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0 09:08

판례/ “100일 후 도착한 화물의 교훈”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9.6일자에 이어>

「평석」

1. 사실관계
가. 운송계약의 체결: 원고는 2011년 4월1일 피고와 사이에 피고가 피고의 선박을 통해 원고가 구매한 인도네시아산 발전용 유연탄을 운송하기로 하는 (장기)항해용선계약을 체결했다. 제4조(계약물량 및 수송 주요 조건)[..] ⑪ 피고 측 귀책(선박, 선장 및 승무원의 귀책으로 인한 경우 포함)으로 선적된 화물이 운송 또는 양하 중 손상(기름유출, 해수침수 등)될 경우 손상이 증명된 화물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손실 및 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또한 이 경우 원고는 손상화물 인수 또는 양하에 대해 거절할 권리를 가지며, 이로 인해 발생될 모든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제8조(선박운항)
① 선적을 완료한 선박은 정상 운항속력으로 양하항으로 직행해야 한다.
제11조(선박 도착 예정 통보)
① 항차별 Laycan 개시 14일 이전에 피고(대리점 및 선장 포함)는 입항일자·화물적재가능 톤수를 원고와 유연탄 공급자에게(대리점을 통해) 서면 또는 전문으로 통보해야 한다.
제20조(선박수리)
피고는 계약기간 중 선급에 의해 필요로 하는 선박수리기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긴급사항을 제외하고 반드시 선박수리 3개월 전에 원고에게 일정 등을 통보하고 협의해야 한다.
제22조(불가항력)
① 쌍방은 천재지변, 전쟁, 화재, 파업, 선박사고(선박고장 제외), 철도 및 항만시설 파괴, 항만봉쇄, 기타 원고의 유연탄 매매계약서와 양하계약서 상의 불가항력으로 인해 계약 이행이 지연되거나 불이행시 책임을지지 않는다. ② 쌍방은 제1항의 불가항력 사유가 발생하거나 발생이 예상될 때에는 즉시 상대방에게 서면 통보해야 하며 불가항력 사유를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 원고의 유연탄 운송 의뢰와 운송 경과: 피고는 이 사건 운송을 수행하기 위해 선박 C(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한다)의 용선계약을 체결했고, 2019년 7월31일 원고에게 이 사건 선박이 인도네시아 타보네오항에서 출항해 2019년 8월9일 또는 2019년 8월10일 여수항에 입항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다. 이 사건 운송의 지연: 이 사건 선박은 위와 같은 피고의 출항 통보와 달리 2019년 8월3일 출항했고, 두 차례의 선박 고장으로 인한 선박 수리기간을 가진 이후인 2019년 11월7일 비로소 여수항에 입항했다.

2. 법원의 판단
가.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운송의 운송물 인도에 관한 약정일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① 피고는 이 사건 용선계약에 의해 원고에게 운송물인 유연탄을 적시에 운송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점, ② 운송은 출항일로부터 도착일까지 9 내지 15일 사이의 기간이 소요됐으므로, 적어도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위 기간이 이 사건 운송에 필요한 통상적인 기간으로 보이는 점, ③ 피고가 이 사건 운송에 관해 당초 원고에게 통지한 도착예정일은 출항일로부터 약 10일 뒤였고, 이 사건 선박에 관한 두 차례의 선박 수리가 없었다면 이 사건 선박 또한 피고가 통지한 도착예정일 무렵 여수항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볼 때 피고의 이 사건 선박이 출항일로부터 100일가량이 경과한 2019년 11월7일 여수항에 도착한 것은 상당한 시기에 운송물을 수하인에게 인도하지 못한 인도지연에 해당하고, 피고로서는 이 사건 용선계약에 의한 채무불이행책임으로서 이 사건 운송의 인도지연으로 인해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원고는 유연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운송의 지연으로 발전소의 가동 중단과 이로 인한 막대한 손해를 막기 위해 외부로부터 발전용 유연탄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유연탄의 하역보관료, 운송료(스왑의 경우 반환을 위한 운송료 포함)를 지출하게 됐는바, 이는 피고의 이 사건 운송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으로서 피고는 원고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 피고의 정액배상주의 적용 주장에 대한 판단: 피고는 “항해용선계약에 관해 준용되는 상법 제137조 제1항은 ‘운송물이 전부 멸실 또는 연착된 경우의 손해배상액은 인도할 날의 도착지 가격에 따른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위 규정은 운송인이 화물의 가격이 하락한 경우에 한해 인도할 날의 가격과 인도한 날의 가격과의 차액에 한해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 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결했다: 살피건대, 운송물의 멸실·훼손·연착에 관해 정액배상주의를 규정한 상법 제137조는 임의규정으로서 당사자간의 약정으로 달리 정할 수 있는바, 1)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용선계약을 체결하면서 처음부터 발전용 유연탄을 운송물로 정했고, 계약의 내용으로 장기간의 계약기간과 최소한의 운임 보장에 합의하는 등 안정적이고 계속적인 유연탄의 운송은 이 사건 용선계약의 목적이 된 점, 2) 발전용 유연탄은 장기 보관시 자연발화의 위험성이 있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보관하기 곤란하고 운송이 지연될 경우 해상운송과정에서 염소에 노출돼 훼손될 가능성이 높은 점, 등에 비춰 당사자들인 원고와 피고는 적어도 이 사건 운송과 같이 선박의 고장으로 인해 발생한 운송물의 인도지연에 관해는 상법 제137조의 정액배상주의 원칙의 적용을 배제하는 취지로 합의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

3. 이 판결이 주는 교훈
본건의 특색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이 사건에 있어서 계약에 화물의 인도 예정일에 관한 명시적 규정은 없었으나, 운송인의 화주에 대한 선박 도착 예정일을 화물의 인도 예정일로 취급했다. 
둘째, 계약에 역시 명시적 규정은 없었으나 상법 137조의 정액배상주의를 배제하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보았다. 이 사건에서 운송인은 불가피한 사유에 기한 선박 수리로 인해 거액의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됐다. 이 운송인은 선박 수리의 경우 계약서에 별도의 규정을 두었으나 그것이 어떻게 운송 지연의 정당한 사유가 되는지(예, 대체 선박의 수배도 유예되는지)를 명백하게 규정하지 못했고 그것이 계기가 돼 본건 사고에 있어 거액의 책임을 진 것이다. 아울러, 상법 137조 적용에 관한 명시적 규정을 뒀더라면 배상액을 크게 감축 시켰을 것이다. 본건은 결국 계약서 조항의 세심한 작성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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