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을 재건하려면 250만TEU 이상의 선대 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부회장은 4일 서울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해운산업 발전방안 정책세미나’에서 정부가 내놓은 5개년 정책을 토대로 100만TEU 이상의 선대 확보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250만TEU를 뛰어넘는 컨테이너 선단이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양 1개, 근해 2~3개 메가 선사 체제로 개편돼야"
이날 김 부회장은 한국해운 재건 대책으로 250만TEU 이상의 선복량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양에서 200만TEU, 근해에서 50만TEU 이상의 선대를 구축해 ‘한국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서 더욱 진일보한 밑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중장기 목표로 제시한 250만TEU는 현재 세계 3위 프랑스 해운사 CMA CGM의 선복과 맞먹는 규모다. 아울러 내년까지 선대 증강에 나서겠다고 밝힌 중국 코스코와 비슷한 수치다. 코스코는 컨테이너 선대 규모를 250만TEU 이상으로 확장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홍콩 OOCL 인수와 초대형선 발주를 통해 세계 ‘빅3’ 진입을 꾀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향후 전 세계 해운시장 판도가 3개의 메가 컨테이너 선사 집단으로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계(머스크라인 MSC CMA CGM 하파크로이트), 중국계(코스코 OOCL 양밍 에버그린), 일본계 (ONE(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 체제로 향후 재편될 거란 분석이다.
그는 “지역별로 해운사들이 뭉칠 걸로 생각한다. 우리나라 해운사는 과연 어느 포지션에 있을 것이냐. 지역으로 본다면 중국일텐데 현대상선의 ‘2M+H’처럼 ‘차이나+H’가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원양선사는 초대형 친환경 선박확보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하는 한편, 국내외 M&A(인수합병)를 적극적으로 실시해 ‘One Mega Carrier’를 육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근해항로 역시 경쟁력 향상을 위한 로드맵을 구축해 2~3개의 ‘Regional Mega Carrier’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현재 가동 중인 KSP(한국해운연합)를 통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더 나아가 단일판매사→단일운영사→통합(2~3개) 체제의 중장기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부회장은 “근해 역시 컨테이너 선사를 재편해 PIL과 완하이라인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며 “역할분담 및 상호협조 시스템을 구축해 원근해 선사가 한 몸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운업에만 엄격한 구조조정 원칙 내세워”
정부의 무리한 해운업 구조조정이 국적 해운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부회장은 과거 정부와 채권단이 해운업계 원양 2개사의 경쟁력 강화보다는 채권회수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조정 ▲얼라이언스 가입 등을 해운업 구조조정 3대 원칙으로 정했다. 이같은 구조조정을 강요한 결과 한진해운은 파산했으며, 현대상선은 2M(머스크 MSC)과 불공정 전략적 제휴을 체결하게 됐다는 게 김 부회장의 설명이다.
반면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20조원) 성동조선해양(4조원) STX조선해양(8조원) 등 조선업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으나 구조조정에 실패했다. 동시에 채권단은 조선업에 ▲부실예방과 사전경쟁력 강화 ▲시장중심 구조조정 ▲산업과 금융측면의 균형있는 고려 등의 3대 원칙을 내걸었다.
그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전 5000억원, 그 이전에 영구채 4000억원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산업은행으로부터 거절당했다”며 “조선업과 달리 해운업에만 엄격한 구조조정이 적용됐다. 이럴 거였으면 구조조정 원칙을 해운업에 내세우지 말았어야 했다”고 밝혔다.
▲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부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해양금융종합센터와 해양보증보험을 설립했지만 위기극복에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가 국적선사 대신 해외선사를 지원해 국내 해운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셈이다. 실제로 정책금융기관은 2008년 이후 해외 선사에는 124억달러를 지원한 반면, 국내 해운사에 들어간 금액은 10년 동안 26억달러에 그쳤다.
김 부회장은 “1990년대 당시 유럽인들이 겁냈던 게 한국 선사였다. 한국인들이 몰려온다는 내용이 현지 매체에 실렸을 정도였다”면서도 “그렇게 우리나라 해운사를 경계했던 외국 해운업계였지만 지금은 낫싱(Nothing)이다. 우리는 20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이냐. 정부와 기업의 잘못이 크다”고 토로했다.
일본 정부, 민간기업 통합에 적극 지원
한국 해운산업이 한진해운 파산, 인력 축소, 신조 발주 중단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반면, 일본 해운선사들은 통합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일본 해운 통합법인 ONE이 올해 4월 성공적으로 출항할 수 있었던 건 자국 관계부처의 역할과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토교통성은 상환이율 인하 및 기간 연장을, 재무성은 재산세·취득세·법인세 경감을, 경제 산업성은 정부재정 및 일감 지원 등을 통해 일본 해운사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일본은 선사-화주는 상호 신뢰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해운과 금융이 공생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진해운 사태를 보고 반성한 일본 해운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며 “모든 부처에서 민간기업 통합을 적극 지원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전했다.
국적선사들의 화물 확보와 선박금융시스템 재편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은 올해 7월 출범하는 해양진흥공사의 자본금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장기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정책금융기관의 국적선사 선박금융 비중을 10%에서 50%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원양 컨테이너 선사들의 적취율을 12%에서 50%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초대형선 발주와 화물 확보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현재 정부는 초대형선 확보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국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원양 컨테이너 선사 선복량을 100만TEU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토론 참석자들은 선박 발주도 필요하지만 자국화주의 적취율을 높여야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토론 후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삼라마이다스(SM)그룹 우오현 회장은 "5개년 계획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선박을 인도해도 영업력이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몸집에 맞게끔 선대 확충이 이뤄지는 한편 국적선사들의 화물 적취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한국선주협회 이윤재 회장, SM그룹 우오현 회장, SM상선 김칠봉 사장, 에스더블유해운 강성훈 대표이사, 한국항만물류협회 김석구 부회장, 한국해기사협회 이권희 회장, 한국도선사협회 임상현 회장,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 류중빈 이사장, 한국해운조합 한홍교 이사장 직무대행, 케이엘넷 강범구 사장 등이 참석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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