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26 11:28
(서울=연합뉴스) 김문성기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반도체 가격의 폭락, 미국의 테러사태 여파에 따른 수출 급감으로 국내 경제의 성장세가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는 대외적인 위험 요인으로 미국의 보복전쟁에 따른 아랍권과 선진국의 전면적인 대립 가능성이, 대내적인 위험 요인으로 하이닉스 반도체 등 부실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잠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 여건의 악화로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이 발생할 수 있고 국내 부실기업의 문제로 금융 시장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경기부양 과정에서 내년 대통령선거 등 선거 국면과 맞물려 구조조정 노력이 느슨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또 30대 그룹제도 등 재벌 규제의 완화는 경기 활성화라는 단기적인 목표보다 시장경제 활성화라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것을 촉구했다.
◆경제 성장세 약화
KDI는 올해 세계경제가 1%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침체 국면을 지속하다가 내년 2.4분기 이후 회복세(2% 안팎의 성장)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경제 또한 올해에는 지난 7월 예상한 4.4%보다 크게 낮은 2.2% 성장하고 내년에는 3.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회복 시기는 내년 하반기(성장률 4~5% 전망)로 보고 있다.
이같은 성장률의 하락은 올해 2.4분기 이후 시작된 수출 급락, 특히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가격의 폭락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반도체의 수출 단가가 작년말 대비 70% 가량 폭락했으며, 현재의 폭락 수준이 지속될 경우 연간 100억달러(국내총생산의 약 2%) 이상의 무역 손실 및 구매력 상실을 초래할 것으로 KDI는 추정했다.
미국의 보복 전쟁이 미국과 아랍권 간의 전면적인 대립으로 확산될 경우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세계 경제가 심각한 불황국면에 진입하고 우리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KDI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적고 테러사건을 계기로 미국 등 선진국의 금리.재정정책이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향후 세계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재정정책은 탄력 운용
KDI는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 세계 경제와 국내 경제의 향방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상황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통화정책의 중요성에 무게를 뒀다.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안정돼 있는 만큼 추가적인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비해 금리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또 이미 집행중인 1차 추경과 향후 예상되는 2차 추경의 시차 효과를 면밀히 점검하고 올해 예산의 불용액을 최소화하며 내년 예산의 조기집행을 적극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KDI는 만약 미국 테러사태의 영향이 예상보다 심각하고 국내 소비의 회복속도가 늦을 경우 추가적인 재정재출의 확대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기업 수익성 악화가 금융시장 불안요인
KDI는 하이닉스 반도체를 비롯한 부실 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내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12월 결산 상장사의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은 작년 상반기 5.6%에서 올해 상반기 4.8%로 떨어지는 등 기업의 수익성이 경기침체와 함께 악화되고 있다.
특히,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수익성 악화로 추가 부실이 발생하는 가운데 처리 방안을 조기에 확정하지 못하고 내년으로 넘길 경우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과 맞물려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금융시장 여건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내수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고 KDI는 분석했다.
KDI는 따라서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높여야만 금융시장의 안정기조를 유지하고 주가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벌규제 완화, 기업지배구조 개선 전제
KDI는 정부의 재벌 규제 완화와 관련, 경기침체때마다 제도를 고쳐 경기를 부양할 경우 경제 시스템의 기초 질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경기 활성화라는 단기적인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충분히 사전 검토를 하고 규제완화에 따른 잠재적 위험요인을 고려해 그 요인을 최소화하는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
는 것이다.
KDI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일괄 지정하는 것보다 규제의 성격에 따라 적용 대상을 조정하고 중장기적으로 시장친화적인 대체 정책 수단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재벌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배임에 대한 처벌 강화, 정보의 투명한 공개, 사적구제수단의 확대 등 기업지배구조 관련 제도의 확립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식 불공정거래 처벌 강화해야
KDI는 최근 서울은행 매각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민영화가 국유화된 금융기관 처리의 대원칙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정부의 은행 소유구조 완화 방안에 대해서는 적격성 심사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적격성 심사를 처음 받게 되는 소유 지분 10%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KDI는 주가조작 등 금융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감독기구에 준사법권을 주는 것 외에 소송 당사자 자격을 부여해 직접 민사소송을 낼 수 있도록 허용하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을 주며 금융감독위원장의 임기를 법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불공정거래 관련자는 금융산업에서 영원히 퇴출시킬 것도 주장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과 관련, KDI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잠재적인 기금 손실과 이에따른 재정부담 규모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시행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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