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16 10:03

美-아시아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고조

한국 '아직 여력있다'..인위적 통화가치 하락위험


고유가가 이례적으로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과 아시아에 성장은 둔화되면서 물가는 오히려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엄습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분석했다.

저널은 16일자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여력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잘못하면 내년이 스태그플레이션 문턱에 들어서는 첫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널은 그러나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 수준임을 상기시키면서 향후 성장이 둔화되더라도 이것이 인플레를 동반 진정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력이 아직은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한국도 스태그플레이션에 근접해있다는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경제학자들이 아직은 많다고 저널은 소개했다. 다음은 저널의 분석을 간추린 것이다.

지난 70년대 세계 경제를 강타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이 재발되기가 극히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그간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고유가가 이례적으로 지속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고유가가 과거와는 달리 쉽게 해결되기 힘든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UBS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배럴당 45달러를 넘는 유가는 분명히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 수준의 유가가 이어질 경우 올해 전세계 성장이 근 0.5%포인트 깎이고 내년의 경우 약 1%포인트로 감소폭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렇게될 경우 세계 경제가 내년에 향후 몇년간 이어질지 모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문턱으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아시아가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에 가장 많이 노출돼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경우, 산업이 서비스 쪽에 비중이 큰 서방과는 달리 여전히 제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산업의 석유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다.

특히 경제 규모가 큰 중국과 인도는 역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에너지 효율도가 더 떨어진다. 중국의 경우 지난 7월 인플레가 5.3%로 7년 사이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 당국이 경기과열 진정에 부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웰스파고 은행의 한국계 손성원 부행장은 "아시아 상당 지역에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성장이 장기 잠재력을 밑돌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

아시아 4위 경제국인 한국은 수출이 작년보다는 좋기는 했으나 개인 채무가 급증한 상황에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가 폭등해 7월 기준으로 소비자 물가가 한해 전에 비해 4.4%나 상승했다. 이는 지난 3월의 상승률 3.1%보다 크게 뛴 것이다.

특히 대기업의 고통이 크다. 한 예로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국내 항공수요가 15% 이상 감소했다. 화물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기는 하나 하반기 수출이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회사측은 고유가로 인해 올해 연료비 지출이 작년에 비해 4억-5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본다. 고육지책으로 운임을 5-10% 인상했지만 내년에도 유가가 배럴당 45달러 수준일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묘책이 없다고 회사 관계자는 실토한다.

대한항공 경영전략실의 우기홍 부장은 "(진짜) 문제는 연말과 내년초"라고 말했다. 경제가 가라앉으면 더 많은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 통화정책 당국도 고민이 많다. 미국이 지난 70년대 중반에 겪었던 것과 유사하다. 성장 촉진을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인플레가 우려되고 금리를 내리려면 반대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콜금리를 '전격적'으로 0.25%포인트 내려 기록적으로 낮은 3.5%로 끌어내렸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금 금리를 0.25%포인트 끌어올린 것과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

한국도 스태그플레이션에 근접한 것인가? 아직은 동조하지 않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들은 한국의 성장률이 5% 수준임을 상기시킨다. 물론 주요 동력인 수출이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 수요가 떨어져 자연 물가 상승세도 둔화될 수 밖에 없는데 한국의 경우 아직은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같은 인플레 진정의 효과가 경제에 긍정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OPEC의 증산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8천300만배럴을 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증산분이 고작 50만배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경제 성장이 둔화되더라도 과거와는 달리 유가가 상승세를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어두운 관측으로 연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 정부들이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이것이 당장에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낼지는 모르지만 동시에 소비 구매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고유가 체제에서 이런 방법은 아시아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반면 미국 수출업계에는 탄력을 받게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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