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에 전 세계 해운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IMO는 전 세계 해역에서 선박들이 배출하고 있는 연료유의 SOx 함유량을 0.5% 이하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선박의 배기가스가 해양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기준을 현행 3.5% 이하에서 크게 강화하기로 한 것. IMO의 배출 규제 개시일은 2020년부터다. 규제시행 1년 반을 앞두고 해운사들은 해법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다.
해운업계 3가지 대응방안 놓고 고심
SOx 배출 규제를 앞두고 전 세계 해운업계가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갈림길에 서있다. 선주들은 강화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저유황유(MGO) 또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선박의 주 연료로 사용하거나 저감장치(Scrubber)를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저유황유 도입은 추가설비가 필요하지 않아 규제를 만족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이 때문에 최근 선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영국 드류리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MGO를 사용할 것이라는 선주들의 답변이 주를 이뤘다. MGO를 선박의 주연료로 도입하겠다는 답변이 66%로 절반을 넘은 반면, 저감장치 탑재와 LNG연료 도입은 각각 13% 8%에 그쳤다.
하지만 MGO는 고유황유에 비해 가격이 40~80% 이상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정유사별로 제조방법이 달라 유황함량이 상이하며, 내부성분이 엔진 내부 부품을 마모 또는 폐색(閉塞)시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현대상선 선박관리자회사인 현대해양서비스의 최종철 대표는 대다수 선박에 MGO가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더불어 스크러버를 탑재한 선박은 현재 400척에서 2020년 1500척으로, LNG추진선박은 100척에서 400척으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관건은 정유사들의 생산량에 따라 MGO 가격이 큰 변동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정유사가 연료를 생산하게 되면 단가는 자연스레 하락하고 선사들은 MGO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저감장치 탑재는 단가가 저렴한 고유황유를 예전처럼 사용하며 강화된 SOx 규제를 만족할 수 있다. 다만 장치 설치시 척당 200만~500만달러에 달하는 초기 비용이 발생한다. 또한 배기관 내 압력 증가로 이를 조절할 장비를 설치하거나 배기관 배치 등을 고려해야 한다.
영국 로이즈리스트는 “스크러버 탑재가 LNG추진선박을 발주하는 것보다 저렴한 옵션이 될 수 있겠지만 설치비용이 최대 500만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선주들의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LNG 연료를 사용하면 MGO에 비해 친환경적이고 발열량이 20% 이상 높아 선박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LNG를 엔진에 안전하게 공급하기 위해 저장탱크와 이중관설비 등을 추가로 설치하는 데 많은 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약 200TEU의 화물 공간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현재 LNG 연료유 공급(벙커링) 설비가 유럽지역 위주로 구축돼 있어 수급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해운업계는 규제를 앞두고 셈법이 복잡하다. 최근 한국선급이 발표한 보고서는 연료유와 설비가격의 변동율을 가정해 각 대응방법의 장단점을 분석했다. 한국선급은 대상선박을 대형컨테이너선으로 선정, 현재 MGO 공급가격(t당 460달러)을 기준으로 경제성 분석을 실시했다.
선급은 현재 연료유 가격 기준에 따라 SOx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응방안으로 스크러버를 설치하는 방법이 가장 경제적이라고 밝혔다. 반면 연료유 가격이 현재 대비 40% 이상 상승할 경우 LNG를 주연료로 사용하는 게 가장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밖에 업계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MGO는 2020년 이후 제한된 기간 동안만 선박을 운영하고자 하는 선주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선급 관계자는 “저감장치 설치와 LNG를 주연료로 사용한는 방안은 경우에 따라서 가장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 있지만 운항한 선박들의 실적이 제한적이어서 운영시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세계 1위 머스크 MGO 사용 ‘가닥’
각 방안마다 장단점이 있어 선사들의 대응방법은 제각각이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라인은 저감장치 적용보다는 MGO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과거 스크러버 탑재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며 MGO 사용을 언급한 바 있다.
