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02 17:20
택배사원 ‘오늘도 달린다’
국내에서 매일매일 달리는 사람. 주위에서 가장 쉽게 ‘물류’현장에서 뛰는 일꾼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 바로 택배 ‘배달사원’들이다. 그들의 하루 일과는 매우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보통 하루 10시간은 기본적으로 일하고, 심한 경우 명절 때는 하루 2~3시간을 자고 업무에 임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현장의 관계자 A씨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예사죠. 명절 때는 하루 2시간 자고 일한 적도 있어요. 명절 배송이 끝나면 다들 얼굴이 홀쭉해져 있습니다. 워낙 일이 고되기 때문이죠”라고 그들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기도 하다. 힘겨운 업무 중에서도 고객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며 고객들의 소중한 물품을 안전하게 배달하는 그들의 하루를 살펴보기 위해 대한통운 중부 영업소를 찾아봤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배달사원 중 한 명인 김용환 사원(34)의 하루를 밀착 취재해 봤다. <조수현 기자>
새벽 6시 30분 경
비가 부슬부슬 새벽부터 내리고 있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면 어쩌나…’하는 일말의 걱정과 함께 지하철을 내려 대한통운택배 중부영업소를 찾았을 때 이미 영업소의 아침 일과는 시작됐다. 기자가 찾아갔던 시점은 서서히 하차작업이 시작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새벽 7시
우인식 영업소장과 김우창 차장의 환대를 뒤로 하고 택배 상차 현장을 찾아봤다. 대한통운 중부영업소의 담당 구는 용산구와 서초구, 강남구 지역. 지역별로 분류를 하고 상차를 하고 있다.
오전 7시 20분
상차 작업을 위해 모든 사원들이 정신이 없다.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상황이다. 그러던 와중 오늘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김용환 사원. 대한통운 입사 후 경력 7년의 ‘베테랑 급’ 사원이다. 바쁜 와중에 잠시의 인사를 나누고 그는 다시 상차작업에 여념이 없다.
오전 8시
“커피 한 잔 하시죠.” “일 중간에 요령껏 쉬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쳐요. 따로 휴식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동료들간의 “커피 한 잔 사지?”하는 옥신각신(?)을 뒤로 하고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김용환 사원. 그는 “오늘은 물건이 좀 많은 편입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상차업무를 위해 자리로 돌아갔다.
오전 8시 10분
사무실에 올라가 오늘 배달해야 할 송장을 정리한다. 그리고 PDA로 체크! 이 기종은 대한통운의 요구에 의해 개발된 것이라 말하며 김용환 사원은 PDA로 송장의 바코드를 체크한다.
오전 8시 30분
송장을 정리하고 나서 다시 재차 배열을 하고 있다. “어디를 먼저 갈까 하는 것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소를 보고 순서를 잡는 거죠.” 아니 그렇다면 주소를 대부분 외우고 있다는 말인가? “타 지역은 좀 어렵지만 제가 담당한 지역은 다 외우고 있죠.”이게 바로 ‘짬밥’이라는 것인가? 참으로 대단하다.
오전 9시 30분
“안녕하세요? 택밴데요... 서OO씨네 댁이죠? 10시부터 12시 사이에 가겠습니다.” 송장을 보고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 주로 전화를 하는 대상은 그야말로 ‘단골’ 고객이나 신규 고객들 위주. “전화 한 분 한 분께 다 드리면 배달 엄청 늦게 떠나야 되요.” 짧은 응답이 끝나자마자 픽업요청을 위해 그의 휴대 전화벨이 울린다. “휴~ 정신없네.”기자의 입에선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오전 10시
출발! 오늘 하루 배달해야 할 물량은 110개. “이 정도면 대략 평균 정도에요.” 그럼 다른 때는 얼마나 많다는 이야기일까? “뭐 추석 같은 때는 180개까지 받아본 적도 있어요. 그럴 때는 밥 먹을 시간은 커녕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쁘죠.” 마음 속으로는 두 가지 생각이 휘몰아친다. ‘제일 고된 현장으로 가야 기사가 잘 나올텐데...’하는 기자정신 투철한(?) 마음과 ‘휴... 그래도 아주 힘들면 좀 그런데...’의 간사한 마음이 교차한다.
