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0 09:06

HMM노조 “인수예비후보들 현금성자산 부족…미래투자 불투명”

졸속매각 유찰돼야…협의체 구성·재검토 필요


“글로벌 해운사들이 치킨게임에 들어간 상황에서 체급이 되는 기업이 인수해야 경쟁할 수 있다.”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HMM지부(육상노조)와 HMM해원연합노조(선원노조)는 한국산업은행이 진행 중인 매각이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다면서 이번 입찰이 유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HMM이 국적선사로서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게 현금성 자산을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을 신중히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난 9일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사에서 열린 HMM 경영권 매각 관련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국민 혈세로 키워낸 HMM을 헐값으로 매각하지 말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인수예비후보인 LX인터내셔널,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 동원산업 3곳이 8일에 실사를 마치면서 HMM은 오는 23일 본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조 측은 해운업계가 불황인 가운데 현재 인수 후보로 올라온 3개 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점을 우려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노총 사무금융노조 이재진 위원장은 “MSC, 머스크, CMA CGM 등 글로벌 선사들이 선복량을 10~35%까지 늘리고 있어 과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해상운임은 지난해 대비 80% 가까이 급락했는데 치킨게임까지 잇따를 거란 예측이다.

이 위원장은 “HMM도 현재보다 선박 수주를 35% 늘린 상황”이며 “특히 지난해 7월엔 2026년까지 15조 가까이 투자하겠다고 공표했다”면서 회사에는 미래를 대비할 투자 자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HMM은 최초 매각 인수 가격을 5조원에서 7조원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인수 예비후보기업들이 지닌 현금성 자산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LX그룹은 2조5000억원,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은 1조5000억원, 동원산업은 6000억원 정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산은·해진공이 주식으로 전환한 영구채가 지난 10일 상장되면서 현재 HMM의 시가총액은 11조원 규모로 커진 상태다.

노조 측은 단순한 민영화가 해운산업 발전을 이끌 수 있는지 의문을 던졌다. 이재진 위원장은 “HMM 경영 총자산이 14조원”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를 미래 사업 투자 자금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기업이 들어오면 인수 자금을 메꾸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체급이 되는 회사가 인수해야 글로벌 해운사들과 경쟁을 하고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자본으로 살려낸 국적선사를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HMM 육상노조와 선원노조의 일치된 견해다. 이날 HMM 육상노조 이기호 지부장은 “노사정·재계·학계 협의체를 구성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해운업 발전 계획을 수립,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해운업은 국가 산업임을 강조하며 한진해운 사태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HMM 선원노조 전정근 위원장 또한 한진해운 파산 이후 외국 선사가 한국 수출입 기업에 높은 운임을 적용하려 했던 일을 되새기면서 “해운은 조선, 제조, 에너지, 수출입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HMM 육상노조 이기호 위원장(왼쪽)과 선원노조 전정근 위원장

 
전정근 위원장은 시간이 걸려도 신중하게 매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해운업은 한 번 시장을 떠나면 다시 돌아갈 틈을 주지 않는다”며 “지금 매각보다 중요한 것은 해운이 공고하게 자리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해운 위기 당시 HMM을 되살리기 위해 3조7800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투입했던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민영화를 단행하면 다시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투입하게 될 거란 주장이다.

또한 “과거 국가자본이 투입될 당시 선상에서 성실히 일한 직원들에게 기업을 망친 책임을 지게 했으면 다시 회사를 살려낸 직원들은 회사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서 “국적선사로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매각을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성명문에서 “정부와 산업은행이 회사 경영권 매각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뒤 회사의 투자 계획이 매각 이후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해운업 호황과 더불어 HMM 또한 10조원에 가까운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 53.5%의 영업이익률을 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상하이 컨테이너운임지수가 급락하고 시황 약세를 보이면서 회사 영업이익도 지난해 대비 대폭 감소했다. HMM의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5429억원으로 전년 동기간 8조6867억원을 거뒀던 것에 비해 94% 가량 후퇴했다.

최근 HMM은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4분기엔 인플레이션, 소비 위축, 중동 분쟁 등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컨테이너 물동량은 지속 둔화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위기를 타개할 사업 다각화와 장기적 투자가 절실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지배구조 불안·고용안정 문제 해결해야

HMM 노조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영구채의 방향이 불분명한 이상 매각이 돼도 불안 요소라고 지적했다. 산은과 해진공은 지난달 20일 1조원 규모의 영구전환사채(CB)와 영구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식으로 전환해 남은 영구채 규모는 1조6800억원이 됐다.

노조 측은 “산은과 해진공이 매각 이후에 다시 영구채를 주식으로 바꾸면 정부 지분이 32.8%로 높아지고 정부는 신용보증기금·국민연금 지분을 더해 여전히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면서 민영화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불안정한 지배구조 때문에 현대글로비스 포스코 등 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각 과정에서 노동자와의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도 졸속매각이란 주장의 근거로 제시됐다. 이날 배석한 사무금융노조 일반사무업종본부 이승현 본부장은 “(매각 계획에) 노동자의 고용안정 관련 내용은 한 줄도 나와 있지 않다”면서 “HMM을 지킨 것은 노동자인데 HMM 노동자 임금도 담보하지 못하고 자본금도 없는 회사가 인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방적으로 매각을 추진하지 말고 노동자, 노동조합과 매각 과정에서 반드시 협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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