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2 10:17

여울목/ 국적선사끼리 아귀다툼 벌일 땐가



올해 들어 정부의 해운 재건 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최초의 해운 전담 지원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5조원의 자본금 규모로 7월 출범하고 친환경선박 보조금 제도와 국가필수해운제도가 도입된다. 특히 해양진흥공사는 앞으로 국적선사의 선박 신조 지원, 국내외 터미널 확보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정부는 해운 재건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지원의 단서를 달았다. 국적선사들이 서로 협력해 다 같이 한국해운산업이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라는 주문이었다. 이 같은 취지로 결성된 게 국내 14개 컨테이너선사가 참여한 한국해운연합, 약칭 KSP다. 컨소시엄은 현대상선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을 비롯해 SM상선까지 원양선사와 근해선사 신흥선사 등을 총 망라했다.

하지만 국적선사들이 화합과 협력보다 밥그릇 싸움에 치중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사업을 인수한 SM상선의 대립은 해운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신생선사의 협력 제안을 국내 1위 선사가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SM상선은 현대상선에 미주 동안 노선 공동운항을 제의했고 현대상선은 사업제휴한 2M의 반대를 이유로 SM상선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거절 사유가 2M이 아니었다는 게 곧 드러났다. 국내 1위 선사는 자국선사 대신 이스라엘 짐라인과 손 잡고 미 동안항로 개설을 추진하고 있었고 이같은 움직임이 국내 해운업계에 포착됐다.

SM상선이 5월부터 미북서안 노선을 개설한다고 공식발표한 지 한 달 후 현대상선이 같은 항로의 운항선복을 13% 늘린다는 외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달 들어 현대상선과 SM상선의 ‘기싸움’은 더욱 첨예화됐다. 현대상선은 일부 매체를 통해 SM상선과 협력할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열거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미국 독점금지법, 2M의 반대, 화주기피, 덤핑영업, SM상선 부실 등이 주요 내용이다.

SM상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같은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이 SM상선과 협력해 한국해운 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아울러 주요 고객사에게 우수파트너상을 수상하는 등 화주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며 현대상선의 ‘SM상선 화주기피론’을 정면 반박했다.

급기야 SM상선은 한진해운 시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중국 코스코와 협력에 합의했다. 국적 원양선사들이 자국기업에는 등을 돌리고 외국선사와 손을 맞잡은 상황을 맞았다.

KSP 내에서도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수뇌부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원인이다. 지난 7일 해양수산부는 KSP가 한국-베트남항로를 13개에서 12개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3차 항로합리화다.

하지만 항로 구조조정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선사들은 해수부의 이 같은 발표는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 베트남항로 합리화가 KSP 차원에서 전혀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KSP 회의는 지난달 설 연휴 이후로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회원사들은 고려해운과 흥아해운의 일방적인 하이퐁항로 철수가 KSP 3차 항로합리화로 포장됐다고 평가절하했다. KSP 수뇌부가 항로합리화 결과 도출에만 집착하면서 선사 간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적선사들은 무한 경쟁의 세계 해운시장에서 외국선사의 공격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동반 발전을 도모하는 ‘순망치한’의 관계다. 분열과 반목이 아닌 대화와 협력에 힘을 쏟을 때 한국해운 재건이 오롯이 성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도 구조조정 결과에만 골몰하기보다 국적선사들이 결속을 도모하고 한국해운이 외형과 질적인 성장을 동시에 일궈갈 수 있도록 KSP의 방향을 유도해 나가야 한다. 한국해운이 백척간두에 선 상황에서 자사 이기주의에 매몰된 명분 없는 싸움은 국민의 호응을 얻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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