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5 08:14

“국내 해운항만, AI 외면하면 세계시장서 도태될 것”

문성혁 전 장관, KASPS 세미나사 주장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내 해운항만기업들이 AI(인공지능)를 빨리 받아들이고 적용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될 거란 전망이 나왔다.

문성혁(첫 번째 사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5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열린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KASPS·회장 하영석) 국제공동학술대회에서 “해운항만산업에서 자율운항선박과 가시성, 스마트화 등 4차산업혁명 기술 대응이 가장 큰 이슈로 부상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문 전 장관은 “석기 시대가 끝난 건 돌이 다 떨어져서가 아니라 청동기가 발명됐기 때문”이라는 한 셰이크 아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 석유장관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린 지금 IT시대와 AI 시대를 동시에 살고 있는데 IT시대는 석기시대고 앞으로 다가올 AI시대는 청동기시대”라고 평가했다. 

코로나 이후 공급망 회복력이 화두

문성혁 전 장관은 이날 ‘글로벌 물류 및 공급망 재편’을 주제로 한 기조 강연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공급망물류 시장은 기존 질서의 완전한 해체와 재구성이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효율성에서 회복탄력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물류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지난 30년간 글로벌 공급망을 지배했던 최저 비용과 적시 주문 생산(JIT) 원칙에서 탈피해 공급망 위기를 줄이려고 재고를 넉넉히 확보하는 비상 대비(Just In Case)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에 생산시설을 재배치하는 니어쇼링과 프렌드쇼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조 기지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나 멕시코로 이전하는 공급망 다변화 흐름이 가속화하면서 지역 거점을 연결하는 피더 노선과 아시아 역내 노선의 중요성이 부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또 물류 환경의 기본 구조(인프라)가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디지털 ▲그린 ▲에너지 등 트리플 트랜지션(3가지 전환)이다. 문 전 장관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공급망 전체의 가시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 됐고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탄소거래제(ETS) 같은 한 환경 규제가 실질적인 무역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거대 해운사의 종합물류업 진출을 새로운 변화로 짚었다. 컨테이너선사들이 해상운송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육상 물류와 항만 터미널을 직접 운영하고 항공 철도 창고업까지 진출하는 등 종단 간(End-to-End) 통합 물류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 전 장관은 이 같은 흐름에 대응해 해운사는 공급망의 혈관 역할을 하면서 불확실성을 상쇄하는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메탄올 암모니아 등 친환경 선박을 적극 도입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비용 절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스위스 MSC나 덴마크 머스크 같이 해운과 물류를 아우르는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전략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사들이 공급망 파편화에 대응하려고 운항동맹(얼라이언스)을 재구조화해 노선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25년 4월부터 글로벌 컨테이너선 시장은 독립선사인 MSC, ▲머스크 독일 하파크로이트의 제미니 ▲중국 코스코 OOCL 대만 에버그린, 프랑스 CMA CGM이 결성한 오션 ▲우리나라 HMM과 일본 원(ONE), 대만 양밍이 모인 프리미어 등 1개 독립선사 3개 동맹 체제로 전환했다. 

문 전 장관은 항만은 AI와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하역 속도를 높이고 적체를 줄여 생산성을 늘리는 한편 수소 암모니아 등의 청정 연료 공급 시장에 진출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해수부 장관 시절 글로벌 항만운영사를 육성하려고 연구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기획재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제도적인 장벽에 부딪혀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우리나라가 해외 항만 시장에 진출하는 타이밍을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한종길 성결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 박홍균 순천대 교수는 “정부의 공급망 정책이 ①사후 대응에서 사전 탄력성 구축 ②대기업 중심에서 생태계 전체 역량 강화 ③국내 지원에서 국제 협력 연계라는 3대 패러다임 전환을 지향해야 한다”며 “특히 정부에서 50%, 산업계에서 30%, 금융기관에서 20%를 공동 출자한 탄력성 기금(SCRF)을 신설해 사전적 장기적인 공급망 탄력성을 구축하고 원자재 비축과 소부장 역량 구축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수완 동서대 교수는 “우리나라 해운항만 산업이 글로벌 선사나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와 동일한 자본과 네트워크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의 국가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현택 국민대 교수는 “요즘은 데이터를 지배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는데 해양수산 쪽엔 정보통신 분야 인재가 부족하다”며 “AI시대를 맞아 정보통신이나 데이터 분야의 전문가들을 해양수산 쪽에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故 이시형 박사 3번째 묵암상 수상

이날 묵암재단은 한국해양대학교 창업자인 고(故) 이시형 박사에게 세 번째 묵암상을 시상했다.

해당 이시형 박사는 1936년 동경고등상선학교 졸업 후 조선우선에서 승선 근무한 뒤 해방이 되자 해양 인재를 양성하고자 미 군정과 협의해 한국해양대학을 설립했다. 이후 초대와 3대 5대 7대 한국해양대 학장을 지내고 한국해기사협회 8대 13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해기 교육의 기틀을 다지고 해양강국 도약의 원천인 수많은 해양 인재를 길러냈다.

묵암재단 이화숙(두 번째 사진 앞줄 왼쪽에서 4번째) 이사장은 이시형 대표의 외손자인 이지우씨에게 상패와 상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묵암상은 지난해 3월 타계한 박현규 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의 정신을 기리는 상으로, 앞서 조정제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정연세 전 해운항만청장이 수상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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