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9 09:40

시론/ 한국인선원 고용안정과 워라밸 개선

황선운 팬오션 선원노조 위원장


선원노련과 해운협회는 지난 2007년 ‘한국인 선원의 고용 안정과 적정 규모 유지를 위한 노사 합의서’를 체결해 최소 5000명의 한국인 선원 고용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15년간 여러 문제점이 노출돼 노사는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을 협의한 끝에 2023년 11월6일 ‘선원 일자리 혁신과 해운산업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사 합의’를 체결했다. 본 기고문에서 필자는 이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을 실제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설명하고자 한다.

외국인 제한정책이 한국인선원 감소 초래

2007년 노사 합의 시 필수선박 88척과 지정선박 212척 등 총 300척에 대해 외국인 선원 승선 규모를 각각 6명과 8명으로 제한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국인 선원 규모를 늘리지 못하는 선사가 승선 정원을 축소하면서 오히려 한국인 선원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필수선박은 법령으로 선박 크기와 선령의 제한을 두는 반면 지정선박의 지정 기준은 노사가 별도로 합의한 바 없고 법으로 정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승무 정원은 선박의 크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노사 합의를 체결하기 전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정선박 수는 기존 합의한 212척에 한참 못 미치는 160여 척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80여 척, 즉 50% 이상은 총톤수(GT) 6000t 미만의 소형 선박이었다.

6000t 미만 선박의 승무 정원은 11~15명 정도다. 기존 합의와 같이 외국인 선원을 8명으로 제한하면 한국인 선원은 척당 3~7명 정도만 승선하게 된다. 이미 초급사관 일자리를 외국인 선원에게 내준 상황이 된 셈이다.

지난해 11월 체결한 노사 합의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해 승무 정원에 따라 한국인의 승선 규모가 증감되는 기존 제도에서 척당 한국인 선원 승선 규모를 정하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6000t 미만의 선박을 지정선박 212척 중 50척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개선했다. 대형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선사에서 지정선박 지정 비율을 늘려 양질의 초급사관 일자리 확보에 기여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이 합의로 인해 초급사관의 고용 기회가 더 좁아졌다는 일각의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해 11월6일 해운협회 선원노련 해양수산부는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 에서 한국인 선원 일자리 혁신을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합의서엔 국제선박에 승선하는 한국인 선원(예비원 포함)을 5000명 이상으로 유지하는 한편 유급휴가 일수를 8일에서 10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 다음 살펴 볼 부분은, 부원 선원 부족 문제다. 신규 부원 선원 양성 체계 붕괴와 기존 부원 선원의 고령화 등 부원 선원 수급 문제가 15년간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노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협의를 한 바 없다. 지난해 노사 합의 직전 집계한 외항상선 한국인 부원 선원의 연령 분포는 60세 이상이 46%, 50세 이상이 78%에 달했다.

즉 필수·지정선박 제도로 한국인 부원 선원 규모가 유지됐지만, 신규 부원 선원을 양성하는 데 소홀하다 보니 기존 선원이 정년에 도달한 이후에도 촉탁직으로 다시 고용되는 실정이었다. 정년이 된 기존 인력이 퇴직하면 신규 인력이 새로 고용되는 정상적인 한국인 부원 선원의 순환 구조가 깨진 것이다. 

2023년 노사 합의로 고령 부원 선원의 고용 기회는 줄어들었다. 다만 기존 한국인 부원 선원의 고용 안정을 위해 정년을 연장함은 물론 신규 부원 양성을 위해 노사가 공동 대응하자는 의견을 나눴다. 실제로 정년 연장에는 노사가 합의에 접근하고 있다. 한국인 부원 선원과 외국인 부원 선원의 인건비가 3~4배가량 차이 나는 상황에서 선사의 자율적인 신규 부원 양성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회사 이익 신장이 최우선인 개별 선사가 과연 앞장 설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자는 노사 교섭 초기에 한국인 부원 선원 공영제 또는 필수선박에 적용하고 있는 임금 보조 등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한국인 부원 선원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필수 인력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부원 선원 고용의 문이 좁아졌다고 일부에서 비판하지만, 신규 부원 고용의 문은 아직도 열려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기존 촉탁직 선원 고용이 줄어든다고 우리들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할 게 아니라 신규 부원 선원을 위한 입구를 더 넓히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노사정이 같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원 선원 문제를 두고 보다 강력한 강제력으로 지속적인 노사 교섭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선원직 매력화’가 선원정책의 핵심

