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치솟은 연료비와 전쟁위험보험료 등이 선사들의 존폐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호르무즈 해협에 고립된 우리 선박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매우 커 국고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인현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동 전쟁과 해운·조선·물류산업의 안정화 대책’ 세미나(제15차 해운조선물류 안정화포럼)에서 “호르무즈 안에 고립된 선사들의 운임 수입이 사실상 제로”라며 “전쟁보험료의 일정 부분을 국고에서 부담하고, 선박 연료유도 내항해운과 같이 지원해야 한다”며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중동사태에 전쟁위험보험료 1100% 급등
중동 전쟁이 길어지면서 선사들의 피해액이 크게 불어나고 있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전쟁위험보험료는 1100% 급등하고 저유황유 가격은 227%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 고립된 선박 26척의 일일 손실액은 총 143만달러(약 21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중소 선사의 피해액은 월간 170억원, 연간 기준 2000억원을 웃돌아 재정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교수는 선사들의 비용 부담을 경감하려면 국고 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현재 공급망이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들어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이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선박들이 실어 나르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화학제품 등이 국가 핵심 공급망과 직결돼 긴급조치, 손실 보상, 기금, 재정지원 등의 방식으로 공급망 안정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전쟁위험보험료는 농업수산분야의 정책 보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국고로 지원할 것을 주문했다. 자연재해와 화재 등 재난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는 농업수산분야의 정책 보험을 벤치마킹해 기업들의 경영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연료유는 정부가 인상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는 연안해운의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자고 했다.
이 밖에 김 교수는 수입이 끊겨 선박금융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선사를 대상으로 상환을 유예(모라토리엄)하는 한편, 원유, LNG 등 국가전략 물자를 전시에 수송할 전략상선대(탱크선)를 구축하고 전략해기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인현 고려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 징수가 실현될 경우 공동해손 처리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3월30일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적재 원유 1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글로벌 해운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38조에 따르면 호르무즈는 모든 국가의 선박이 통과통항권을 갖는 국제해협이다. 따라서 공공 국제 수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부과금(통행료)을 부과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이란이 유엔해양법상의 의무를 부담하진 않지만 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권은 국가 관행과 법적 확신에 의해 확립돼 왔고, 국제관습법상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법 제865조에 따라 피해 금액을 선주와 화주가 분담하는 공동해손 처리가 가능하다는 게 김 교수의 견해다.
“에너지 지형 변화에 조선업 슈퍼사이클 기대”
중동 전쟁이 한국 조선업엔 호재로 작용할 거란 주장도 나와 이목을 끌었다. 환율 상승과 에너지 지형 다변화 등으로 선주들의 발주 패턴이 바뀌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초대형유조선(VLCC), 제품운반선, FLNG(부유식 생산·저장·하역설비) 등을 중심으로 일감을 늘려나갈 거란 분석이다.
안광헌 HD현대 고문은 ‘중동 전쟁이 조선업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중동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위기가 역설적으로 한국 조선의 수익성을 2000년대 초반 슈퍼 사이클 수준으로 되돌려놓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중동 전쟁은 에너지 지형도를 바꿔 놓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중동 가스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과 아시아의 수요를 따라잡고자 LNG 터미널을 확장하고 있고, 아시아는 정유 시설 가동률을 끌어올리며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있다. 카타르 등에서 가스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중동에서 호주나 미국 등으로 수급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운송 거리가 길어져 공급과잉으로 발주가 주춤한 컨테이너선의 자리를 에너지 운반선이 대체하면서 한국 조선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게 안 고문의 견해다. 여기에 1400~1500원대의 고환율도 달러로 결제받는 국내 조선사의 영업이익 극대화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원자재 가격 및 물류비 상승, 신조선 인도 지연과 발주 취소 등은 우리 조선사들이 충분히 대응하고 있어 아직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안 고문은 “계약 리스크를 많이 우려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영향을 받겠지만 아직은 큰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주제 발표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정석주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도 “조선업은 모든 선종에서 수주량이 확대되고 있고 환율 상승으로 수입이 증가해 조선사들의 매출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유 공급 차질 우려는 있지만 용접에 필요한 에틸렌 가스 등의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며 중동 전쟁이 국내 조선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황종우 해수부 장관과 이헌승, 조승환, 김상훈, 최수진 의원 등 9명의 의원과 최윤희 대한민국해양연맹 총재, 김현 세창 대표변호사, 김칠봉 SIC 부회장, 이철중 해운협회 상무, 최원준 한국선급 부사장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김인현 교수는 주제 발표와 토론에서 나온 내용을 해운협회와 해수부와 협의해 국회의원실에 제출하겠다고 말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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