오전 10시 5분
첫 배달지는 서초 경찰서. 서류를 배달하기 위해 내렸다. “첫 배달물품의 크기가 하루 종일 업무의 강도를 대변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처음에 작은 박스가 배달되면 뭐... 계속 작은 박스가 나가고, 처음에 무거운 물품을 배달하면 거의 계속 무거운 물건을 배달하는 그런 식으로요...”
오전 10시 20분
두 번째 배달처는 검찰청. 분위기가 엄숙하다. 출입허가를 받기 위해 송장을 작성하는 모습을 찍으려다 기자는 경비원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잠시 수습을 하고 보니 거의 옆건물 식으로 이동간 거리가 5분도 되지 않는다. “배달처는 대개 오밀조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 몇 개 동 정도니까 이동간 거리가 길 수가 없죠.” 그래서...?
“송장 순서를 정리한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다시 배열해서 이동코스 순서대로 송장을 배열한 거에요.”
오전 10시 30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날은 사고도 많을 텐데... “사고가 물론 가끔 나죠. 주로 차끼리의 접촉사고도 있구요. 어떤 때에는 폭주족 때문에 난감해요.”
오전 11시 30분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뛴다. 그는 고객의 소중한 물건을 조금이라도 젖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자는 그의 땀흘리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해서. 그야말로 ‘뛰어야 산다’다. 기껏 뛰어갔더니 확인전화 때는 계셨던 고객이 안 계신다. “허탈하시겠습니다”하는 기자의 질문에 미소를 띠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하며 여유롭게 응수한다. 여러 번 경험해 본 노련한 고참의 여유일까?
오후 1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오후 배달 중. 함께 따라 들어간 곳은 플루트 매장.
배달 중간에 멋대로 끼어들어 사진을 찍는다. “죄송합니다”라는 어찌 보면 의례적 인사말만으로는 왠지 부족한 듯 해서 사연을 설명했더니 가게 주인이 “오~ 용환씨. 그럼 이번에 잡지에 나오는 거야? 스타됐네~”하며 기분좋게 웃어주셨다. 주인아저씨, 감사합니다!!!
오후 2시
계속 전화가 울려댄다. 픽업 요청 전화다. 몇 번 째인지 세는 것조차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중간 중간 울리는 전화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도 그는 친절하게 응답하고 약속한다. ‘역시... 프로시구나...’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오후 3시
서초동에 위치한 모 대형 아파트. 정문에서부터 제지를 당했다. 물량이 장난이 아니다. 몇 집을 찾아다녀야 하는 건지... 배달 중간에 어떤 집은 계시다는 걸 알고 왔는데 계속 초인종을 눌러도 안 계신다. 아파트 로비로 찾아가 문의하니 인터폰으로 연결해준다. 그러나 가정부 아주머니께서 계신 것. “쩝... 왜 계시면서 안 열어주시누... ” 한 번 더 올라가야 한다는 데 대해 기자의 넋두리이자 ‘투덜’(?)이다. 이 아파트 에는 유난히 대형 짐이 많았다. 세 번 이나 올라갔다 내려왔으니... 수레 가득 짐을 싣고. 음... 첫 배달이 가벼우면 모든 그날의 짐이 가볍다는 징크스는 오늘은 예외였나보다. 아니 왜 하필이면 오늘이냐고!!!
오후 3시 10분
한 동의 배달을 끝내고 트럭 뒷칸의 짐을 정리한다. 비가 오고 조금은 싸늘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김용환 사원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오후 4시
“확인전화를 드렸었는데...” 배달을 와 보니 아까 약속을 한 고객님이 댁에 안 계신다. 초인종도 없어 난감한 상황. 다시 전화를 드리니 “XXX에 넣어놔 주세요”라고 응답하셨나보다. 즉각 망설임도 없이 넣어두고 다시 달린다. 배달을 위해서...
“어떤 때 전화 연락을 드려도 전화를 받지 않으시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때는 다른 집에 맡겨 드리거나 경비원들께 맡기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때는 “나는 그 집이랑 친하지도 않은데 왜 그 집에 맡기느냐?”라고 뭐라 말씀해주시는 고객분들도 계십니다. 그럴 때는 조금은 서운하죠”라고 말하는 김용환 사원. 어찌 보면 이것도 택배 배달사원의 애환일까?
