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30 13:36

KSG에세이/ 무늬만 海技士 평생을 짝퉁으로 살며 얻은 벼슬 “해운계 甘草” (17)

서대남 편집위원
G-5 海運韓國을 돌이켜 보는 추억과 回想의 旅路 - (17)

90년8월 국세청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국제해운을 거쳐 협회의 총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겨와 필자와 함께 부장을 하다가 한발 먼저 상무직에 올랐던 박창홍 상무이사가 위동항운 사장으로 영전해 간 이종순 전무이사 후임으로 드디어 정부투하 낙하산 점령의 전례를 저지하고 오랜만에 민선 전무이사로 선임되어 협회 사무국 수장직의 영광을 안았다.

정부 부처 중에 산하 단체가 제일 많아 퇴임 공무원들이 크건 작건 간에 한자리씩을 차지하는데 물 좋기로 이름난 곳이 해운항만청이란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던 터라 외침(?)을 받지않고 제자리 점프에 성공한 건 박전무가 드물게 첫 케이스를 기록한 것이었다.

한편 임원선출을 위한 임시총회 며칠 전부터 양분된 협회업무의 한쪽 날개 업무, 조사, 국제를 묶어 업무담당 이사로 일하던 필자와 함께 다른 한쪽을 맡았던 한국해대 출신의 해무담당 K 이사가 먼저 와 있던 필자를 제치고 박상무 뒤를 이어 상무이사로 승진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고 했고 십리가 모래밭이라도 눈 찌르는 가시가 있다고 했던가? 어차피 무당이 제 굿 못하고 소경이 저 죽을 날 모르니 성격상 예각을 세우는 경쟁이나 무리하게 앞서가기를 싫어하고 직장에서도 진급이나 인사문제 같은 것에는 초연하다고 자처하는 필자였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잘 하고 있는 젊은 기자를 파격적(?) 몸값에 억지로 오라고 했던 옛 상사들은 모두 떠나 버렸으니 홀로서기를 해야 했고 그나마 예측 가능한 인사처리가 아닌 것 같아 억울했고 기분이 그리 좋을 리는 만무했었지만 까짓 것 무시하고 혼자서 안으로만 새기는 수밖에 별무묘책.

아니나 다를까? 임시총회 임원선출 안건이 상정되자 사무국 임직원은 퇴장시킨 가운데 전무이사는 떼놓은 당상이었고 드디어 상무이사 선임을 두고 준비된 전형위원들의 각본에 반기를 드는 뜻밖의 대형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하긴 20년이 넘은 당시의 정황을 지금까지도 상세히 알 수도 없고 또 알고 싶지도 않지만 당시 상황을 재구성 해보면 재미있는 사건(?)이긴 했었던 것 같다.


90年 臨總서 朴昌弘전무 뒤이어 업무담당 常務로 승진

고쟁이를 열두벌 입어도 보일 것은 다 보인다고 했듯이 믿거나 말거나 알고 보니 서울명문 S고교 선배와 해양대 출신등 학연 연고자들 중에서 영향력 있는 몇 사람이 별 능력도 없는데다가 고립무원이 된 필자를 제치자고 모의하는 쑥덕임과 물밑작전의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로서는 아침저녁 마주보는 한 조직 내에서도 세간의 남의 소리로만 듣던 일들을 몸소 체험하는 첫 케이스를 맞은 것이다. 대충 들은 바로는 전입 서열이나 취급업무의 비중을 봐서도 단연 필자가 선임 서열이기 때문에 추월인사를 할수는 없다는 의협심 많은 의리파(?) 선사의 반대의견이 강력히 제기됐고 이를 두고 갑론을박 하다가 결국은 계획에 없었던 필자 몫의 상무이사 자리를 덤으로 하나 더 만들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를 정기총회 안건으로 즉석 상정하여 만장일치로 가결하게 된 스토리였다.

상무이사 그게 무슨 큰 벼슬인지 모르지만 여하간 필자도 이사대우 근무까지 18년분의 쥐꼬리 퇴직금을 받고 해무담당 K상무와 함께 쌍벽을 이뤄 선주협회의 업무담당 상무이사로 정식등기를 했다. 군대는 대령에서 비록 한 개 짜리라도 별을 달면 수십 가지에 걸쳐서 천양지차로 대우가 달라진다는데 필자는 승용차와 운전기사에 얼마쯤의 판공비가 전부였고 그 밖엔 누구나 다 받는 매학기 자녀 학자금 지원과 대외접대비 결제범위가 좀 더 확대된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난데없는 애로사항에 부딪혔다. 당시만 해도 이미 부차장급들까지도 차량을 구입해서 자가운전을 하는게 유행이었는 데도 유독 기계조작에 소질이 없고 지독한 길치에 겁도 많아 필자는 그간 임원대우를 받으면서도 사무실 업무용 승용차만을 이용했기 때문에 장농면허가 있긴 했지만 10여년을 사진이 바랠 정도로 썩혔으니 무용지물이 될 정도로 면허 취득 후 11호차(?)만 애용했던 것이었다.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운전기사가 없으니 우선 열일을 제치고 프로급 운전솜씨로 정평있는 교회 친구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셔 ‘왕초보’란 스티커를 붙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 전진 후진과 S코스 T코스 및 주차에 이어 한동안은 퇴근 후 매일 새벽까지 도로주행 연습의 고된 야근에 코피를 흘렸다.

