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4 16:12

HMM 매각, 獨 하파크로이트 방식 배워야

이기병 경영학 박사(한국관세학회 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팀장)


영원한 섬나라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사실 우리나라는 섬나라다. 고립된 반도의 슬픈 현실 속에 ‘잘살아보겠다’라는 일념으로 빡빡한 살림살이를 해왔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우린 스스로 많은 것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내부 거래와 계열사를 통해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자원을 만들어 활용해 나갔다.

오너 경영자의 과감한 판단과 빠른 투자, 독립 법인이면서도 계열·자본 거래가 합쳐진 그룹형 구조는 시장 및 내부 거래의 장점을 갖춘 한국형 기업 조직을 만들어 냈다. 이런 방식으로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갔고 우리 환경에 적합한 ‘추격형(Catch-up)’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M&A(인수합병)를 통한 성장에는 소극적이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따르면 M&A의 70~90%는 실패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시너지(Synergies) 효과의 과대평가, 거래의 희소성으로 인한 M&A 욕심, 실사 과정의 실수, 주요 직원의 이탈에 그 원인이 있다. 필자가 꼽는 더 중요한 원인은 가치평가(Valuation), 명확한 인식(Identifying Synergies), 인수합병 후 기업통합(PMI, Post-Merger Integration)의 부족이다. 이런 것을 잘했던 회사가 대우조선해양과 팬오션을 각각 인수한 한화와 하림이었다.

M&A는 명확하고 정의된 투자 논리(Investment Thesis)로 시작해 가격의 한계를 설정하고 무리한 입찰을 피해야 한다. 높은 인수 프리미엄을 지급하면 M&A를 통한 기업 가치가 증진할 수 없다. 승자의 축복이 되어야 할 M&A가 자치 잘못하면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빠져 기업과 국가 경제에 민폐 덩어리가 된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배는 바다 위의 고철이고 선원들도 어떻게 어느 쪽으로 노를 저어야 할지 헷갈린다. M&A를 하기 전 기술 획득, 비용 절감, 매출 증진 등 명확한 시너지를 설정하지 못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통상 M&A 시너지 효과의 표출은 PMI를 통해 나타난다. ‘점령군의 우’를 범하지 말고 임직원들로부터 인간적인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인간(人間)’이란 단어 자체가 본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수 후 문화적, 화학적 통합의 속도와 정도를 차등화하여 피인수 기업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유지되는 성공적인 통합 과정이 중요하다. 
 
최근 들어 HMM(옛 현대상선) 매각 절차 개시로 주목할 만한 M&A 시장이 펼쳐지고 있다. HMM 매각은 몇 가지 관점에서 흥미롭다. HMM 대표 주주사인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진흥공사)의 같은 점은 공공기관이고 다른 점은 이질화다. 공공기관 부채 감축 방안은 대부분 M&A를 통한 사업부 또는 자회사 매각이다. 비핵심 사업을 매각함으로써 고유 목적 사업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주요 핵심이었다. 

이 시각에서 본다면 위험가중 자산을 줄여야 하고 BIS 비율 유지와 자본 확충이 필요한 산업은행은 그렇다 치자. 그럼 진흥공사법 제1조 ‘해운기업들의 안정적인 선박 도입과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여 해운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하는 공사는 HMM 매각만이 과연 법의 취지와 기관의 설립 목적에 부합한 조치일까?
 
그간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기관의 성공적인 M&A 사례로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이는 대부분 업황과 매각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아 매수자를 찾기 어려웠고 시장 기대와 공공기관의 눈높이가 다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8조원을 넘고 14조원대의 현금성 보유자산을 가진 잘 나가는 HMM은 과연 어떤식으로 매각할까? 

적어도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 적정 가격, 시기의 선택, 해운물류 산업의 파급효과 등을 좀 더 엄중하게 고려하여 기존 방식과 차별화를 도모해야 한다. 정부는 「해운 재건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정책금융 기관으로 진흥공사를 설립해 HMM을 세계 8위 글로벌 해운사로 성장시켰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도 해운사에 대한 정부지원 금융정책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 해운사 CMA CGM은 11억2천만달러 융자를 받는데 정부가 70%의 대출 보증을 했고 전 세계 선단의 20%를 확보한 그리스도 100척의 여객선에 대해 3500만달러의 금융 지원을 했다.

