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05 15:19

기획/ 꽃피는 4월 건화물선 시장 흥망 분수령

철광석 가격협상 후 물량 얼마나 늘까에 촉각
선사들 연쇄 도산 공포 속 BDI 1천선 회복



●●● 건화물선 시장의 봄이 다시 찾아올까? 지난해 10월28일 1천포인트선 아래로 떨어진 이후 긴 동면기를 보냈던 건화물선운임지수(BDI)가 올해 들어 차츰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BDI는 지난 1월27일 1004포인트를 기록, 1천포인트 아래로 떨어진 지 꼭 3개월째 되는 날 1천포인트대에 다시 입성했다. 이어 1주일만인 이달 3일엔 1100포인트대를 넘어서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해운업계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5월20일 유사 이래 최고치인 1만1793포인트를 기록해 세계 해운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BDI는 반년만에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BDI는 정점 달성 이후 해운업계에 ‘독’이 됐던 중국 베이징 올림픽,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 경기침체 여파 등의 악재가 이어지며 급속한 퇴조를 보였다. 10월28일, 2002년 이후 6년만에 1천포인트선이 붕괴된데 이어 급기야 12월5일엔 663포인트를 기록, 사상 최악의 건화물선 시황을 연출했다. 5월20일치와 비교했을 때 무려 94.4%나 곤두박질친 것이다.

해운시장의 하락은 중국과 미국의 합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특히 중국은 해운 시황을 사상 최고의 호황으로 이끈 장본인이자 시황을 바닥으로까지 몰고 간 주범이 된 셈이다.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철광석 수입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 시황 하락의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5월 초 항만내 철광석 재고량이 적정 재고량의 2배 수준인 8천만t을 넘어서자 철광석 수입량을 대폭 줄이는 대신 재고 소진에 들어갔다.

올림픽 기간 동안 보안을 이유로 자국 항만내 선박 입출항을 제한하고 환경오염 방지를 명목으로 산업시설의 가동을 중단한 것도 시황 하락을 부채질했다. 여기에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불거진 금융위기가 해운시황 하락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지난해 7월말 8300포인트선을 유지하던 BDI는 베이징 올림픽과 미국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9월말 3700포인트대까지 하락했다. 불과 2달여 만에 지수가 반토막 났다.

BDI 지수의 하락세 만큼이나 해운업계도 어두운 침체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해운 시장 전반의 용선 거래가 실종됐으며 선사들은 공급 과잉을 빚고 있는 선박들을 계선하기에 바빴다.

급격한 시황 후퇴와 금융권의 자금회수로 선사들의 유동성이 빠른 속도로 나빠지면서 경영 부실이 해운업계의 큰 화두가 됐다. 우크라이나의 중견 벌크선사인 인더스트리얼캐리어(ICI)의 파산을 시작으로 덴마크 아틀라스쉬핑그룹, 영국 브리타니아벌크홀딩스, 싱가포르 아르마다 등이 줄줄이 파산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게다가 국적선사인 파크로드마저 지난해 10월말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사실상 회사 영업을 접어 국내 해운업계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BPI주도시황 득일까 실일까

이같은 상황에서 BDI 지수가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해운업계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월3일 현재 BDI 지수는 지난달 19일 이후 11일(영업일 기준) 연속 상승세를 나타내며 1148포인트를 기록했다. 1천포인트선 탈환 이후 꾸준한 상승세로 1100포인트대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같은 지수 상승세를 두고 업계는 중국 철광석 시장의 단기적인 물량 상승, 활기를 띠고 있는 곡물 및 발전용 석탄 수송시장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파나막스선박 운임지수(BPI)는 지난달 20일 이후 BDI 상승과 궤를 같이 하며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파나막스선박 시장의 상승에서 주요 수송품목인 곡물과 석탄 물량이 늘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곡물과 석탄은 먹을거리와 전력 생산의 원료라는 점에서 각각 수요가 꾸준히 진행될 것으로 해운업계는 보고 있다.

티피씨코리아 관계자는 “곡물 화물이 대서양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고 중국이 발전용 석탄 물량을 인도 지역에서 늘리고 있다”고 해 BPI가 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임종관 박사는 “중국 발전회사들이 자국내 석탄 광산회사들과 가격 협상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며 “이로 인해 거래선을 외국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BPI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물론 케이프사이즈 선박시장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오르내림을 반복하고는 있지만 케이프사이즈선박 운임지수인 BCI는 새해 들어서면서 비교적 견실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철광석 수송이 주로 케이프사이즈 선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BCI 지수 상승은 곧 철광석 물량 상승으로 되짚어 볼 수 있다.

중국내 철광석 재고량은 최근 5천만t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5월과 비교하면 3천만t 가량이 줄어든 것이다. 아직까지 철광석 재고량이 적은 수준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연초 시황 상승을 기대한 중국 철강업체들이 철광석 수입량을 일시적으로 늘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연초 들어 브라질과 호주 지역에서 중국으로 수송되는 철광석 물동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호주의 세계적인 광산업체인 BHP 빌리톤과 리오틴토가 용선 선박을 단기적으로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BCI는 지난달 중순과 춘절 연휴 기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BPI 강세가 전체적인 운임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데서 시장의 해석도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리고 있다. 지금까지 BDI는 BCI를 통해 주도돼 왔다는 점에 미뤄 BPI의 주도는 단기적인 흐름일 뿐 시황에 대세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리란 시각이 부정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와 비교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철광석은 철강산업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발전과 먹을거리는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BPI 주도에 대한 긍·부정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도 지금의 지수 흐름이 본격적인 시황 상승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는 데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선사들은 손익을 가르는 BDI의 마지노선을 2천~3천포인트대로 보고 있다. 염원하던 1천포인트선을 넘어서긴 했으나 수익성을 되찾는 수준까지는 아직 먼 셈이다.

