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상선의 기관사로 5년, 해운회사에서 11년, 그리고 선박관리자회사에서 11년을 근무했다. 27년을 한 회사에 재직하고 있었으나 본의 아니게 사명도 여러 번 바뀌어 가는 것을 경험했다.
해운회사에서 11년 일하는 동안 선주 감독과 S&P(선박 매매) 등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게 되었고 선박관리 자회사에서도 경영관리와 마케팅을 업으로 하면서 선박관리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과 문제 의식을 자연스레 익힌 듯하다.
2023년 4분기는 또 한번 인생의 전환기가 됐다. 27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 뼈저리게 느꼈던 대한민국 선박관리산업의 문제와 부조리, 그리고 메아리처럼 되돌아 왔던 변화의 노력들을 이제는 머리카락조차 희끗해진 ‘5학년’, 평론가적 입장에서 다시 한번 던져 보려 한다.
해운회사 CEO들의 생각을 읽어 내기가 너무 힘들다. 해운 또한 경영의 철학과 기술이 발휘되어야 하는 엄연한 사업일진대, 신조 발주와 선대 확장만이 유일한 로드맵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심지어 어떤 분들은 계약 조건을 협의할 때의 Accept(승인)/Except(제외)만이 유일한 스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디지털 전환(DX), 빅데이터 기반 사물인터넷(IoT) 정보통신기술(ICT), 저궤도 위성통신과 같은 IT 혁명과 더불어, 재생에너지, 에너지 전환을 포함하여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새로운 국제 환경 협약들 속에서도 대한민국 해운은 아직도 반상의 법도에 따라 선사는 양반(兩班), 관리회사는 상민(常民)이란 구조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영국(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회사에 선박관리를 맡겼다는 선사의 얘길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선박관리 인수 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했는데, 한국 선사의 퇴근 시간을 회의 시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용감한(?) 기개가 부러웠다.
각자의 업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해운이 선박관리, 그리고 해기사들의 기술력을 하나의 ‘기둥뿌리’로 삼아 왔다는 사실을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한 가지 선박관리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도 알려드린다. 선박관리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사람이다. 우리가 말하는 감독들이다. 모르는 사람이 있냐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선인들의 말씀을 되새겨 한 번 더 짚어 보려고 한다.
감독은 어디서 어떻게 양성될까? 승선 근무를 마치고 육상으로 이직하는 해기사들이 원천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1등 항해사 또는 1등 기관사 이상 출신의 인력들이 미래의 감독 자원이 되는 것이다.
이들이 유능한 감독인가? 노! 다년간 도제식 OJT(직무 교육)를 이겨내야만 비로소 본선을 통제하고 비상 대응과 긴급 수리를 주도하며, 정기 입거를 처리할 수 있는 농익은 감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더 이상 감독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벌써 5년도 더 된 얘기인데, 우린 아직도 젊은 세대들의 인내심 부족이나 나약함이 원인이라고 치부하며 특정 개인의 문제로 평가절하한다.
“라떼는 10척도 맡아봤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왜 이러냐.”, “감독은 선박관리의 꽃이라고!”만 되풀이하고 있다. 성실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을 고르는 것에도, 꽃이라는 말로 그들의 자부심을 일으켜 세우는 것에도, 저녁마다 소주 한잔으로 사기를 북돋우는 것에도 지쳐갔다.
2021년으로 기억하는데, 한창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처음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줄지어 휴직에 들어갔는데 6명이 모두 5~10년차 경력의 감독들이었다. ‘휴직을 쓰지 못하도록’ 설득하지 못한 난 무능하다 못해 무책임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동시 다발적으로 해기사들의 감독 지원이 급격히 감소했고 지원 부서 내에서 감독 직군으로 이동을 원하는 사람도 사라졌다. 심지어 감독 발령 후 1년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를 하는 직원들도 속출했다.
이미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감독 직군의 불만족도가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었고 2~3년간 지속적으로 깜빡이던 알람과 시그널 속에서 우리는 겨우 감독 수당 20만원을 어렵게 결정하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면서 남긴 후배들의 말들이 잊히지 않는다.
“와이프가 이혼하잡니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자신이 없어요.”
“담당 감독?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냥 전 공무감독일 뿐입니다.”
그들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프라이드도 책임감도 머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선박관리산업의 기술 관리(Technical Management) 분야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년간 선박관리업계의 큰 변화 중에 감독 부족 사태를 가중시킨 몇 가지 요인들을 짚어보려고 한다. 대한민국은 특이하게(이유를 모른다는 얘긴 아니다.) 50척 이상의 선박관리회사들이 모두 해운회사의 자회사다. 이들이 육상으로 이직하는 해기사들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선박관리 자회사 대표들은 힘이 없었다. 흥미롭게도 스스로 경영하고 자생하라고 관리회사를 모두 분사시킨 후에도 끊임없이 간섭하고 주기적으로 탄압(?)해왔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그나마 고참 선배가 대표를 맡거나 모회사와의 관계를 잘 풀어내는 대표가 있을 때는 그럭저럭 우리만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수 있었다. 모회사 대표나 임원들도 해운만 30년씩 한 사람들이라 선박관리업도 ‘들은 풍월’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모회사 주인이 사모펀드나 공기업, 비해운 분야로 바뀌어 버렸다. 소유 관계도가 길어질수록 선박관리업체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해운 모회사는 캐시카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위치가 되었다. 반대로 선박관리회사에게 해운 모회사는 어느 날 갑자기 엄한 어머니에서 계모로 탈바꿈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엔 그랬다.
<계속>
이상조 대표는…
한국해양대학교 기관공학과를 졸업하고 벌크선과 자동차선에서 승선 근무했다. 배에서 내린 뒤 대형 선사와 선박관리 자회사에서 해사 업무를 담당해 오다 올해 선박관리회사를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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