대만은 에버그린 등 대형 컨테이너사를 위해 10억달러의 신용제공을 해줬고 중국도 국적 해운사인 코스코에 중국공상은행, 수출입은행을 통해 신용 대출과 신용 한도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역시 국부펀드를 이용해 이자율 1%, 10년 만기 회사채 발행 및 정책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독일 정부도 자국 최대 선사인 세계 5위 하파크로이트(Hapag-Lloyd)에 자금 지원과 지급 보증을 해줬다. 관심 있게 볼 것은 하파크로이트의 주주가 공공·민간 부분의 투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9년 재정난을 겪던 하파크로이트가 싱가포르 선사에 매각될 위기에 처하자 함부르크시 정부와 독일 물류기업, 선박금융기관, 보험회사 등은 지분 78%를 공동 출자해 자국 해운사의 해외 매각을 차단했다. 이후 경영난을 극복한 독일 선사는 칠레 선사 CSAV와 범 아랍권 선사인 UASC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세계 해운 시장에서 독일의 지평을 넓혔다.

현재의 지분 구조는 퀴네마리타임(독일 물류기업) 30%, HGV(함부르크시) 13.9%, CSAV 30%, 카타르투자청 12.3%,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10.2%로 변화됐다. 독일 정부가 부실화됐던 자국 선사를 다시 살려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선사로 도약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세계 주요 국가들이 해운업에 돈을 쏟아붓는 이유는 국가 기간 산업이자 국방, 도로, 철도와 같이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그들은 국민경제를 위해 필수 산업인 해운업이 지닌 공공재 기능을 강화하고 수출입 화물의 안정적 수송을 위해 자국 선사는 반드시 먹이고 살렸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HMM 매각 처리는 해운업에 대한 총체적 이해없이 과거처럼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재정 건전성과 금융 논리에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해양수산부가 진흥공사의 주된 감독기관이 되어 정부의 권한을 분배받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번 매각 처리는 해운업 핵심 역량에 재투자하는 전략과 자원 재분배 관점, 국가 물류 산업의 신용도 유지와 사회적 후생 감소 최소화를 위한 전략적 활동으로 추진돼야 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통상 국가인 한국에 있어 해운업은 절대적인 산업 인프라다. 서비스산업 전체 수출액(1382억달러)의 29.4%를 담당하며 1등을 차지했고 수출입 화물의 99% 이상을 안정적으로 수송하는 우리 무역의 근간이다. 한진해운 사례를 보듯이 이 같은 해운산업을 망가뜨리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다.
 
누구도 우리의 밥그릇을 챙겨줄 의무가 없다! 목숨을 담보로 졸음운전을 하면 안 되듯이 HMM 매각은 특정 시점의 시황, 분위기, 일부 주장의 목소리에 흔들려 상념의 눈에 잠길 필요가 없다. 우선 현재 가입된 디얼라인스(The Alliance)의 동향과 2M(머스크, MSC) 해체를 계기로 3대 동맹체제의 재편 흐름을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한, 매각의 성공 여부는 경제와 해운업의 호·불황, 주식시장 동향과 일치할 리도, 일치할 수도 없다. 공공기관의 특성을 고려,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고 적정 매각 기준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면서 전략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대형·공공 거래라는 특성과 경쟁 강도, 시장 상황을 생각한다면 연내 매각은 물 건너 갔다. 이럴수록 그간의 방식과 다른 유연한 사고를 해 M&A를 통한 성장 전략을 택해야 한다.

그러자면 SK해운 탱크선 부문, 현대LNG해운, 폴라리스쉬핑 등 매물로 나온 국적 선사 중 HMM의 핵심 가치를 보충해 줄 해운사를 사들이는 도전적인 스케일업(Scale-up)이 필요하다. 기존의 길을 벗어나 오직 우리나라 해운 물류 산업의 발전을 지향하는 게 국내 1위 해운사 매각의 핵심 가치가 아닐까? 그런 목적일 때 현재도 새롭게 보일 것이다. 

‘눈 떠보니 잘 나가는 해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HMM 매각 TF(전담조직)를 구성해 확고한 전략을 갖되 그 방향성의 우선순위는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공유 가치를 고려하는 한국형 하파크로이트의 출현이다. 이를 위해 위기 때 해운사의 생존을 도와주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주는 민·관 공동체 주주로서의 협력과 국내 화주사와 물류사와의 끈끈한 연계가 필요하다. 

더 좋은 해운물류 생태계로 진화하여 우리 공동체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바꾸는 새로운 공유 가치 창출에 HMM이 앞장서주면 좋겠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다. 기존의 중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더 많아진다. 

lgb14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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