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2 14:20

재판에 이겼지만 문닫게 생긴 포워더 ‘무슨 일이’

대형운송사업, 운송책임조건 및 추가물류비용 등 계약서 기재 필수
 
 


수출화물을 실은 선박이 목적지에 입항한 후 하역작업을 마쳤더라도, 운송물이 통관된 후 수입자에게 전달되기 전까지는 운송이 최종 마무리됐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화물이 선하증권(BL)상 지정돼 있는 화주에게 최종 인도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6월 국제물류주선업체인 A사가 B사를 상대로 낸 운송대금소송(2019다205947)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운송인의 책임범위는 운송물을 수입자에게 최종적으로 인도하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상법상 선하증권이 발행됐을 땐 BL의 정당한 수입자에게 화물을 인도해야 운송의 책임에서 벗어난다는 의견이다. 지난 2004년 대법원은 운송물을 하역해 보세창고업체에 인도한 것만으로 운송인의 책임이 끝났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수입자가 운송물 수령해야 인도의무 완료

1심에서는 운송을 맡은 원고가 승소했다.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피고 측은 2심 고등법원에서 ‘제척기간’을 문제 삼아 원고 패소 판결을 얻었다. 제척기간이란 화물 운송인도가 완료된 날을 기점으로 소송 제기를 허용해주는 기간을 뜻하며, 법원의 직권조사 사항이다. 화물운송은 2013년에 이뤄졌지만 실제 소송은 이보다 약 3~4년 후인 2017년이 되어서야 제기돼 구상권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게 피고 측의 주장이다.

법무법인 세창 김현 대표변호사는 “제척기간이 고등법원의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 만큼 피고 B사가 잘 지적했다”면서도 “고등법원이 제척기간의 시작점을 무리하게 해석했지만 대법원은 법리대로 인도한 날로부터 1년 이내라고 판결했다”고 평가했다. 고등법원은 선박이 터키에 입항해 중고차를 하역한 날을 제척기간의 시작점으로 바라봤지만 대법원은 화물이 통관된 후 수입자가 수령한 날을 기점으로 판단한 것이다.

수출자나 수입자에 대한 채권·채무 구상권은 상법 제814조 1항에 따라 청구원인에 상관없이 제척기간(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 이내) 내에 제기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이번 사건처럼 운송물 인도가 불가능하거나 운송물이 멸실됐을 경우에는 ‘운송물을 인도할 날’을 제척기간의 시작점으로 간주한다. 

김 변호사는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을 통해 포워더들이 주목해야 할 세 가지 교훈을 제시했다. 우선 청구권이 있으면 제척기간 기준 1년 내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게 최대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복수의 수출업자가 엮인 운송을 주선하다가 추가비용이 발생하면 부담주체와 지급여부 등을 운송인(포워더)이 확실히 구분하고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정치·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국가로 운송할 땐 정상적인 운송기간 내에 화물이 보낼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추가비용이 발생하면 미리 수출업자나 대리인인 포워더와 사전에 긴밀하게 상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 변호사는 향후 고등법원에서 추가 판결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제척기간이 시정되면 원고가 사실상 승소할 것으로 본다는 뜻을 내비쳤다. 원고가 불가피하게 발생한 물류비용 등을 지불하며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피고가 원고에게 누적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원고, 이미 사업장 철수해 폐업수순
 
원고 측이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기자는 원고와의 인터뷰를 추진하기 위해 마포구 소재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원고는 이미 사업장을 철수한 상태였으며, 해당 사무실에는 다른 업종의 세입자가 입주해 있었다. 건물 관계자에 따르면 원고는 지난해 3월 철수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전산상 서울 마포구에서 여전히 영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해당 업체는 아직 폐업신청을 하지 않았다. 포워더 설립요건 중 하나인 화물배상책임보험을 갱신하지 않아 사업정지 30일의 처분을 받았다”며 “30일 이내 보험이 갱신되지 않으면 60일 정지처분을 받게 되며, 이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면 시청이 강제로 폐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고 측은 기자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양사를 취재할 수 없었던 점에서 해당 사건의 내용을 담은 BL과 계약서 묶음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판결이 공론화되면서 포워딩업계에서도 이번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

물류업계는 포워더 간 코로딩업무가 비일비재하다면서도 이번 사건처럼 포워더 간 외상거래는 흔치 않은 점을 들어 양측에게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원고 측의 소송내용을 보면 원고가 외상으로 물류업무를 진행한 것 같다. 외상으로 코로딩업무를 진행한 건 원고의 잘못이다”고 평가하면서도 “피고가 그동안 물류대금을 제때 지급하는 등 신용이 좋아서 이해관계에 따라 월 단위로 물류대금을 처리했을 가능성도 있다. 포워더 간 거래더라도 영업상 건별 물류대금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입찰을 통한 포워더 간 계약거래는 반드시 별도의 계약서를 마련해 각종 운송조건과 비용지불 문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국내 포워딩시장에서 코로딩으로 진행되는 운송계약은 상당하다.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중소 포워더가 높은 운송료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형 포워더에게 화물을 몰아주면 저렴하게 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 포워더로선 화물을 제공해주는 대신 저렴한 운송료로 화물 운송을 맡긴 실화주에게 좀 더 차익을 남길 수 있다.

그는 포워딩업체들이 대형 운송업무를 맡게 될 때 주의해야 할 점으로 ▲명확한 물류비용 제시 ▲서류상 사전 제반조건 기재 ▲불가피한 문제 발생 시 상호 협의로 해결할 것 등을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계약 적용기간(validity) 등을 계약서에 명시해 법적효력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협회 BL 늘리고, 화물배상보험 한도 강화해야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과 별개로 각종 해상운송 분쟁에서 포워더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국제물류협회(FIATA)나 한국국제물류협회(KIFFA)의 BL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워더가 발행하는 하우스BL은 FIATA BL과 KIFFA BL이 대표적이다. 두 BL은 국제상업회의소(ICC)의 규정과 헤이그비스비규칙에 근거하고 있으며, 화물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책임범위나 보상한도 등을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다. 각종 해상운송사고 및 분쟁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 협회 BL은 포워더에게 최적의 운송 보험수단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영세한 중소 포워더들은 법적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중의 일반 BL을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해 각종 분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운송과정에 대한 법적분쟁이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양측의 운송계약서를 살펴보고, 그 후 BL을 대조하는 만큼 법적보호를 받는 BL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평가다. KIFFA에 따르면 협회 BL은 화물이 파손됐을 경우를 가정해 볼 때 패키지당 666.67SDR(약 920달러) 한도 내로 배상받을 수 있다.

BL 사용 외에도 포워더들의 기본 설립요건인 화물배상책임보험의 가입한도액을 높여 배상한도 1억원을 10억원으로 대폭 높여 선량한 수출업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국제표준에 맞는 상법개정 시급

김현 변호사는 글로벌스탠더드(국제표준)와 동떨어진 상법 802조도 하루빨리 개정해 포워더들의 권익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법 802조는 수입자가 부두에서 화물을 ‘수령’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초 상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운송물을 양륙(하역)할 의무에 그쳤지만 양륙이 수령으로 개정되면서 우리나라만 해외 주요 국가들과 동떨어진 법안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통상 선사가 발행하는 마스터BL상 수하인(받는사람)으로 포워더가 기재되다 보니 포워더가 모든 수령의무를 짊어지게 된다. 수출자가 화물의 가치가 없는 쓰레기 화물이나 수출 금지품목을 무더기로 보내는 게 빈번해지면서, 수입 포워더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화물을 수령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 변호사는 “상법 802조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입법이다. 포워더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항인 만큼 조속히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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