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05 13:26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 배상책임의 정확한 이해

법무법인 세창 송해연 변호사

1. 어떤 경우에 선주의 유한책임이 배제되는가

선박소유자 자신의 고의 또는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한 손해에 관한 채권에 대하여는 선주는 책임제한을 주장할 수 없다. 즉, 선주 자신의 고의 또는 인식한 무모한 행위가 있었어야 하므로, 선주의 피용자에 불과한 선장의 고의에 의한 선박충돌이나 오염사고의 경우에도 선주는 책임제한을 할 수 있다. 선주가 법인인 경우에 선주 자신이란 누구까지 인가에 관하여 우리 대법원은 선주 자신이란 선주의 임원에 한하지는 않고 선주의 운항관리담당자도 선주 자신에 포함된다고 판시하였으며, 또한 인식한 무모한 행위는 중과실과는 다른 개념으로서 과실이 아무리 중하더라도 인식한 무모한 행위는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유조선측 또는 예인선단측의 책임제한이 배제되기 위하여는 유조선 선주인 허베이 스피리트 쉬핑사나 예인선 임차인이자 부선 소유자인 삼성중공업의 임원이나 운항관리자가 오염사고 내지는 충돌사고의 발생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현상유지를 지시하거나 사고를 막기 위해 요구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

2. “허베이 스피리트”호 선주의 고의/무모한 행위가 입증되면 피해자에게 유리한가

전혀 유리하지 않다. 이 사건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부보클럽인 SKULD P&I 의 클럽규정 30.1.8.은 조합원의 wilful misconduct (즉, 고의 행위 또는 멸실이나 손상의 개연성을 인식한 무모한 행위)가 있었던 경우에는 클럽은 보상책임을 면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1992년 민사책임협약 역시 유조선 선주의 wilful misconduct에 의하여 오염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보험자가 면책을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7조 제8항).

그러므로, 유조선 선주의 고의/무모한 행위가 입증되면, SKULD P&I CLUB은 면책이 될 수 있고, 오염으로 인한 책임은 보험회사의 지원없이 온전히 유조선 선주가 부담하게 된다. 유조선 선주는 이건 “허베이 스피리트”호 1척을 가지고 있을 뿐이므로 이 경우 유조선 선주는 선박을 매도하고 청산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래 유조선 선주(와 그 P&I Club)이 보상하게 되어 있던 약 1300억원까지 국제기금이 보상하여야 하는데, 기금협약에 따르면 이떄 피해자는 이용가능한 모든 합리적인 조치를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사책임협약에 의하여 지불받아야 할 보상금의 전액을 입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유조선 선주의 무자력)을 입증하여야 한다. 한편, 국제기금의 보상한도액(약 3,000억원)은 유조선 선주의 고믜/무모한 행위가 입증되었는지의 여부에 불문하고 변함이 없다.

즉, 유조선 선주의 고의/무모한 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 피해자에게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고, 절차를 복잡하게 하고 보상완료에 걸리는 시간만 지연시킬 뿐이다.

3. 삼성중공업의 고의/무모한 행위가 입증되면 피해자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입증된” 피해액이 3000억원(2억3백만SDR)이 넘을 경우 도움이 된다. 삼성중공업이 무한책임을 지는 경우에도 삼성중공업은 피해자에 대한 법률상손해배상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이미 배상받은 금액을 공제하고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그 피해액을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유조선측으로부터 피해보상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손해액 전액을 삼성중공업으로부터만 받겠다고 할 경우, 삼성중공업은 배상청구액중 피해자들이 유조선측에 대하여 포기한 금액을 공제하고 지급할 수 있는가와 관련하여서는 그 가부와 범위에 있어서 여러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피해자들이 수령하는 금액이 늘어나지 않는다. 즉, 삼성중공업이 어디까지 책임을 부담하든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액수는 각 피해자가 입증하는 손해액으로 제한되므로, 피해자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자신의 손해발생사실과 손해액을 어떻게 입증하는가하는 점이다.

4. 환경피해액은 어떤 범위에서 보상되는가

미국법과 달리 우리 법(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과 1992년 민사책임협약은 환경피해 자체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만 유조선측에 환경복구비용부담의무를 지우고 있다(해양오염방지법은 이와 달리 해양환경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국가에 대하여 배상청구권을 부여하나, 이 경우 청구 상대방은 기름의 “배출자”, 즉 유조선이며, 유조선에 대하여는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이 특별법으로서 우선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즉, 현행법상 유조선은 환경피해에 대하여 환경복구비용의 지급의무만 부담하는데, 만약 국가가 환경복구비용을 유조선측에 청구하는 경우에는 일반 피해자들(어민 등)이 책임제한기금등에서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이 그에 비례하여 줄어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중공업이 소위 무한책임을 지는 경우에는, 국가는 법률상의 배상의무자, 즉 배출자가 아닌 삼성중공업에 대하여도 배출의 원인책임있는 자로서 환경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법률의 해석, 오염유발물질을 생산하거나 운송하는 산업계의 부담과 환경유지의 이익간의 비교형량, 환경피해의 산정방법등과 관련하여 무수한 기나긴 논란이 있은 후에 답이 나올 것이지만, 법문상 국가가 배상청구의 주체이므로 환경피해액은 피해어민등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지급되는 것임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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