오후 4시 10분
오늘 배달의 하이라이트. 라면 박스에 가득 들어있는 김치. 어찌보면 택배사원들에게는 요주의(?) 품목. “어느 정도만 담아주셔야 되는데 우리네 부모님들은 그저 많은 게 좋은거라시면서 꽉꽉 담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나중에 부풀어올라서 터질 수도 있거든요”라고 그는 말한다. 김치가 터진다면? 난감하다. 여러분, 김치는 적당히 담읍시다! 배달하는 그 순간에도 사실 ‘빵빵하게’ 박스가 부풀어 있었다. 비닐로 한 번 덧포장을 했기에 망정이지...
오후 5시
진정한 하이라이트 배달이다. 전자센터. 짐수레로 몇 번을 올라갔다 왔다 하는데. 그래도 점포들이 가까워서 부담은 적다. 다행인 것은 원래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화물용 승강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는 점. 내려갈 때는 배달한 짐만큼의, 어쩌면 더 많은 물량을 픽업했다. 기자의 등은 이미 땀으로 푹~ 절은 지가 오래다.
오후 6시
아까 하지 못한 배달을 다시 한 번 전화 확인하고 배달한다. 고객들께 빨리 배달해 드리려고 그는 달린다. 기자도 사실 꽤 발은 빠르다고 자부했지만 김용환 사원을 쫓아가는 데는 역부족. 그리고 편의점 등에 들러 픽업 또한 병행한다.
오후 8시
배달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 차보다 배달을 먼저 마친 차량은 6대. 물건을 하차시키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는 법. 김용환 사원은 사무실로 들어간다.
오후 8시 20분
사무실로 돌아온 김용환 사원. 오늘 배달한 물품의 송장과 픽업한 송장 등을 정리한다.
오후 8시 50분
야식으로 자장면을 시켜먹다 순서가 된 것을 알고 김용환 사원은 하차를 위해 달려가 물건 하차를 완료한다. (사실 자장면을 ‘먹었다’기 보단 마셨다. 둘다 서두르는라 거의 씹지도 못하고 삼켰으니…)
오후 9시
퇴근이라도 그는 집에 가지 않는다. 대한통운 렌트카로 지친 몸을 이끌고 가려 한다. “동료의 결혼식이 며칠 후에 있어서 렌트카를 빌려주기로 했는데 고른 차를 바꿀 필요가 있어서…” 지친 몸을 이끌고 기자에게 작별을 고한다. 김용환 사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뒷이야기
택배 배달사원. 그저 지나다니거나 택배물품을 받을 때 여러 번 봤지만 사실은 그야말로 ‘별 생각이 없었던’ 기자였다. 하지만 오늘의 1일 동행취재로 많은 생각들이 바뀌었다.
김용환 사원은 배달 중간에 “그저 집은 여인숙이나 다름없게 되는 거죠”라며 씩~ 웃지만 기자의 가슴은 상당히 아파 왔다. 김용환 사원의 집은 안산. 그렇지만 아침 7시까지 와서 어떤 때는 밤 10시를 넘기는 경우도 많고 특히 추석 등 명절의 경우에는 하루 2시간을 자며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추석 명절을 보내면 다들 살이 홀쭉하게 빠져 있어요. 너무나도 힘겹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고되고 힘들어도 서비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 그러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의 배달 한 건당 허용되는 시간은 대략 5분 미만이다. 그것도 최대한 길게 잡아서다. “친절하게 고객 응대 서비스를 하려면 10분 이상은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죠. 또한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시간을 맞춰서 배달해 드리는 게 그나마 위안인 셈입니다”라고 그는 친절한 서비스의 한계가 있음을 토로했다. 그래도 가능한 한 고객의 배달시간에 맞추려 노력하고 고객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수용하려 노력한다고 그는 말했다.
택배업계 발전을 위해서 그는 우선적으로 택배업계는 전문 분야이고 체계적인 전문성이 요구된다 말했다.
“택배업이 한국에서는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경력을 감안하는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지만 일본에 비해 그렇지 못합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택배회사에서 택배사원을 모집할 때 자체 면허시험을 다시 본다고 하더라구요. 까다로운 조건으로 입사한 만큼 높은 대우로 받은 보상을 받을 거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부심이 강하죠. 그러나 우리나라 택배사원들에게는 자부심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택배사원들이 ‘배달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앞으로 좋아지겠으나 택배사원의 복리후생이 강화되고 급여가 높아진다면 아마 자부심도 높아져서 택배사원도 하나의 전문직으로 우뚝 설 수 있겠죠.”
비록 큰 대우는 받지 못하지만 프로정신으로 똘똘뭉쳐 고객의 소중한 물품을 배달하는 택배사원. 그들의 열정과 프로 정신에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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