2위 선사인 MSC는 저감장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한편, MGO 사용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2만3000TEU급 신조선 11척에 이어 현재 운항 중인 1만9000TEU급 25척에 스크러버를 달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재 MSC가 보유한 컨테이너선은 521척에 달한다. 자사선인 195척에 스크러버를 탑재할 경우 39억달러(약 4조2100억원)라는 막대한 자금이 발생한다. 이 금액도 설치비용을 최저 가격인 200만달러로 가정했을 때 얘기다. 스크러버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에 미뤄 8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규제와 관련해 MSC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이미 두 선사가 초대형선을 잇따라 발주한 바 있어 MGO 적용에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석유업체 엑슨모빌이 머스크 MSC와 MGO 공급에 관한 계약체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세계 3위 프랑스 CMA CGM은 규제 대응책으로 LNG 엔진을 채택하기로 했다. 이 해운사는 지난해 중국 조선소에 발주한 2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11척에 LNG 엔진을 적용키로 했다. 또한 자국 석유기업 토털과 계약을 체결, 2020년부터 10년간 약 30만t의 LNG 연료를 공급받기로 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CMA CGM은 LNG 가격 절감 혜택뿐만 아니라 새로운 LNG 공급망을 구축해 다른 지역에도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CMA CGM은 기존 1만9000TEU급 선박 25척엔 스크러버를 장착하기로 했다. 지난 2015년 CMA CGM에 인수된 APL은 규제 도입에 발맞춰 MGO를 사용할 예정이지만, 일부 선박에는 스크러버를 장착할 계획이다. 더불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5~2025년 30%까지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밖에 독일 하파크로이트는 MGO 사용을, 일본 NYK는 저감장치 탑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적선사들의 행보도 주목되고 있다. 현대상선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발주 예정인 모든 신조선에 스크러버를 장착하거나 LNG 추진방식의 선박 건조 등 2가지 방안을 놓고 현재 국내 대형조선사와 협의 중이다. 이번 신조 선박 발주로 현대상선은 선복량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을 갖추고, 2020년 발효되는 국제환경규제에 대비한 선단 구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M상선은 향후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중고선을 대거 확보한 SM상선의 선대는 대부분 선령이 낮은 편이다. 또한 당분간 신조 발주계획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MGO나 저감장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벌크선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팬오션은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으며,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유 선박들의 나이가 대부분 젊어 신조발주는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 해운사가 운용 중인 선박은 200척이 넘는다. 자사선과 용선 비율이 각각 40% 60%다. 팬오션 관계자는 용선과 관련해 “저감장치 탑재 등 아직 선주로부터 들어온 요청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폴라리스쉬핑은 지난해 10월 현대중공업에 32만5000t급 초대형벌크선(VLOC) 5척을 발주했다. 신조선에는 강화되는 규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름과 LNG를 함께 쓸 수 있는 LNG 레디(READY) 디자인이 적용됐다. 평형수처리장치와 저감장치 등 친환경 설비도 탑재됐다. 폴라리스쉬핑 관계자는 “컨테이너 선사와 마찬가지로 벌크 해운사들도 3가지 안을 놓고 고민 중이며 향후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이 각 사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며 배출 규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선사들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금 당장 신조선 발주를 추진하는 게 아니라면 올해까지는 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게 선사들의 입장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현재 신형 선박 비중이 높아 상선의 평균 선령이 2005년 13년에서 최근 9년 내외로 떨어졌다. 환경규제 강화에도 선박 교체 투자가 늘어나기에 현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선박에 저감장치를 달겠다고 공헌했던 선사들은 잔여 선박의 처리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다. 정유사들의 구체적인 설비확대 계획이 구체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고, 저감장치를 설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아직까지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환경규제를 앞두고 MGO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연료가격이 크게 상승한다면 스크러버를 달려는 선주들이 조선소에 줄을 이을 것”이라며 “선박연료유를 정유사들이 어느 정도 생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韓 친환경선박 보유 ‘주요 해운국서 하위권’
최근 친환경선박 확보에 나선 한국이지만 국제환경 대응수준은 다른 국가에 비해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컨테이너선은 총 193척(2017년 6월 기준)으로 고효율 친환경선박은 33척(17.1%)에 불과하다. 반면 그리스는 전체 선박 408척 중 133척인 32.6%가 친환경 선대로 이뤄져 있다. 1위인 그리스와 5위인 우리나라가 약 2배 이상 차이나는 셈이다.
중국이 25.5%로 2위, 덴마크 독일은 24.5% 18.3%로 3~4위를 기록하고 있다. 주요 5개 해운국의 고효율 친환경 선박 비중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5위에 그쳐 하위권에 속한다. 비율이 아닌 척수로 보면 독일이 가장 많은 고효율 친환경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KMI는 “우리나라는 친환경 선박 확보 측면에서 경쟁국과 비교해 상당히 저조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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