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노동계에서 외국선박에 타고 있는 한국인선원의 노동권 관리를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 주목된다.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김두영 의장(SK해운 연합노조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해외취업 한국인선원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노조단체에서 하고 있는 근로계약 심사를 해양수산부에서 직접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은 “현재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선원은 3500명 정도밖에 안 돼 심사 업무가 하루 10명꼴에 불과한 데도 해수부는 이를 직접 안 하고 해외취업노사협의회에서 제출한 서류에 도장만 찍어주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한국에 온 외국인선원 인권은 존중한다고 하면서 외국에 일하러 나간 한국인선원의 인권과 복지는 나몰라라 하는 거냐”고 비판했다.
그는 “선사들이 BBC(나용선, 선박만 빌리고 선원은 선사에서 직접 채용하는 용선 형태) 방식으로 선박을 운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선박의 실질적인 소유주(Beneficial Owner)가 국적선사임에도 현재의 제도라면 이들 BBC선박에 탄 선원의 소속은 페이퍼컴퍼니(SPC)인 외국회사로 분류돼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은 SK해운은 단체협상을 통해 노조가 BBC선박에 타고 있는 선원들을 정규직화해서 보호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현재의 법 체계에선 BBC선박의 선원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선사 선박에 승선한 선원은 해당 국가 제도 하에서 관리하더라도 실질 소유주가 한국기업인 편의치적선박에 탄 선원만큼은 정부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의장은 “해외 송출 선원을 정책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선원관리사업자의 역량을 키우는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실질 소유주가 한국기업인데도 선원은 해외 송출선원이 되는 문제는 산업 측면에서 봤을 때도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자본과 국내 자본이 공동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늘어나기 때문에 BBC 형태의 선박거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선박에 취업하는 선원들도 늘고 있는데 그에 따른 제도적인 뒷받침은 안 되고 있다.
선박관리업이 발전하려면 우리 선원을 보호하는 법 제도가 같이 개선돼야 한다. 해외 취업한 선원이 국내 선원법에 준하는 근로계약서를 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해운노조협의회 박상익 정책팀장(SK해운 연합노조본부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국적선사가 운항하는 선박, 이른바 무늬만 외국적인 선박뿐 아니라 실제로 해외선사가 운항하는 선박에 취업한 선원들도 정부에서 적극 개입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원법이 국적선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선박관리사업자 규정이 112조에 들어가 있다”며 “해외선박에 탄 선원이기 때문에 관리 대상이 안 된다는 건 오히려 우리 법 취지에 맞지 않는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임금이나 국민연금 등을 놓고 봤을 때 우리 법은 선원관리사업자를 사용자로 보고 있다”며 “현재 선원법에 송환이나 재해보상 의무를 국적선사에게 지우고 있는데 동일한 규정을 선원관리사업자한테도 적용해서 재해보상이나 송환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 된다”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또 “선원 개인이 해외선사에 취업하는 경우는 없다. 선박관리사업자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며 “선박관리사업자를 거쳐 송출되는 한국인선원의 근로계약 등은 과거처럼 국가에서 심사하고 보증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기장 부의장(동진상선 노조위원장)은 “정부에서 (해외취업선원) 관리감독을 해야 함에도 책임을 방기해 민간에 위탁해서 이런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 2019년 ‘선박관리업의 등록관리요령’을 개정하면서 지방해수청장이 선원근로계약을 심사하도록 한 규정을 없앤 사실을 지적한 말이다.
부산서 음성판정 받아서 인천서 하선 못해
간담회에선 선원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문제도 제기됐다.
“해운시장 호조로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코로나 때문에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선원들 문제가 표면화되고 있다”고 말을 꺼낸 김두영 의장은 “한 여객선 선장은 맹장염에 걸려 배에서 내려 PCR(유전자 증폭)검사를 받았는데도 병원에서 안 받아 줘서 복막염이 돼 장을 세척까지 했다”고 척박한 선원 현실을 전했다.
그는 “선원들이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긴급의료시설을 도입해야 한다”며 “각 항구마다 도입하는 건 어렵더라도 지역별로 병원을 지정해서 위급상황이 됐을 때 코로나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선원들을 조치하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특수직업인 선원들의 접종 절차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정용현 이사(동아탱커 노조위원장)는 “현재는 선원이 3개월 기간의 주요 경제활동 출국자로 분류돼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며 “의료종사자나 항공승무원처럼 선원도 교대자에 한해 우선순위로 백신접종을 할 수 있도록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수헌 부의장(대한해운 연합노조위원장)은 “그동안 배에서 내린 뒤 접종을 신청하도록 했는데 해운협회 해수부 질병청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서류 신청하는 데만 10일 이상 걸려 못 맞는 경우가 많았다”며 “현재는 승선 조회를 해서 승선 중에 신청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차를 맞은 뒤 2차까지 맞아야 선박에 승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원들이 백신 접종을 기피했다”며 “지금은 1차를 맞고 승선했다가 내려서 다시 2차를 맞을 수 있도록 바뀐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선원들에게 불편한 여러 절차 때문에 해수부가 최근 실시한 백신 접종 신청 접수에서 선원들의 신청 사례는 80여건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학희 천경해운 노조위원장과 하성천 남성해운 연합노조위원장은 “외국을 나가는 선박이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해상선원들은 코로나 정책에서 항상 불리한 조건”이라며 “출입국사무소가 밤 11시에 끝나는데 PCR 검사 결과는 12시에 나와 결과를 받고도 배가 출국하지 못해 체선이 빚어진다거나 부산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도 인천이나 광양 울산 등 다른 국내항에선 다시 검사를 받아야 교대를 하거나 배에서 외출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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