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해운과 조선업 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말 중국에서 건조되지 않은 선박으로 이뤄진 전략상선대를 조성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아울러 지난달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중국과 관련한 선박이 자국 항만에 입항할 경우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입항세를 부과하는 제재를 제시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거둘 거란 관측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해기사 출신 美의원, ‘미국적 상선대 운영’법 발의
고려대 김인현 명예교수는 지난 2월24일 열린 제55회 선박건조금융법정책학회 연구회에서 최근 발의된 ‘미국의 번영과 안전을 위한 2024년 선박건조·항만 인프라법’(선박법)을 소개하면서 이 법안이 시행되면 한국 조선이 100척 이상의 수주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19일 미국 연방상선사관학교(Kings Point) 출신인 마크 켈리 상원의원(민주당)이 주도해 발의한 선박법은 미국 해운을 재건하고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10년 안에 미국 국적의 전략상선대 250척을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켈리 의원에 따르면 현재 국제 해운 시장에서 운항하고 있는 미국적 선박은 80척에 불과하다. 5500척에 이르는 중국 상선대와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미국 전략상선대는 미국에서 건조돼 미국 깃발을 달고 미국 선원이 승선하는 선박을 의미한다. 이들 선박은 미국에 들어올 때 우선 접안 등의 혜택을 누린다. 미국 정부는 해운사의 신청을 받아 전략상선대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선박이 전략상선대로 지정되면 1회 7년씩 최대 21년까지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250척을 한꺼번에 도입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한시적으로 임시선박(interim vessel)을 운영하는 계획도 법안에 담겼다. 해운사가 장래에 미국에서 지은 선박으로 교체하는 조건으로 외국에서 지어진 선박을 전략상선대에 포함시켜 2029년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우려 국가에서 건조됐거나 소유 운항하는 배는 임시선박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 교수는 미국의 선박 건조 능력이 붕괴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전략상선대 250척의 선박 중 100척 이상이 국내 조선소에서 짓는 임시선박으로 채워질 거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국내 해운사가 소유한 선박을 미국 기업에 소유권 이전부 선체용선(BBCHP) 방식으로 매각하는 것도 임시선박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 국가는 계약 기간 동안 선박을 빌려 쓰다 계약이 끝나면 국적을 취득하는 BBCHP 선박을 국적선으로 인정하고 있다.
해기사 양성을 위한 다양한 유인책을 두고 있다는 점도 선박법의 특징이다. 미국은 킹스포인트라는 상선사관학교와 4곳의 주립 해양사관학교에서 해기사를 양성한다. 이 법안은 상선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근무 요건을 채우거나, 미국적 선박에 7년간 승선하면 연방 공무원에 쉽게 채용될 수 있도록 했다. 10년간 승선하면 퇴역 군인처럼 GI법에 따라 학비 지원 등의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국의 양대 해양대학이 정원 부족 등의 여파로 글로컬대학 30에 도전하려고 통합 계획을 수립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해사당국이 미국의 해기사 양성 정책을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박금융과 관세 측면에서 선박법을 소개한 정우영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미국 전략상선대가 동맹국 조선소에서 수리할 경우 부과되는 관세가 기존 50%에서 70%로 인상된다고 소개했다. 중국 등의 우려 국가에서 수리를 받을 경우 관세 200%를 물게 된다.
정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해양보안신탁기금을 조성해 자국 조선업 재건을 도모하는 정책도 추진된다고 말했다. 해양보안신탁기금이 2034년까지 조선소와 조선 기자재 업체에 2억5000만달러, 소형 조선소에 1억달러를 매년 지원하는 내용이 선박법에 포함됐다. 기금과 별도로 미국 정부는 매년 1억달러를 제공하는 선박금융 지원 프로그램도 시행할 계획이다.
하문근 부산대 초빙교수는 올해 2월5일 발의된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설명했다. 두 법안은 북대서양조양기구(NATO) 회원국 또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도태평양 국가에 있는 조선소에서 미국 군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미국 군함의 해외 건조를 우방국에 한해 허용하는 것이다.
하 교수는 향후 30년간 1600조원 규모의 미 군함 신조가 발생하고 20년간 20조원 규모의 유지보수(MRO)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8월 한화오션이 미국 군수지원함, 11월 미국 급유함 MRO를 수주한 데 이어 HD현대가 군수지원함 MRO 입찰에 참여하는 등 최근 한국 조선기업들이 방산 수출 사업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법안 도입은 희소식이 될 전망이다.
하 교수에 따르면 향후 5년간 미 군함 64척이 퇴역할 예정이다. 올해 19척을 시작으로 2026년 17척, 2027년 12척, 2028년 7척, 2029년 9척이 운항을 멈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해안경비대(USCG)의 노후 쇄빙선을 대체해 대형 쇄빙선 40척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中 건조선박 5%서 50%로 급증
그런가 하면 USTR은 지난 2월21일 중국과 관련된 선박에 막대한 입항 수수료를 징수하는 규제를 제안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규제는 기본적으로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이 미국에 입항하면 한 항구당 150만달러의 입항세를 내도록 했다. 아울러 중국 해운사가 운항하는 선박 또는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 비율이 50% 이상인 해운사가 운항하는 선박, 중국에 발주한 신조선 비율이 50% 이상인 해운사가 운항하는 선박은 각각 100만달러의 입항세를 물어야 한다.
각 항목이 누적으로 계산되는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누적으로 계산될 경우 선박당 최대 450만달러에 이르는 입항 비용을 내야 한다.
USTR은 1999년 전 세계 선복량의 5% 미만이었던 중국산 선박이 2023년 50%를 넘어서는 등 중국의 해운물류와 조선산업 비중이 크게 확장하면서 경제 안보에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고 규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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