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화물차 운전자의 초과근무를 제한하는 제도 도입을 앞두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상거래 관행 재검토, 물류 효율성 확보, 화주기업과 소비자의 행동 변화 촉진 등 3가지 사항이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한국교통연구원 스마트물류연구센터는 최근 발간한 ‘글로벌 물류산업 동향’ 보고서에서 일본 기시다 정부의 물류 혁신 정책을 소개했다. 일본은 내년 4월부터 트럭 운전자의 초과근무를 연 960시간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근로기준법을 도입한다. 운전기사 부족, 탄소중립 과제 등과 맞물려 물류 적체가 우려된다. 일본 현지에선 이를 일컬어 ‘2024년 문제’에 직면했다고 한다.
기시다 정부는 지난 6월 발표한 물류 혁신 정책 패키지에서 화주기업과 물류사업자 사이의 비효율적 상거래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일본에서는 송화주와 수화주 기업 계약을 바탕으로 화주기업과 물류사업자의 운송 계약이 체결된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물류사업자는 임의로 수송 효율화를 추구할 수 없고, 트럭 운전자는 계약 외 부대 작업을 지시받거나 장시간 하역 대기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다중 하청으로 실제 화물을 운송한 곳이 적정 운임을 받지 못하는 경우마저 생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응해 하역대기·하역시간 경감, 납품기한·거래가격 재검토, 다중하청 구조 개선에 힘쓸 예정이다. 규제 조치 도입을 전제로 가이드라인을 제시, 대기업의 ‘자율행동 계획’을 의무화해 조기에 실시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적정 운임 보장, 가격 전가 대책 수립, 트럭법에 근거한 화주·원청 모니터링 강화와 정보 공개 조치도 실시한다. 올해 안에 트럭 표준운임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감시기구를 설치해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두 번째 해법으로 신기술을 활용한 물류 효율성 제고 방안이 제시됐다. 일본 정부는 디지털 전환(DX)으로 효율화와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녹색 전환(GX)으로 탈탄소화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물류 표준화, 수송 안전 확보, 인재 확보·육성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세 가이드라인으로 단기 설비투자(하역장 예약 시스템, 지게차 도입, 자동화·기계화), 수송수단 전환 추진, 팰릿(파렛트)과 컨테이너 표준화, 고속도로 트럭 제한 속도(80km/h) 상향, 물류 거점 기능 강화, 트레일러를 2개 연결하는 이중 트레일러 트럭의 상용화, 지역물류 공동 수배송 촉진 등 총 13개 항목이 포함됐다.
일본 정부는 마지막 과제로 화주·소비자 행동 변화를 꼽으면서, 실질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고 규제 조치를 도입한다고 공표했다. 화주기업에 물류관리 책임자를 임원으로 배치시키고, 물류 개선 상태를 등급으로 가시화해 소비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신설한다는 구상이다. 또 수송력 낭비의 원인이 되는 높은 재배달률을 절반으로 줄이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표준운송약관·표준운임 개정 등 대책 마련 부심
일본 현지에선 물류 운전기사 부족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인해 기피 직업이 되면서 2020년엔 중년 및 고령 근로자가 45%를 차지할 정도로 노동인구 고령화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일본 정부는 물류 산업 환경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고 운전기사를 매력적인 직업으로 만들고자 근로기준법 개정이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2024년 문제’가 불거지는 등 풍선효과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내년에 실시되는 트럭 운전자 초과근무 제한 법안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 우려를 표할 정도로 중요한 현안이다. 그러나 정작 현지 업계의 대응은 미진하다. 지난해 10월 경제산업성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트럭운전자 관련 제도를 물류 위기로 받아들이는 사업자는 84%에 달했지만 대책을 마련했다고 답한 사업자는 54%에 불과했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일본 물류업계는 내년에 14%(트럭 운전사 14만명 상당), 2030년에는 34% 정도 수송력이 부족한 상황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시다 정부는 당장 1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정책을 3단계로 나눠 추진할 예정이다. 올해 연말까지 2030년 달성을 목표로 하는 중장기 물류 대책을 수립·공표하고, 내년 초 정기 국회에서 법제화함으로써 물류 혁신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우선 표준운송약관과 표준운임을 개정하고, 업계·분야별 자율행동 방안을 수립하도록 요청할 방침이다.
화물차 중심인 일본 물류 유통 시장 특성상 운송비 상승은 전반적인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일본이 비상사태에 처한 만큼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강구하고 물류업계를 중심으로 실질적이고 신속한 대응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