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10:06

알기 쉬운 해상법 산책(17)/ 해상풍력 프로젝트와 ‘Knock for Knock’ 원칙

법무법인 세경 최기민 변호사


100여 개가 넘는 기업이 참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전남 영광 앞바다에서 추진 중인 낙월해상풍력 현장의 이야기이다. 터빈(Wind Turbine), 블레이드(Blade), 베어링, 타워, 하부구조물 등 주요 부품을 제조, 공급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 해저지반공사, 기자재의 해상운송 등을 수행하는 기업을 모두 포함하는 숫자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해상풍력은 종합예술”이라는 어떤 기사의 표현은 정확하다.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사업 초기의 인허가 단계(풍황계측기 설치허가, 발전사업 허가, 개별 인허가, 공사계획 인가 등), 해상풍력 발전단지 조성 공사 단계(해상풍력 발전기 설계, 제작, 운송, 설치, 시공 등),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완공된 후의 해상풍력 운영 및 유지·보수 단계 등 여러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업체들 중에는 전 단계를 아우르는 개발운영사도 있지만, 각각의 단계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투입되는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되므로 관련 모든 업체가 유기적으로 제 역할을 할 것이 요구된다.

단계별로 간략히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해상풍력 관련 인허가 사항은 대략 20가지이다. 담당부처가 일원화 되어 있지 않아 인허가를 받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상당히 길다. 어업 피해 등을 조사하여 어민과 주민들을 설득하고 보상·지원하는 과정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상풍력 인허가 특별법의 필요성도 언급되고 있다.

해상풍력 발전기의 설계, 제작 등은 주로 육상에서 이루어 지지만, 이를 위하여 부품이나 기자재를 운송하거나, 완성된 해상풍력 상·하부 구조물을 설치 현장으로 운송할 필요가 있다. 고정식 해상풍력 발전설비이든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설비이든 대체로 해저지반공사도 수행된다. 모두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해운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해상풍력전용설치선박(WTIV)(WTIV의 도입과 관련한 카보타지 문제는 필자가 2024년 1월1일자 칼럼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해상풍력지원선 등 특수선박을 신조하거나 도입하고, 운용하기 위한 움직임도 보인다.

 


한편, 아직 우리나라에서 상업 운전되고 있는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많지 않아 해상풍력 운영 및 유지·보수 단계에서 나타날 이슈에 관하여 예측하기는 섣부른 감이 있다.

필자는 해상풍력 발전단지의 개발을 위한 해저지반공사, 해상풍력 구조물이나 기자재 등의 해상운송과 관련된 사건을 몇 차례 수행한 적이 있다. WTIV나 중량물 운반선(Heavy Lift Vessel) 등이 많지 않아 당시에는 예인선이 해상풍력 부품이나 구조물, 해저지반공사를 위한 크레인 등을 부선에 선적, 장치하여 예인한 사안이었다. 여러 쟁점이 있었지만, 필자의 생각에 앞으로 중요하게 부각될 가능성이 있는 쟁점은 Knock for Knock(자손자변, 자손자담) 문제이다.

Knock for Knock이란 예인선과 피예인선(피예인물) 중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불문하고, 예인선측에 발생한 손해와 예인선이 제3자에게 입힌 손해는 예인선 선주가 부담하고, 피예인선측에 발생한 손해와 피예인선이 제3자에게 입힌 손해는 피예인선 선주가 부담한다는 원칙이다.

“귀책사유 있는 당사자가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근대 사법의 기본원칙이므로, Knock for Knock은 이에 반하여 불공정하다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그러나 Knock for Knock 조항은 국제 예인계약에서 많이 사용되는 BIMCO의 TOWCON과 TOWHIRE 등의 표준서식에서 채택되어 있다. 오프쇼어 업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해양플랜트 지원선박과 관련된 BIMCO의 SUPPLYTIME2005 표준서식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Knock for Knock 조항은 실무적으로 유효하게 활용되며, 앞으로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도 필수 조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Knock for Knock 조항이 존재하면 예인선 선주는 상당히 고가인 해상풍력 부품이나 구조물 등이 손상, 멸실될 경우에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반면, 해상풍력 부품, 구조물 등의 소유자나 운송을 의뢰한 당사자는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운송을 의뢰하는 측은 이를 피하기 위하여 표준양식 등에 기재된 Knock for Knock 조항과는 별도로 예인선측이 운송 중에 발생한 손해 또는 비용을 모두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이는 계약 안에 모순되는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표준양식이나 약관에 기재된 Knock for Knock 조항보다는 당사자 사이의 책임에 관한 특별약정이 우선한다고 판단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특별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 담보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예인선, 부선에 대한 P&I보험의 경우 Knock for Knock에 따라 보상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다. 해운업계, 금융업계(파이낸싱), 건설업계 등 많은 곳에서 주목하고 있다. 파이(pie)는 점차 커질 것이고, 그에 따라 앞으로 다양한 법률 문제가 새롭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며 건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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