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물량 성장 둔화에도 블록트레인은 ‘휘파람’
●●● 우리나라 수출물량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전국 항만의 9월 컨테이너 물동량(추정)은 20피트 컨테이너(TEU) 154만6천개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달 142만7천TEU에 비해 8.3% 늘어났으며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던 2008년 9월보다는 2.8%(4만2천TEU) 증가했다.
선사나 물류기업들의 실적도 항만 물동량에 비례해 눈에 띄는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철도 화물수송실적만은 회복속도가 더뎌 업계의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9월 누적 컨테이너 수송량은 69만2722TEU로, 지난해 같은 달 59만3816TEU에 비해 16.7% 증가했다. 하지만 2008년 실적에 비해선 여전히 두 자릿수의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8년 같은 기간인 94만4882TEU와 비교하면 73.3% 수준에 머물렀다.
전반적인 철도물류의 부진 속에서도 블록트레인(전세형 화물열차) 실적은 긍정적인 모습이다. 2005년 컨테이너 철도수송물량 95만6807TEU 중 블록트레인이 실어 나른 물동량은 2만9744TEU로 3%의 점유율에 그쳤다. 불과 4년만인 지난해 블록트레인 수송량은 24만5444TEU로 전체물량인 79만9617TEU 중 31%를 차지하면서 급격히 늘었다.
운송사들은 일종의 전세열차 개념인 블록트레인을 운행하지 않으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 일반컨테이너열차로 수송되던 화물까지도 블록트레인으로 옮겨 실어 이용률을 높여왔던 터다. 물량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매출액도 덩달아 증가했다. 블록트레인 매출액은 2005년 23억원에서 지난해 225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블록트레인 덕분에 코레일은 이래저래 ‘싱글벙글’이다. 블록트레인 서비스가 물량과 매출 증대에 한몫하고 있는데다 달마다 고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어 일반컨테이너열차처럼 물량 변화에 맞춰 화차 조정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운송사들도 일반열차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열차를 빌려 운임경쟁력을 갖고 운송할 수 있어 블록트레인을 이용하고 있다. 블록트레인 임대료는 기본 화차 33량을 기준으로 할 때 일반컨테이너열차 운임보다 32%가량 저렴하다.
하지만 블록트레인이 매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운송사들은 블록트레인으로 운임경쟁력을 얻기보다 오히려 철도운송시장이 탁해졌다고 말한다. 특히 비판의 칼끝이 코레일의 물류자회사인 코레일로지스를 향하기도 한다.
A운송업체 관계자는 “코레일의 자회사가 블록트레인 운임으로 화주 영업에 뛰어들면서 운송사들이 누렸던 차익이 줄어들어 일반 컨테이너열차운임과 별 차이 없게 됐다”며 “운송사의 수익이 줄고 화주의 물류비만 줄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레일은 현재 경부구간에서 11개 노선(20개 열차)의 컨테이너 블록트레인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9개 노선으로 운행되다 지난 8월 있었던 블록트레인 재계약에서 오봉(의왕)-부산진 구간에 2개 노선이 신설된 까닭이다. 운영사는 지티씨·태림상운과 KCTC·인터지스·삼익물류 컨소시엄 2곳이다. 신설된 2개 노선은 기존 블록트레인과 다르게 하행 노선에서만 운영된다. 호조를 보이고 있는 수출화물에 대해서만 블록트레인을 쓰겠다는 운영사들의 주문이 받아들여진 까닭이다.
코레일은 컨테이너 열차와는 별도로 충북 단양 도담역을 기점으로 7개 노선의 일반화물용 블록트레인도 운영 중이다.
블록트레인 연말까지 30편으로 확대
블록트레인은 지난 2006년 오봉-부산진간 1개 노선이 처음 상용화 된 뒤 뜨거운 호응 속에 매년 확대돼 왔다. 이달 18일부터는 코레일로지스가 오봉-부산진간 1개 노선을 신설해 컨테이너 블록트레인은 총 22개열차로 늘어난다. 코레일은 연말까지 블록트레인 수를 30개 열차(컨테이너 23개, 일반화물 7개)로 확대하고 내년엔 34개 열차(컨테이너 26개, 일반화물 8개) 2012년에는 40개 열차(컨테이너 30개, 일반화물 10개)로 늘릴 계획이다.
블록트레인은 빛을 보고 있지만 전체 철도물량은 큰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철도가 떠오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도로운송에 시간 비용 등 밀리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철도수송분담률을 현재의 6.4%에서 2020년에 20%로 높이기 위해 이단적재열차 장대열차를 투입하고 야간열차를 도입하는 한편 고속화물열차 운행을 확대해 철도물류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대구-부산 간 2단계 경부고속철도(KTX2)가 개통된다. KTX2 신설로 기존 열차들은 화물수송에 대거 쓰일 예정이어서 철도물류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12월에는 경부선 삼랑진역과 부산신항을 잇는 부산신항 배후철도가 완공된다. 총 사업비 9361억원이 투입된 신항 배후철도는 밀양 삼랑진에서 부산 녹산 38.8km 구간(낙동강-진례구간 경전선 공유)에 걸쳐 올해 12월 복선철도로 완공될 예정이다. 이 철도는 처음엔 비전철로 운영되다 내년께 전철화될 계획이다.
