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선사들이 CRC(비용보전할증료)란 낯선 이름의 부대운임을 들고 나와 화주들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동남아항로 취항선사들은 지난달 20일 TEU(20피트 컨테이너)당 50달러 규모의 CRC를 전격 도입했다.
이번 CRC 도입은 급격한 유가 상승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해운업계는 선박연료가 연초 대비 약 20% 인상된 t당 4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벙커인덱스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 선박연료유 가격지수(BW380)는 지난 2월 300달러 후반대를 형성하다가 5월부터 400달러 중후반대까지 치고 올랐고 현재까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선사들이 아시아지역 급유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는 싱가포르항의 연료유(IFO380 기준) 가격은 8일 t당 460달러대다.
최근 크게 오른 용선료도 CRC 도입의 배경이 됐다. 용선료는 선사들이 가장 많이 지출하는 비용항목 중 하나다. 업계에 따르면 선사들은 용선과 사선의 비중을 5:5로 두거나, 8:2의 비율로 용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남아항로에 주력으로 투입되는 방콕막스의 일일용선료는 전년 대비 1.5~2배가량 인상된 1만5000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과잉으로 운임 반토막
원가가 꾸준히 상승하는 것과 달리 운임은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있다. 8일 현재 한국발 동남아행 운임은 홍콩행이 TEU당 1~50달러, 하이퐁 싱가포르 말레이시아행이 100달러, 방콕 호치민 인도네시아행이 200달러 대를 이루고 있다. 몇 년 전 운임과 비교하면 사실상 반 토막난 셈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2~3년 전과 비교해 해상운임이 상당히 뒷걸음질 친 상황이다. 운임만 놓고 보면 영업환경이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며 “CRC를 걷더라도 원가 상승분을 메우는 건 쉽지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선사 관계자는 “이 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이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화주들에게 최상의 스케줄을 제공하려면 CRC 도입이 불가피하다. 선사들의 어려움을 화주들이 이해하고 공감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CRC 청구에 대해 화주들의 반응은 달갑지 않다. 중소 물류기업과 이 항로를 주력으로 하는 콘솔(화물혼재)사들은 늘어난 비용청구에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선사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내 주요 2자물류기업(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은 연초에 맺은 계약운임을 고수하며 회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콘솔업체 관계자는 “비용이 증가하면 우리도 실화주에게 비용을 받아내야 하는데, 아직까지 콘솔업계의 움직임이 미온적인 터라 (우리 회사도)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반기 수출입물동량 144만2000TEU…수입이 수출 압도
올 상반기 한국과 동남아시아 주요 항로 간 처리한 수출입물동량은 144만2000TEU를 기록했다. 수출물동량이 70만7438TEU, 수입물동량이 73만4619TEU로, 수출물동량은 지난해와 비슷했고, 수입물동량은 5~6% 늘어났다.
물동량이 가장 많은 베트남은 수출이 22만1584TEU, 수입이 21만6481TEU였다. 홍콩은 31만1047TEU로 베트남 뒤를 이었다. 수입이 17만7829TEU를 기록해 수출 13만3218TEU를 꺾었다. 해운업계는 상반기까지 수입물동량이 수출을 따돌린 점에서 올해 총 물동량도 수입이 수출을 압도하는 첫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 항로는 수출이 수입을 압도하는 시장인데, 올해 수입이 수출보다 많은 첫 해가 될 것”이라며 “최근 폐재활용품 수출 중단과 국내 기업들의 물량 감소로 수출이 주춤하지만, 수입은 우드팰릿 수입 활성화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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