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6 11:00

기획/ 국제해운대리점·협회 위상 제고 절실

해운대리점 역할 저평가돼…국토해양부 사후관리 시책 등 지원책 화급
●●● 2011년 우리나라 수출이 사상 최초로 5천억달러를 돌파해 무역 1조달러 시대가 열린다는 전망이 발표됐다. 1964년 1억달러 수출고를 달성한 이래 반세기가 채 못돼 무려 5천배나 훌쩍 뛴 기록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적의 소산물이다. 그 결과 1964년 세계 83위였던 수출규모는 10위권으로 올라섰으며, 41개국이던 수출 대상국은 230여 개국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수출을 위한 육송 수송로는 북이 막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해운은 수출의 중추적인 핵심역할을 도맡을 수 있었다. 특히 자동차, 조선, 전자·IT에 이어 4위의 외화가득 산업이란 점에서 해운업이 차지하는 위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국내 해운업의 태동기에 선박대리점(현 국제해운대리점)은 산업발전의 한 가운데 있었다. 1960년대 급격히 늘어난 물동량 덕에 세계 유수의 선사들이 앞 다퉈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했으며, 그들의 업무를 대행해주던 국제해운대리점들은 빠른 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길지 않았다. 1988년 하반기 이후부터 국제해운대리점업계에는 대격변이 일어났다. 본격적인 대외개방조치로 외국선사들은 유행처럼 국내 현지법인 설립에 열을 올렸다. 이로 인해 많은 대리점업체들은 설 땅을 잃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대리점사들 역시 선사들의 수수료 인하압력에 신음해야 했다.

이와 맞물려 국제해운대리점협회의 위상은 과거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추락했다. 회원사들의 협조가 미흡한데다 통계 등의 자료 발표를 담합으로 보는 시각(특히 유럽)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 미비는 협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개방화 물결에 힘 잃은 국제해운대리점업계

세계 유수의 정기선사들은 이미 국내법인화를 상당 부분 진행하거나, 완료한 상태다. 현재 세계 20대 컨테이너선사들을 살펴보면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제외한 18개 선사 가운데 MOL과 함부르크 수드, UASC만이 각각 범주해운, 동신선박, 연합해운을 대리점으로 두고 있다. 이외의 15개 선사들은 모두 국내시장을 지사 체제로 개편했다.


마상곤 전 한국국제해운대리점협회장(협운그룹 회장)은 선주들이 비용이 덜 들고 업무의 효율성이 향상되면 대리점을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법인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리점들이 성실하고 정직한 자세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 지사 설치보다 대리점 이용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대형선사들의 현지법인화는 국제해운대리점들의 입지 축소와 점포 폐쇄를 야기했고, 살아남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제 살을 깎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심지어 대놓고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선사도 등장했다.

지난 2월 국제해운대리점협회는 발간한 정기총회 자료를 통해 영국 소재 ‘WOSHIP LTD’가 한국대리점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과다한 덤핑을 요구했음을 공시하고, 대리점들의 엄정한 대응을 촉구한 바 있다.

수수료율이 시간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A대리점 관계자는 “과거에는 할증료(surcharge) 등을 모두 포함한 운임에서 5% 가량 수수료를 받았지만, 현재는 이거 저거 다 떼고 순수 원운임에서 5%의 수수료를 받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B대리점 관계자는 “10년 전에는 원운임의 10% 가량의 수수료를 받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며 지금은 5% 가량을 수수료로 받고 있다”며, “대리점 시장은 완연한 레드오션으로 시장 진입도 부정적이지만 신규 영업활동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국제해운대리점업계가 위축되자, 협회 역시 위상이 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해운대리점협회 회원사 수는 과거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오다 2002년을 기점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2002년 330곳에 달하던 회원사는 2010년 현재 187곳으로 곤두박질쳤다. 뿐만 아니라, 회비 및 가입비 미수금도 상당해 협회의 재정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회원사의 가입보다 탈퇴가 많은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국재해운대리점협회의 역할 부재를 꼬집었다. C대리점 관계자는 “협회가 납부한 회비를 바탕으로 어떤 혜택을 주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실무 현장에선 정책 변화 등의 내용을 전달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밝히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협회가 대리점들에게 주는 혜택에 대해 협회 박태원 회장(연합해운 사장)은 2006년 ‘해운대리점 수수료에 대한 부가가치세(VAT) 영세율 적용 문제 해결’과 ‘위험화물 운반선 예선료 할증료 부과 문제 해결’ 그리고 최근 불거진 ‘선박운항 경비(선용금) 등 선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한 외국환 거래법 위반 문제 해결’ 등을 차례로 언급하며, 이런 사안들을 협회가 나서서 직접 정부에 건의해 해결했다고 해명했다.

