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운을 살리겠다는 건지 망가뜨리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정부 정책의 엇박자가 너무 심한 거 같다.”
최근 해운사 경영자가 공정위 조치와 선박안전법 규정을 언급하며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앞에선 해운산업을 육성하고 해운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뒤로는 선사 압박에 골몰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국적선사 12곳에 최대 56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판단해 해운업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과징금 부과 이유는 동남아항로 운임 담합 행위다.
공정위는 나아가 한중항로와 한일항로를 대상으로 막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같은 결론을 낼 경우 국내외 선사에 부과될 과징금은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판단은 우리나라 법적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어서 업계의 반발이 크다. 해운법은 29조에서 정기선사에 한해 ‘운임·선박배치, 화물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해운시장의 무분별한 경쟁이 오히려 국가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한 근본 취지다.
공정위 전신인 경제기획원도 해운사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 적용에서 제외했다. 미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주요 해운선진국도 해운사 공동행위는 독점금지법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해운업계와 부산 인천 여수 광양 목포 등 주요 항만지역에서 공정위 조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하는 게 유난스러운 일이 아닌 이유다. 국회 부산시의회 전남도의회 등 정치권도 공정위 비판에 가세했다. 화주단체인 무역협회는 공정위 조치로 오히려 화주가 수출입 물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공정위는 8월4일 선사들의 변론서 제출이 마무리되면 전원회의를 열어 해운사 제재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조만간 한국해운의 운명이 판가름 나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선박 결함 신고 책임을 포괄적으로 규정한 선박안전법도 해운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사고 이후 이 법 74조는 ‘누구든지 선박의 감항성 및 안전설비의 결함을 발견하면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신고를 하지 않은 선주나 선장 선박직원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규정에 의해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낸 국내 굴지의 선박회사 최고경영자가 징역 6월의 실형을 받았다. 선박 사고로 선주에게 실형이 선고된 첫 사례다.
문제는 74조 내용이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감항성, 이른바 선박의 안전 항해 능력을 상실케 하는 결함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 명확하지 않다. 사고 원인은 따로 있는데도 경미한 결함을 신고하지 못한 이유로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누구든지’로 규정한 신고 주체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반면 항공안전법과 철도안전법은 신고 대상인 고장이나 결함 기능장애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 전략’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1만6천TEU급 < HMM한울 >호 출항식에서 발표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국적선사들은 전인미답의 호황기를 지나는 해운시장의 과실을 수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정부 행보는 해운 육성의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와 해운사 사주나 선장 선원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드는 처벌 위주식 법제도는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을 발전시키기보다 붕괴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운리더국가 목표에 걸맞은 지혜로운 행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