STX팬오션 관계자는 “BDI가 1천선을 넘어서길 그렇게 기다렸지만 막상 1천포인트를 넘어서고 보니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2천~3천선이 돼야 이익이 난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케이프사이즈와 파나막스 선박 일일 평균용선료가 각각 1만7천달러와 5천달러대를 넘어섰다고 하나 운항비와 하역료, 항비 등의 고정비를 고려할 때 아직까지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업계는 일일 용선료가 각각 3만달러대, 1만5천달러대는 넘어서야 수익성을 논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만간 철광석 가격협상 스타트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빠르면 3월 늦어도 6월께가 돼야 시황의 반등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황 반등의 중심에 중국 철강 및 발전업체들과 브라질 및 호주 광산 업체들의 가격 협상이 있다.

매년 중국과 일본 철강업체들은 4월1일을 기점으로 광산업체들과 새로운 가격을 체결해 물량을 도입해 오고 있다. 철강 수입의 또다른 메이저인 일본 기업들의 회계연도가 4월부터 시작하는데서 비롯된 관행이다.

업계는 이번 협상에선 대폭적인 가격 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엔 세계 산업계를 뒤흔든 원자재값 폭등의 여파로 철강 기업들이 높은 수준으로 가격 인상을 해줬던 터라 올해만큼은 대대적인 인하를 벼르고 있다. 시장에선 일본기업들의 경우 40~50%, 중국기업들의 경우 70~80%까지 도입가격을 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철강기업들이 대폭 낮아진 가격에 힘입어 수입량을 늘리면 작년 이후 위축됐던 철광석 물량이 회복세로 돌아서고 해운 시황도 자연스레 동반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작년 시황 악화의 한 원인으로 세계 1위 광산업체인 브라질 발레사가 연초 계약을 뒤엎으면서까지 중국 철강 기업들에게 추가 인상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며 가격 갈등을 일으킨 점이 꼽히는 점을 생각할 때 올해 가격 협상 추이에 따라 해운 시황의 향방도 판가름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가격 인하가 곧 해운 시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데는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현재 전 세계 항만에서 운항을 멈추고 시황 상승 시점만을 기다리고 있는 200여척의 계선 선박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질 요량이면 이들 선박들이 무더기로 쏟아질 것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철광석 가격 인하가 반드시 해운 시황 상승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결국 해운 시황의 향방은 철광석 가격 협상 이후 물동량 상승분이 기존 선박량을 넘어서느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해운업계 위기설 가능성은

한편 해운 시황이 바닥을 친 가운데 용대선으로 얽힌 해운업계의 위기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업계의 근심을 키우고 있다. 새해 들어 1월 위기설이 제기된 이후 다시 2월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선사들이 몇 년 동안의 호황을 기반으로 경쟁적으로 선박확보에 나선 이면에 복잡한 용대선 거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얽히고 설킨 용대선 거래망으로 주요 선사 몇 군데가 무너지면 그와 거래한 선사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싱가포르 아르마다 사태가 단적인 예다. 트레이드윈즈 보도에 따르면 아르마다쉬핑은 호주와 인도의 광산 업체인 포테스크 메탈스와 아샤푸라 그룹과 맺은 장기용선계약(COA)을 해지당하면서 경영위기를 맞았다. 이와 더불어 먼저 도산한 ICI, 브리타니아벌크, 아틀라스쉬핑 등에 채권을 행사하지 못한 점도 유동성난을 부채질한 원인이 됐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은 가운데 다른 선사들로부터 받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한계 상황까지 치달은 셈이다.

문제는 한국 선사들도 아르마다와 브리타니아벌크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용선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연쇄도산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아르마다의 채권자 리스트에 S사 2곳, D사, H사 등의 국적선사가 올라있으며 브리타니아벌크와 거래한 국적선사로는 S사 2곳과 D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파크로드 디폴트 여파로 S해운과 D해운간 채무 분쟁도 업계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긴 했지만 언제 다시 이런 상황이 재연될 수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임종관 박사는 “채권 은행들이 얼마나 신속히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최악의 상황이 오느냐 안오느냐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선사들이 자사 BEP(손익분기점)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만큼 가장 적은 돈을 투자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면밀한 재무상태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 해운회사들이 대신해운을 파산으로 몰고 갔던 지난 2006년의 조정기를 겪으면서 내성을 키워온 만큼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 해운중개업체 관계자는 “작년 9월에도 런던 해운시장에 국내 대형선사들이 도산한다는 얘기가 넘쳐났지만 지금은 잠잠해졌다”며 “한국 선사들이 위기를 자체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 선주사들이 한국 해운사들을 크게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고무적”이라며 “D해운도 그리스 선사에게 (용선) 기간을 늘리고 요율을 낮추는 요청을 해 받아들여졌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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