박 회장은 이 같은 협회의 활동에 대해 “가입을 안했거나, 가입 후 탈퇴한 대리점들도 함께 혜택을 보는 부분”이라며, “회원사들이 그 동안 받은 혜택들은 인식하지 않고, 납부 회비만 아깝게 생각한다”며 일부 그릇된 시각으로 협회를 바라보는 대리점들을 꼬집기도 했다.

해운대리점 수수료에 대한 VAT 영세율 적용 문제가 불거져 세금폭탄을 맞았던 한국머스크는 당시 국제해운대리점협회가 전면에 나서 문제가 됐던 사안을 해결하자 “앞으로 협회에서 발을 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반면, APL코리아와 케이라인마리타임코리아는 ‘협회무용론’을 이유로 협회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현지법인화가 진행되며 국제해운대리점협회보다 ‘외국인선주협의회’의 입김이 거세진 것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박 회장은 “국토해양부는 외교적 마찰 등을 고려해 외국인선주협의회의 의견은 신속하게 수용해 처리하는데 비해, 국제해운대리점협회의 의견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주요 안건 회의 뿐 아니라, 해운계 주요 협회 중 하나인 선주협회를 부르는 자리에도 초대하지 않는다”며 협회 홀대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외국인선주協·대리점協 위상 반전

국토해양부는 국제해운대리점협회와 관련한 인터뷰 요청에 대해 ‘내년 예산안 책정 업무’를 이유로 거절했다. 관련 통계 요청에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회원사수 정도 뿐”이라며, “협회에 문의하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답변을 피했다.

국토해양부는 현재 국제해운대리점협회가 통계자료 취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협회는 각 대리점이 통계자료 제출에 대한 협조가 미흡한데다, 이 같은 자료들의 발표에 대해 유럽 등에서 담합의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짙어 통계자료 취합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최근 국제해운대리점협회는 현 상황 타개와 위상 제고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협회는 가입사들의 회비를 20~31.3% 인하했으며, 국토해양부와의 조율 속에서 ‘등록갱신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있다. 또 요율 덤핑을 유도하는 외국선사를 공개해 대리점들의 피해를 막고, ‘우수업체 인증제’와 같은 신규 제도의 도입을 통해 회원사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특히, 등록갱신제도가 도입되면 대리점 등록은 대리점협회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또 해운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3년마다 1번씩 대리점들의 현황을 파악해(등록갱신) 대리점 업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매출이 낮은 대리점들은 퇴출시켜 경쟁력 제고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협회는 등록갱신제도 도입으로 위상이 다시 강화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상곤 전 국제해운대리점협회장은 “협회를 존중하고 따라줘야 협회의 위상이 세워지고 대리점들의 권리 행사나 문제 해결에도 어려움이 없는 것”이라며 상생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 10일15일 국토해양부에서는 ‘해운대리점 발전 방안’ 추진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선 ‘서비스 우수업체 인증제’ 도입이 현실적 실익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의문과 새로운 규제 및 비용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겹쳐 추후 다시 검토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등록갱신제도’ 도입도 곧 시행될 것이라는 말만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확한 시기는 지금까지도 결정난 바 없다. 또 관련협회 육성에 관한 논의는 지방해운대리점 등 업무 위탁 대상 및 방법 검토 요망이란 추상적인 결론만을 남기고 끝났다.

국토해양부의 2010년 계획에서 국제해운대리점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협회와의 공조를 통해 국제해운대리점업계를 살리는 것은 2시간의 회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외국인선주협의회가 아닌 내국인, 즉 국민을 위한 신속한 행정처리가 아쉽다. 국토해양부는 최소한 대리점 관련 자료 확보는 아니라 해도 국제해운대리점협회가 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최근 통계자료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에 대한 지원을 구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대리점업계는 표류하고 있다. 협회도 과거의 명성만 간직한 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의 상생만을 강조할 때 해답은 없다. 정부의 정책을 바탕으로 한 지원과 관심이 절실한 때다.
<황태영 기자 tyhwang@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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