한편, 무엇보다 2023년 노사 합의를 추진하게 된 원동력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충족시켜 달라는 우리 선원들의 요구였다. 육상 근로자의 근로 환경이 급격하게 개선됐지만 선상의 근로 환경은 큰 변화가 없다. 특히 장기 승선이 일상이고 1개월 승선하면 8일의 휴가를 받는 해기 인력에게 워라밸은 더욱 더 멀게 느껴진다. 해양계 교육기관을 졸업한 해기 인력의 90% 이상이 승선근무예비역 3년을 채운 뒤 육상직이나 타직종으로 이직하는 현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유럽식 선원 운용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비상시 동원 선박 운용을 위한 5000명 이상의 선원을 유지해야 한다. 또 적기 교대를 위해 한국인 선원 간 교대가 아닌 외국인 선원과 자율적으로 혼승할 수 있도록 외국인 선원 예비 인력 공급처를 확보하고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당장 유럽식 선원 정책을 실행하기 힘든 여건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필수·지정선박 시스템을 유지한 상태에서 한국인 선원의 근속을 유도하려면 장기 승선을 방지하고 유급휴가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2007년 노사 합의는 예비원을 포함해 한국인 선원 5000명을 유지하기로 했다. 유급휴가 8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승선자 3명당 예비원 1명이 필요하다. 5000명 중 승선자를 3750명, 예비원을 1250명으로 계획한 것이다.

 
▲‌해운협회와 선원노련은 지난해 체결한 노사 합의를 토대로 올해 5월20일 재단법인 선원기금재단(KSF)을 설립했다. 해운업계는 톤세제 절감분과 선사 출연금 등을 활용해 최대 1000억원의 기금을 확보할 계획으로, 우선 HMM에서 출연하는 590억원을 포함해 내년까지 800억원을 조성한다.
 

하지만 2023년 노사 합의 직전 필수·지정선박에 타고 있는 한국인 선원은 ▲선원직 기피 ▲승무 정원 축소 ▲부원 선원 부족으로 인한 지정선박 지정률 미달 등의 문제로 4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4000명의 가용 인력을 유지하면서 외항상선 근로 환경을 선진화하고 선원직을 매력화해 이직률을 저감하고자 했다. 

2023년 노사 합의로 한국인 선원을 필수선박에서 11명(2025년부터 10명), 지정선박에서 8명을 의무 승선시키도록 변경했다. 한국인 선원 승선자 규모는 2564명으로, 2007년 노사 합의보다 다소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급휴가를 8일에서 10일로 확대하고 예비원 비율을 높여 실질적으로 우리 한국인 선원에게 더 나은 근로 환경을 조성하도록 했다.

즉 승선자는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예비원을 충분히 확보해 한국인 선원 규모를 유지한 상태에서 승선자와 예비원의 비율을 2:1로 개선해 선원 교대가 원활해지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4개월마다 유급휴가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선원에게 부여해 선상에서 워라밸을 충족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일각에선 그간 필수·지정선박을 늘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300척의 필수·지정선박의 한국인 선원 규모도 원활하게 유지할 수 없는 근로 조건에서 일자리 확대라는 정량적이고 형식적 목표에만 지나치게 매달린 시각이다. 만약 이 주장에 따라 규모만을 더 늘렸다면 선원직을 매력화하는 정책 도입은 오히려 더 멀어졌을 것이다.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성장 중 우선순위는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의 삶의 수준에 따라 어떤 성장을 중심에 둘지 판단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제 질적인 성장에 집중할 때다. 선원을 재직자와 구직자가 선호하는 직종으로 만들어 선원 유출을 막고 역유입을 유도하면서 양적 성장을 이루는 선순환 구조의 틀을 가져야 한다는 노사의 의지가 담긴 게 2023년 합의인 것이다.

일정 기간 교대 순환하는 선원 근무 특성상 예비원의 확대 또한 선원 일자리 창출이 분명하다. ‘승선 일자리’만이 고용의 기회라 여기는 시각은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현장의 요구에 반하는 것이며, 선원 노동계의 정책 방향과도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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