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7 01:34

삼선로직스 법정관리 신청…도미노 파산 우려

벌크선 업계 고질적 병폐 용대선 사슬 구조 주요인

삼선로직스가 6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해운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로 26년째를 맞는 국내 해운업계 중견 선사로 그간 높은 성장세를 구가해 왔다는 점에서 법정관리 신청은 최근 건화물선운임지수(BDI)의 상승세로 고무돼 있던 해운업계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법정관리는 부도를 내고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회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법원에 신청, 일정기간 제3자가 자금과 기업의 관리를 대신 하는 제도다.

▲어떤 회사= 지난 1983년 9월 삼선해운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삼선을 거쳐, 2004년 현재 사명으로 정착했으며 회사 창립 이후 주력 사업인 벌크선 중심의 해상운송업 뿐 아니라 철강, 원재료 등의 수출입 무역서비스와 보세창고사업 등 외연을 확대해 사업다변화를 꾀했다.

서진해운, 보양선박 등 해운기업과 아주물산, 한국특수강, 한덕철광, 베트남 아시아메탈, 필리핀 JSTS메탈 등 철강회사, 유통기업인 바로코 등을 인수하는 한편 국제물류회사인 삼선에이젠시(현 삼선글로벌)와 경인종합금속, 물류회사 삼선링크(SLC), 수입차 판매회사인 삼선모터스를 각각 설립했다. 그리스에 현지법인 삼선로직스헬라스를 세워 선진 해운시장을 벤치마킹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삼선로직스는 현재 13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1980년대 해운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당시 구소련과 북한 등 공산권 국가에 진출했으며 1991년엔 미국이 주도한 걸프전의 군수물자 수송에 참여하기도 했다.

삼선로직스는 IMF 사태로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지난 2001년 허현철 대표이사를 선임하며 회사를 빠르게 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허 대표이사는 국적선사 간부 중 가장 단기간에 대표이사에 오른 인물이다. 허 대표이사는 사령탑을 맡은 이후 해운 시장의 호황세를 발판으로 회사 성장을 이끌며 최대 실적을 경신해 왔다.

삼선로직스는 지난 2007년 매출액 1조906억원, 순익 4564억원으로 해운업계 7위와 8위를 각각 기록했다. 매출액의 경우 허 대표 취임 첫 해인 2001년의 2483억원과 비교해 4배 이상 확대된 것이다. 사선대는 건화물선 15척(113만6005DWT), 탱크선 2척(7329DWT), 바지선과 예인선 각각 1척 등 총 19척이다. 2006년과 비교해 2배로 늘어난 규모다.

▲사세 기운 배경은= 이 같이 견실한 성장을 해왔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된 데는 시황 악화와 함께 복잡하게 얽힌 용선사슬의 영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건화물선 시황은 사상 최고점과 최저점을 동시에 찍었다. 케이프사이즈 운임지수(BCI)는 지난해 6월5일 1만9687포인트로 사상최고점에 오른 뒤 불과 반년만인 12월2일 830포인트를 기록, 사상 최저점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기간 케이프사이즈 선박 일일 평균 용선료는 23만3988달러에서 2316달러로 떨어졌다. 단기간의 시황 급락은 선사들이 미처 손 쓸 시간을 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선사들을 얽매고 있는 용대선 거래가 기름을 부었다. 선사들은 지난 몇 년간 시황이 과열되자 화물 운송사업보다 용대선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는 곧 선사간 얽히고 설킨 용대선 사슬의 굴레를 만들게 했다. 복잡한 용대선 위주의 영업방식은 시황이 호조일 땐 운송사업을 하지 않고도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지만 시황이 하락하게 될 경우 연쇄 파산을 불러올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 중견 선사 인더스트리얼캐리어 파산을 시작으로 덴마크 아틀라스쉬핑, 영국 브리타니아벌크홀딩스, 싱가포르 아르마다의 파산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들 선사들의 파산은 다른 선사들과 무관치 않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아르마다가 싱가포르 고등법원에 낸 파산보호신청 자료에 따르면 삼선로직스는 아르마다로부터 4418만달러(약 608억원)의 거래대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선로직스는 브리타니아벌크사의 채권자 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삼선로직스측도 거래 기업들의 채무불이행이 유동성 악화의 큰 원인이 됐다고 밝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선로직스가 그 동안 해운업계에서 파산 위기 1순위로 꼽혀 왔다"며 "배 빌려 주고 용선료를 못 받고 한 점이 회사가 어려워진 결정적인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삼선로직스는 영업을 잘해왔으나 용선사슬로 얽혀 있는 거래 선사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이어지면서 '흑자부도'를 맞게 된 셈이다.

아르마다의 채권자로 삼선로직스 외에 S사 2곳과 D사, H사 등 국적 선사 4곳이 더 포함돼 있다. 이들이 받지 못한 금액은 총 6879만달러(약 947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삼선로직스가 갚지 못하고 있는 거래대금도 상당한 규모로 알려져 있어 제2, 제3의 삼선로직스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삼선로직스는 유럽 해운사들에 거래대금을 주지 못해 벨기에 겐트항에 보름 이상 억류돼 있는 4만7천DWT급 프리티 플로리시호(1997년 건조)를 빼내 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삼선로직스의 채권·채무 행사가 모두 중단되고 거래 회사들의 대금 결제도 동결돼 연쇄 파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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