신항 배후철도 개통으로 블록트레인도 큰 변화를 맞게 됐다. 기존 오봉-부산북항이 축이었던 블록트레인은 북항과 신항의 2개 축으로 분리될 전망이다.
신항 배후철도가 완공되면 가덕도 신항만 개발에 따른 배후수송시설 확보와 부산권 항만, 의 화물수송이 원활해지고 물류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철송장 운영사엔 코레일이 선정됐다. 부산신항 철송장은 14만5천㎡ 규모에 연간 57만3천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취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부산신항으로 들어오는 컨네이너 화물의 운송은 물론 화물의 상·하역, 보관 등 물류전반 분야에서 수익을 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철도수송 개선 정책을 두고 운송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우선 KTX2 개통 효과다. 운송업계는 대구-부산 구간의 KTX2 개통으로 기존 선로에 화물열차가 더 투입된다 하더라도 철도수송 개선엔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철도수송 정체가 평택과 조치원 대전을 잇는 구간에서 발생하는 까닭이다. 수도권에서 남부 지역으로 내려가는 모든 열차들이 평택과 조치원으로 몰려 상시적인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대구-부산 구간의 운송인프라가 늘어난다고 해서 철도수송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최근 수도권 항만이 개발되고 있어 국가물류비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운송업체입장에서는 장거리 수송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송 분담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B 운송업체 관계자는 “2003년부터 코레일로지스가 수송(영업)을 시작했음에도 철도수송분담률은 높아지지 않고 변화가 없다”며 “운송사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물량만을 나눠먹은 꼴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인프라 확대와는 별도로 녹색철도 화물 마일리지 제도와 전환교통보조금 제도를 도입하며 운송업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녹색철도 화물 마일리지제도란 철도수송 물량을 CO₂ 배출량으로 환산한 후 마일리지화해 철도운임요금에서 차감하는 제도다. 철도로 전환수송하는 경우 전체 물량에 대해 탄소 배출량 1㎏당 기본 3원을 1년간 적립해 이듬해 사용할 수 있다. 전년대비 수송 증가율이 10% 증가할 때마다(최고 30%) 추가 마일리지도 설정해 적극적인 철도 이용을 유도토록 하고 있다.
전환교통보조금은 육상운송 물량을 철도로 전환했을 경우 철도수송 촉진을 위해 정부에서 육상운송과 철도 운송의 차액을 보조해주는 제도로 올해 7월부터 8개월간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전환교통보조금 철광품목만 목표량 채워
정부는 한국교통연구원의 연구용역을 토대로 기준물량과 실적물량 목표물량이란 개념을 도입한 보조금 지급 기준을 만들었다. 기준물량은 ‘지난 3년간 연간 평균 물량’과 ‘직전 연도 물량’ 중 큰 수치를 일컫는다. 실적물량이란 협약을 체결한 기간 동안 철도로 실제 수송한 물량을 가리킨다. 목표물량은 기업이 협약 기간동안 육송에서 전환할 수 있다고 목표치로 제시한 물량이다.
실적물량에서 지급물량을 뺀 값이 목표물량의 50% 이상 도달했을 때 보조금이 지급된다. 예를 들어 운송사의 기준물량이 100이고 목표물량이 10일 경우 실적물량은 105 이상이 돼야 보조금을 지급받게 되는 셈이다.
7월1일 코레일은 유성TNS 한국철도물류협회 천일정기화물자동차와 철도전환교통협약을 체결하고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컨테이너 수송부문의 경우 단일운송사 형태로 계약이 체결될 경우 운송사간 철도물량의 수평이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해 계약을 맺도록 했고, 철도물류협회가 운송사 대표로 체결하게 됐다.
컨테이너 수송 부문에선 수도권-부산 구간에서 16곳, 수도권-광양 구간에서 11곳이 컨소시엄 형태로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철강수송의 경우 수도권-포항·광양 구간에서 유성TNS 천일정기화물자동차가 참여했다.
지원되는 보조금 규모는 40피트 컨테이너(FEU)를 기준으로 수도권-부산구간은 5만4천원, 수도권-광양구간은 3만6천원으로 각각 확정됐다. 철강 보조금은 t당 수도권-광양항 구간은 2600원, 수도권-포항항 구간은 4500원이다.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2달여가 흐른 지금 전환교통보조금 제도는 운송업계 안착에 성공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이다. 지난달 말 컨테이너 운송사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전환교통협약을 해지당했다. 운송사들이 두 달 연속으로 목표물량을 채우지 못한 까닭이다. 철도 물동량이 지난해에 비해 물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지만 목표물량에 비해선 크게 못 미친 것이다.