운전초보가 초기에 범퍼 접촉사고 정도는 헐한 레슨비라고는 했지만 사흘이 멀다 하고 필자 소속의 운전기사는 카센터나 수리공장 가기에 바빴다.

누구에게나 있을 20년 전 왕초보 시절의 기막힌 사연 하나. 어느 날 퇴근길에 비교적 한적했던 홍대 앞에서 기사를 보내고 간 크게도 성산동 집까지 첫 ‘나홀로 운전’을 시도했다가 뒤따르던 버스기사가 알짱대며 더디 가는 필자가 하도 갑갑하니 과속으로 중앙선을 넘어 추월을 하다가 왼쪽 범퍼를 치며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고서는 오른쪽 갓길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를 한 채 다가왔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 잘못을 알고 사과를 하려 내렸을 법한 버스 기사에게 되레 첫 운전으로 천지를 모르는 필자가 사색이 되어 응급결에 무조건 “죽을 죄를 졌으니 제발 한번만 봐 달라!”고 애원을 하며 달라는 소리도 않는 면허증을 불쑥 내밀었겠다.

두 차 모두 도색이 약간 벗겨진, 그것도 버스기사 과실임에도 불구하고 겁에 질려 “얼마를 보상해 드리면 되겠느냐?”고 지갑을 열어 속전속결(?)로 해결, 감지덕지하고 의기소침해서 귀가했던 기억이 문득 되살아나면 20개성상이 지난 지금에도 “그건 아니잖아?” 그때 그 버스기사를 꼭 한번 만나 대포라도 한잔 나누며 따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곤 한다. 접촉순간의 현장기억과 상황재현도 또렷하게 자신있기 때문이다.

신임 박전무도 초창기는 공무원을 지내긴 했어도 선사로 옮겨 재직시에 업무차 협회를 자주 들락거렸고 필자가 전입고참인데다가 나이차도 두어살만 위라 늘 격의없이 친히 지냈으나 위계예우는 철저히 했다. 특히 안동의 하회마을 출신이란 점을 강조했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직장도 병행하며 자수성가로 해운계의 중심에서 향도적인 역할을 다하는 민간 선주단체의 집행부 총수로 그 자리에 이른 가히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月給의 반은 욕값, 해운계 Think-Tank팀 역할에 큰 보람

유머를 아는 해학적이고 소탈한 성격이면서도 보스적인 기질도 농후해서 대 정부 중요정책 건의사항을 작성할 땐 당해업무 담당상무나 부서장이 아니어도 휘하의 참모들을 총집합시켜 놓고 함께 일하기를 좋아했다. 게다가 야행성이라선지, 하긴 근무시간에는 동분서주 외근이나 내방객 접견 등으로 차분히 아이디어를 짜내어 기안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낮에는 각자 일을 보게 하다가 퇴근 때만 되면 모조리 불러 모아 함께 문건을 작성했고 대개 밤을 새서라도 그날 완성해서 익일 아침에 제출하는 당일치기의 명수였다.

피치 못할 저녁약속이 있는 간부들이나 데이트가 있는 남녀직원들에겐 그야말로 죽을 맛이요 가혹한 처사였지만 사흘이 멀다고 야근은 다반사였다.

느긋한 성질은 한술 더 떠 아무리 급해도 저녁식사로 중국음식을 시킬 때면 고량주 몇 병은 으레 따르는 단골 메뉴이고 보니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 했고 개미들이 아무리 바삐 설치며 오가도 그중의 반은 어정대며 노는 놈이라 했던가?

시간이 흐를수록 야근에도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앞장서 일하는 사람과 구경꾼으로 양분되어 어수선하게 보이는 가운데서도 박전무는 목표 작품(?)의 마무리단계 즉 최종 드래프트의 손질은 늘 자신의 손으로 완성시키는 뛰어난 능력과 놀라운 저력을 보였다.

한편 박전무는 언제고 밤이 깊어 야근 팀들이 집에 갈 걱정에 안달을 내도 아랑곳없이 회장단회의 자료나 비중 큰 정책자료를 만들 때에는 워드프로세스로부터 한 부만 뽑아서 카피하는 방법은 결사 반대했다. 서류의 진위여부 하나에서도 충성도(?)를 시험하듯이 죽어도 오리지널 원안을 고수하다 보니 수십 페이지짜리 문서 수 십부를 프린트하려면 가뜩이나 늦은 밤이 더욱 깊어가게 마련이었다.

삐익삐익 목쉰 오리소리를 내며 완행으로 달리는 워드가 작업을 끝 낼 때까지는 막간의 유머로 브레이크 타임을 메우고도 모자라 담당 여직원들은 심야택시를 태워 귀가시켜야 했다. 그러나 집약적이고도 축적된 해운정책의 소재발굴과 민간부분 싱크탱크로서의 아이콘 제공이 고량주 한잔후의 바로 이 심야테이블에서 생산된다는 자부심은 늦은 밤 함께 기다려준 동료들과 더불어 나눠 갖는 돈보다 훨씬 귀한 샐러리맨의 알찬 보람 같아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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