TEU로, 1년 전의 55만8901TEU에 비해 두 자릿수(13.7%)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2008년 7월부터 2009년 2월까지의 67만7820TEU나 2007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의 76만1834TEU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국제물류주선업계 한 관계자는 “전환교통보조금이 도로운송과 철도운송 비용의 차액만큼을 지원해주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며 “차라리 기존 철도물류기업들이 할인을 해주던 게 비용 면에선 더 저렴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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