C운송업체 관계자는 “철도물량의 쏠림으로 인한 물량증가로 전환보조금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컨소시엄 구성을 요구했을 때는 타당하다고 여겼지만 정작 시범사업을 해보니 문제가 많았다”며 “컨소시엄 내에서 일부 운송사는 목표물량을 채워 보조금을 받을 수 조건이었음에도 컨소시엄에 발이 묶여 같이 해지당하고 말았다”고 씁쓸한 속내를 드러냈다.
운송사들은 보조금 기준 자체가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철도물량이 줄었다 해도 2008년은 물량이 넘쳐 하역하기도 힘들던 해로 3년 평균물량이 높기 때문이다.
철강 부문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천일정기화물자동차는 포항과 광양 두 구간 모두 목표물량을 채워 온전한 수송을 진행 중이다. 유성TNS는 비록 수도권-광양에선 계약을 해지당했지만 포항 구간은 목표를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25억원으로 책정된 전환보조금의 예산을 사업기간 안에 소진해야 내년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송회사들이 대부분 계약을 해지당한 상황에서 관련 예산은 상당수 남아돌 것으로 전망된다.
운송사들은 코레일이 2차 계약을 하면서 화주기업 1곳과 단독계약을 한 것도 문제 삼고 있다. 코레일은 8월1일부터 경북-부산항과 광주-광양항 구간에 대해서도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경북-부산항 구간엔 국보·코레일로지스·화성통운·삼익물류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하지만 광주-광양 구간엔 삼성전자로지텍이 계약을 체결했다.
코레일은 그동안 전환교통보조금협약에 대한 진행 일정을 철도물류협회를 통해 알려왔다. 하지만 광주-광양 구간 시범사업은 관보에만 슬쩍 관련 내용을 게재한 뒤 협회나 운송사엔 알리지 않았다. 그 뒤 삼성전자로지텍과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로지텍이 삼성전자의 물류자회사란 점에서 화주로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로지텍이 철도수송을 자체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게다가 일반 컨테이너 운송사의 경우 컨소시엄으로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다가 삼성전자로지텍과는 단독 계약을 맺은 것은 철도 운송사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특히 삼성전자로지텍이 지금까지 철도수송을 해온 적이 없기 때문에 기준물량을 정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코레일은 이를 두고 삼성전자로지텍이 그간 다른 운송사들을 통해 진행해왔던 철도수송물량을 산출해 기준물량을 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찌됐건 삼성전자로지텍은 계약 이후 괄목할만한 실적 성장으로 FEU당 8만3천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D운송업체 관계자는 “운송사들이 광주-광양 구간에 참여했다면 또 해지당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삼성전자로지텍은 3년치 평균 물동량을 적용하지 않고 신규물량이라는 이유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운송사들은 코레일이 자신들의 화주들을 가로채 갔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광주-광양간에선 이미 5개 운송사가 이미 삼성전자의 물류를 맡아 왔다. 하지만 코레일이 삼성전자로지텍과 계약을 맺은 뒤 물류자회사인 코레일로지스가 수송을 하게 되면서 물량을 빼앗겼다는 주장이다. 코레일이 화주와 직접 계약을 체결한 것을 두고 민영화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같은 운송사 관계자는 “전자제품이 잘 팔리는 지역에 대리점을 차렸는데, 바로 옆에 직판점이 들어온 것과 같은 경우”라며 “코레일로지스가 삼성전자로지텍의 물량을 싣고 있지만 이 구간에 새로운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야해 수익을 내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운송사는 지난 7일 철도물류협회를 통해 철도공사가 직접 화주와 계약을 맺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밝히고 전환보조금 기준의 수정을 골자로 하는 건의서를 국토부에 제출했다.
E운송업체 관계자는 “만약 올해 열심히 (육송) 물량을 (철도로) 유치해서 목표물량을 맞췄다 하더라도 그 다음해엔 또 어떻게 할 거냐”며 “보조금을 한번 받는 것도 아니고 매년 이런 식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현재 보조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두고 운송업계는 철도물류 확대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두 가지 지원책 중 전환교통보조금제도는 유명무실해지고 마일리지제도만이 시행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기존 적용되던 할인정책 폐지로 지원책은 과거보다 퇴보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운송업체들은 차라리 전환교통보조금을 없애고 예전처럼 철도운임을 할인해 주는 것이 철도수송분담률을 높이는 방안이라고 말한다.
운송업계 한 관계자는 “전환교통보조금제 때문에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겪는 것보다 그 예산을 코레일에 주고 탄력적으로 운임할인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혜기자 jhjung@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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