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공사에 와서 실패한 3년을 보냈단 생각을 많이 한다. 다음 이재웅 창업자가 최근 인터뷰에서 지향점을 내부 구성원과 공유하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얘기했는데 제가 실패한 게 지향점의 합의를 못 이뤄낸 거다. 지향점, 부산항만공사의 방향성을 숱하게 강조했지만 저 혼자만 얘기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달 말로 임기를 마치는 부산항만공사(BPA) 우예종 사장은 해운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지난 3년을 이렇게 술회했다. 모두를 위한 사업이란 확신이 있으면 직원들을 설득하고 공유해 함께 나아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다.
우 사장은 취임 이후 BPA와 부산항의 혁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두 간 셔틀운송(ITT) 개편, 부산신항 근해선사 전용부두 개장, 영도 봉래동 예·부선 물양장 정비, 해외 마케팅 강화 등이 성과를 낸 대표 사업들이다.
그는 업무 혁신을 얘기하면서 봉래동 예부선 물양장 정비사업을 소개했다. 적정수용능력이 70척인 이 곳은 140척이 넘는 부선이 방치돼 민원의 타깃이 됐다. BPA는 선박들을 인근 계류장으로 옮기고 이곳을 시민 휴식공간으로 개발할 방침이다.
“얼마 전 배를 타고 직원과 (물양장) 구석구석을 봤다. 우리 직원들의 노력으로 100척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40척이 남았더라. 휴식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은 진척이 잘 안 됐다. 터미널에서,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육군수송단에서 반대해서 못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물양장을) 갔다온 뒤 전화해보니 해결이 다 되더라.
혁신이라는 게 답습과 고정관념, 안 된다는 생각을 깨는 거 아닌가? 직원을 야단만 쳤지 그렇게 (혁신)했을 때 효과가 뭔지, 결과물에 대한 공유를 안 하고 제 생각만 강요한 게 아닌가 후회스러운 맘이 든다.”
북방물류 시범사업 결실
우 사장은 임기 중 공을 들인 사업으로 부산항을 축으로 하는 국제물류 네트워크 조성을 꼽았다. BPA는 현재 북방물류사업과 남방물류사업을 벌이고 있다. 북방물류사업의 경우 중국 동북2성(헤이룽장성 지린성)에서 나오는 화물을 부산항으로 유치하는 프로젝트다. 남방물류사업은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투자 잠재력이 큰 신흥 항만물류시장에 우리 기업과 함께 진출하는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BPA의 전략 다변화로 부산항은 올해 들어서도 견실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상반기 부산항 처리량은 1063만7000TEU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4.3% 늘어난 수치다. 수출입물동량은 1.3% 성장한 511만4000TEU, 환적물동량은 9% 늘어난 552만3000TEU였다. 우 사장은 선사를 대상으로 환적거점을 중국에서 부산으로 옮기도록 유도하는 마케팅을 계속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 부산항 물동량 목표는 2150만TEU다.
“북방물류의 경우 중국 일본시장에서 우리가 직접 마케팅해서 선사들에게 (화물을) 넘겨주는 식으로 전략을 바꿨다. 중국 동북2성에서 남중국으로 보내는 백산수를 50개 100개 정도 시험적으로 (부산항을 거쳐) 수송하고 있다. 중국정부에서 (부산항 연계수송을) 필요로 하더라. (북한) 나선(라진·선봉)지구도 2년 내에 기회가 될 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 사장은 부산신항 다목적부두(BNMT)를 국적 근해선사 전용부두로 전환하면서 직접 부두운영사업에 뛰어든 일도 상세히 소개했다. BPA는 지난 5월 다목적부두를 국적선사 피더부두로 재개장했다. BPA가 터미널을 운영하고 하역은 세방과 동원동부익스프레스에서 맡는 사업모델이다.
“KSP(한국해운연합) 전용터미널로 만들어진 다목적부두는 연간 18만TEU의 물동량을 확정지었고 20만TEU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동식 크레인이 2대로 늘어났는데, 생산성이 (시간당) 20~22개까지 나온다. 선진국 항만의 갠트리크레인 수준이다.
이로써 신항에서 전용선석을 확보하지 못해서 서러움을 받은 KSP 선사들의 고충이 해결됐고 우리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터미널 운영 경험을 얻게 됐다. 선사와 직접 계약하고 장비를 유지관리하고 고객을 대응하는 직원 훈련을 강화해서 해외터미널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
ITT운송사업자조합 발족으로 환경 개선
운송사업자조합을 발족시켜 ITT의 질적 개선을 도모한 것도 큰 결실이다. ITT운송사업자조합은 BPA의 전산 지원을 받아 귀로화물을 유치하는 등 운전기사의 권익을 제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재 160만TEU 정도가 ITT화물이다. 선사들이 운임 인하를 압박하면서 ITT 기사들이 운송을 못하겠다고 차를 세우려고 했다. 결국 얼마 전 (운전기사 권익단체인) ITT운송사업자조합을 발족했다. 조합에서 ITT물량의 70%를 운송할 것으로 보인다.
정착이 되면 우리가 전산시스템을 개발해서 귀로운송화물을 제공해 수익성을 높이고 노후된 차량을 교체할 수있도록 지원하겠다. 운전기사 채용도 지원할 수 있을 거 같다. 부산항의 ITT 경쟁력이 올라가고 운송사들도 열악한 처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조합 정관에 파업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넣어 정치세력화에 대한 우려도 없앨 계획이다.”
우 사장은 북항 허치슨터미널(자성대부두) 폐쇄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북항이 예전 전망과 달리 지난해 560만TEU를 처리하는 등 여전히 상업항으로서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북항은 물동량 실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30위권내 항만이다. 이런 북항을 폐장한다는 건 안 될 일이다. 여건이 된다면 계속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잘 되고 있는 자성대부두를 문 닫게 하고 신항으로 가도록 하는 것도 잘못된 판단이다.”
우 사장은 정부의 기계적인 균형발전 논리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외국에서도 부산항의 가능성을 다 인정한다. 그런데 업계와 공직자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거 같다. 부산항 발전의 효과가 크고 지역과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일깨우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부산항은 여건이 매우 좋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에 우리 직원들이 소극적으로 바뀌는 거 같아 안타깝다.
기재부 해수부 관세청 부산시 등에서 규제를 풀어주면 부산항은 날개를 다는 게 아니라 로켓을 타고 우주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기반과 역량을 갖췄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고 항만공사 직원들이 끙끙 앓지 않도록 많이 도와 달라. 부산항은 (국내 항만 중) N분의 1이 아니다.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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