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부터 부산항 북항 자성대부두를 운영해 온 한국허치슨터미널과 해양수산부 간 갈등이 깊어졌다. 오는 6월 부두 임대차계약이 만료되는 허치슨터미널의 부두 재계약을 2021년까지만 연장하겠다는 부산항만공사(BPA)의 통보 이후부터다.
이는 지난달 말 고시된 해수부의 ‘항만재개발 기본계획 변경’ 에 따른 것으로, 해수부는 2021년 12월31일부로 자성대부두의 운영이 종료되며 이듬해부터 재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확정지었다. 기존 자성대부두의 물류기능과 인력은 현재 동부부산컨테이너터미널 자리인 신감만부두와 감만부두 1개 선석으로 이전된다. 허치슨은 지난해 3월 BPA에 부두 운영기간을 20년 더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번 통보로 2022년 이후 잔류 여부가 기로에 놓였다.
泰 램차방 협상 결렬…대체부두 제공 여부 쟁점
허치슨의 향방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9월 해수부가 부산항 운영사 통합계획을 발표하며 허치슨과의 재계약을 확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허치슨이 태국 램차방항에서 운영하는 터미널의 선석 2개를 우리 국적선사 전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재임대 해주는 조건을 걸고 재계약 협상에 돌입했다. 그러나, 협상은 태국 항만당국에서 터미널의 전대를 허용하지 않아 결렬됐다.
해수부는 북항재개발 2단계에 자성대부두가 포함됐으며, 국가 차원의 정책 방향을 고려할 때 현재로서는 허치슨과 2022년 이후론 재계약을 연장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난 2011년부터 항만기본계획에 자성대부두의 재개발 계획을 2020년 이후로 명시해 왔다”며 “이는 결국 허치슨에 10년에 달하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허치슨은 “20년동안 성실히 부두운영을 지속해왔는데, 이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임대 계약을 끝내는 건 문제가 있다”며 “정부에서도 확실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재계약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 측은 ‘대체부두’ 제공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부두 제공 여부에 따라 허치슨의 부산항 사업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허치슨은 정부가 부두 이전이 불가피한 운영사들에 대체부두를 제공한 선례가 있음을 강조했다. 2008년에 정부는 북항재개발 1단계 사업을 추진하며 북항 3, 4부두 운영사에 대체부두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 당시 BPA는 신항 부산신항만(PNC) 보유 선석 2개의 관리운영권을 6000억원에 양도받았다. 양도는 신항 임대료가 북항보다 40배 가량 비싸 당시 운영사들이 임대를 포기하며 결렬됐지만, 정부에서 먼저 대체부두를 제안한 점에서 현재 허치슨에 대한 처우와 대조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1단계 사업 당시 대체부두를 제공한 건 당시 운영사들의 북항 부두 임대기간이 1년 정도 남았었기 때문”이라며 “오는 6월로 부두 임대기간이 만료되는 허치슨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허치슨이 부산에서 터미널 사업을 철수하게 될 경우 한국 시장에서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현재 허치슨은 부산과 광양에서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 터미널은 지분 100%를, 현대상선 고려해운과 컨소시엄으로 운영 중인 광양터미널(KIT)은 지분 89%를 보유했다. 허치슨은 “항만 규모, 물동량, 성장속도를 고려하면 허치슨의 한국시장 투자에서 부산항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항만운영 대책 마련 시급…재개발 지연 가능성도
허치슨은 계약 당사자인 BPA와 지속적으로 2022년 이후 상황에 대해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정책방향과 부산항 운영 모두 고려해야 하는 BPA는 “현재 양측 간 이견이 생겨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직 허치슨과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남은 2년여 기간동안 충분한 조율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치슨과의 재계약 여부를 떠나 부산항은 자성대가 폐쇄된 이후 항만 기능 정상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2002년부터 허치슨이 운영 중인 자성대부두는 전체 1.5km의 안벽에 선석 5개로 이뤄졌으며, 1000명 가까이 되는 항만 인력이 연간 200만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 반면, 북항 운영사 통합 후 자리가 나는 신감만과 감만부두 일부는 자성대보다 규모가 작다. 신항 부두개발이 완료돼 인력 재배치가 이뤄져도 자동화가 도입된 상황에서 모든 인력을 흡수할 진 물음표가 붙는다.
일각에서는 자성대부두의 재개발이 제 때 이뤄질 지 미지수인 상황이라 허치슨의 임대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2008년부터 추진된 북항재개발 관련 사업들은 수년간 지연돼왔다. GS컨소시엄이 2011년에 민간사업자로 선정된 복합상업·주거지구개발사업은 이제서야 착공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같은 해 싱가포르 SUTL그룹의 제안으로 추진된 마리나항만개발사업 역시 4년 후 싱가포르회사의 사업 포기로 지연되다 올해 실시설계에 돌입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부두 임대료가 연간 250억원에 달할 텐데 재개발 일정이 지연될 경우 BPA에서도 임대 수입을 계속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 자성대부두의 이전에 대한 상세한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성대부두에 있는 모든 컨테이너와 크레인 등 하역장비를 옮기려면 복잡한 과정과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2년 반 남짓한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라고 말했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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