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에 해운산업의 무탄소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수립한 가운데 막대한 친환경 선박 전환 비용에 비해 정부 지원이 터무니 없이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부회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해운 경쟁력 강화 정책 세미나’에서 “국적선사의 연간 친환경 선박 전환 비용은 총 4조5000억원이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에서 올해 책정한 지원 예산은 130억원에 불과하다”며 “선사들이 선박을 짓는 데 많은 금융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MO는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80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회의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해 2050년까지 국제해운의 탈탄소를 달성하는 데 합의했다.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을 70%, 온실가스 배출을 50% 감축한다는 종전 목표보다 크게 강화됐다. 27년 후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 아산화질소 등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없앤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IMO는 또 2030년까지 무탄소 기술 또는 연료 에너지 사용량을 5% 이상으로 끌어 올리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 이상, 2040년까지 70% 이상 감축하는 내용의 중간 지표를 새롭게 설정했다. 아울러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기존 계획은 유지했다.
IMO는 해운 분야의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올해부터 현존선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CII) 등급제를 시행했다. EEXI는 선박의 출력을 기반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예측하는 사전 규제이고, CII 등급제는 실제 선박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계산해 제재하는 사후 규제다.
CII 등급제는 5000t(총톤) 이상 외항선의 1년간 실제 연료 소모량과 운항 거리 등을 기반으로 탄소집약도를 계산해 A(매우 우수) B(우수) C(보통) D(불량) E(매우 불량) 5단계로 평가한다. 최저등급인 E를 한 차례 맞거나 D를 3년 연속 맞은 선박은 퇴출 대상에 오른다.
IMO는 올 한 해 CII를 2019년 대비 5% 줄이고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매년 2%씩 추가 감축하도록 했다. IMO의 탈탄소 목표 변경으로 2026년 이후 CII 감축률도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첫 등급은 제도 도입 후 1년이 지난 2024년에 매겨질 것으로 보여 국내 해운업계의 대응이 시급한 실정이다.
2025년께 국적선 50% 퇴출 대상
양 부회장은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2025년엔 국적 선대의 50% 이상이 CII 저등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국적선대가 줄어들고 해운력이 감소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우려했다.
독일 해운조사기관인 ISL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그리스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해운국에 올라 있다. 하지만 평균 선령은 14년에 이르고 15년 이상된 선박은 전체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환경 규제에도 취약한 실정이다. 한국선급이 올해 3월 발표한 ‘선박 에너지효율 규제 이행 현황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적선 1105척 중 52%인 570척이 EEXI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해운협회는 825척의 국적선 중 35%인 290척이 퇴출 대상인 D나 E의 CII 저등급에 포함됐다는 자체 조사를 발표했다.
양 부회장은 국적선사는 친환경 선박을 국내 조선소에 발주하고 조선소는 경쟁력 있는 선가를 해운사에 제공하는 산업 간 상생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국적 친환경 외항상선 2000척을 확보할 경우 연간 100척의 기본 신조 물량이 발생한다”며 “국내 조선사 연평균 수주량(240척)의 40%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말했다.
해운 조선 기자재 산업의 상생을 위해선 선화주 상생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20%에 불과한 원양 컨테이너항로 물동량을 70%까지 끌어올리고 60%에 못 미치는 전략물자 수송 적취율을 100%로 제고하면 컨테이너선 116만TEU, 벌크선 117척의 신조 수요가 발생하고 비용은 총 1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양 부회장은 “선화주 상생이 실현되면 2만3000TEU급 23척, 1만5000TEU급 15척 등 총 4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신규 발주 수요가 생긴다”며 “정부와 국회는 가칭 친환경 선박 건조지원법을 제정해 국적선사 친환경 선박 발주를 지원하고 건조 설계비 지원 등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운사·벙커링 전략적 파트너십 수립 필요
한국선급 문건필 대체연료기술연구팀장은 대체연료별 특성과 장단점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문 팀장은 바이오디젤 LNG 메탄올 등은 저탄소, 암모니아는 무탄소 연료로 분류했다.
바이오디젤은 엔진 변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연료지만 제한된 생산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LNG는 과도기적인 연료로 많은 선사들이 선택했지만 메탄 슬립(메탄이 불완전 연소돼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현상)이 발생하면 기존 연료보다 30배나 많은 메탄이 배출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문 팀장은 또 전주기적 관점에서 화석 연료에 기반한 메탄올은 탄소 감축 효과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바이오 메탄올이나 재생 합성 메타올(e메탄올) 같은 그린 메탄올을 써야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그린 메탄올은 바이오디젤과 마찬가지로 연료 수급이 제한적이라는 게 한계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 120곳의 그린 메탄올 벙커링(연료 공급) 항만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 팀장은 “머스크는 기존 디젤 엔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 디젤과 바이오 메탄올, e메탄올을 때는 친환경 선대를 구축하고 전략적 파트너를 확보했다”며 “우리나라도 그린 메탄올 선박을 쓰려면 전략적 파트너를 확보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머스크는 우리나라와 중국 조선소에 총 25척의 메탄올 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을 발주한 뒤 2030년까지 500만t의 그린 메탄올을 확보하고자 전 세계적으로 9개사와 벙커링 협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 HMM도 올해 2월 메탄올 연료를 때는 9000TEU급 컨테이너선을 발주하고 현대코퍼레이션 등 5곳의 국내외 기업과 메탄올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암모니아는 탄소는 전혀 배출하지 않지만 질소산화물을 과도하게 배출하고 온실가스 중 하나인 아산화질소까지 내뿜는다. 이들 배기가스를 포집할 수 있는 후처리 기술이 필요한 대목이다.
독성과 강한 부식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암모니아를 대체연료로 상용화하는 데 큰 걸림돌로 지적된다. 문 팀장은 “선박에서 암모니아를 대체연료로 사용할 경우 독성에 대비해서 선원 교육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등 환경규제 대응 ‘착착’…우리나라는 뒷짐
이어진 토론 시간에서 해운조선 전문가들은 환경 규제가 해운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호춘 해운정책연구실장은 “환경 규제를 안이한 태도로 바라본다면 해운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며 “친환경 선대를 구축하지 못한 선사에 화주가 화물을 안 주고 금융도 자금을 지원하지 않아서 기업이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수출입은행 양종서 박사는 “한국 해운업계에서 환경 규제는 기회가 아니라 위기”라며 “중국이나 일본 유럽은 정부 주도 또는 기업과 기관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대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쓴소리 했다.
산업은행 김대진 박사는 “황산화물 규제는 장비를 달 거냐 연료를 쓸 거냐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온실가스 규제는 메탄올 암모니아 등의 얘긴 있지만 선사들이 감을 못 잡고 있다”며 “대체연료의 핵심은 연료를 공급하는 정유 분야인데 정유사들은 어떻게 할지 전혀 얘길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양수산부 김성원 해운정책과장은 “해운은 면허제인 항공과 달리 완전 경쟁 산업이기 때문에 선가 하락이란 리스크를 내재하고 있어 금융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친환경 선박 도입을 지원하고자) 해양진흥공사의 기능을 확대하고 민간 금융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세미나에 앞서 한국해운협회 한국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한국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4개 기관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친환경 선박의 원활한 확보와 해운-조선-금융 상생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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