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9 09:05

"국내 항만 질적성장에 집중할 때"

부산 인천 등 고부가가치 항만으로 탈바꿈해야


 

지난 12월26일 부산 신항 제3부두(한진부산컨테이너터미널)에서 아주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바로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 2000만TEU 달성을 축하하고, 항만·물류업계 근로자의 노고를 치하하는 기념식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2000만TEU 돌파는 우리나라 항만 역사상 최초의 성과로, 향후 3000만TEU를 이뤄내기 위한 해운항만업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부산항 2000만TEU 달성은 지난 2016년 한진해운 파산이라는 위기에도 부산항만공사(BPA)의 적극적인 물동량 유치 활동과 부산항 이해 관계자들의 노력 끝에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1978년 부산 북항에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인 자성대부두가 문을 연 지 39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한편 부산항의 좋은 소식에도 이웃나라인 중국에서 들려온 뉴스에 다들 놀라는 분위기다. 바로 세계 최대 항만인 상하이항의 연간 물동량 4000만TEU 달성 소식이 동시에 전해진 까닭이다.
 


항만 난개발, 정부 및 지자체에 골칫거리

2004년 BPA 설립 당시 상하이항은 연간 1455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세계 3위 항만이었다. 매년 중국의 고도 경제 성장세에 맞물려 급속한 성장세를 이뤘다. 지난 2010년에는 2907만TEU를 달성해 세계 1위 항만으로 우뚝 올라섰다.

이후 불과 7년 만에 세계 최초 4000만TEU 달성이라는 고지를 밟음으로써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로서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의 준말)’의 항만이 됐다. 물론 부산항 역시 2008년 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사태, 2009년 유럽 경제위기 등 여러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 세계 5위 항만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획득했다.

성장 이면에는 항만 브랜드 네임 고취, 고부가가치 생산, 일자리 창출 등 풀어야할 과제가 남았다. 또 일본 항만을 예로 들면, 일본은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엄청난 무역 규모를 자랑한다. 이 화물을 처리하기 위해 일본 전역에는 약 65개 컨테이너 부두가 건설·운영되고 있다.

일본이 이토록 많은 항만 인프라를 보유하게 된 배경은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수차례 법률 제정 및 제도 정비를 통해 지방자치의 토대가 마련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 헌법 및 지방자치법의 시행으로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를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은 지방자치를 통해 지역 경제 부흥 및 낙후지역 민심 달래기 목적으로 지역 내 항만, 공항을 비롯한 산업 인프라 구축에 세계 어느 도시보다 많은 공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 결과 다수의 항만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많은 항만이 오히려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자동차처럼 일본 지자체를 매우 위태롭게 하고 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부 대형 항만을 제외하면 연간 물동량이 3000TEU에 못 미치는 항만이 있을 정도로 무분별한 항만 개발은 극에 달했다. 이후 여러 문제가 대두되자 일본 정부는 과거의 잘못된 항만 정책을 새롭게 바꿔 항만 대형화를 유도해 부두의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강화에 많을 공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설명한 내용을 이제 국내 상황으로 바꿔보면 우리가 처한 상황이 확연해진다. 변변한 자원하나 없이 모든 것을 해상 수출입(국내 수출입화물의 99.7% 해상수송)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당연히 항만, 공항 등의 건설에 어느 나라보다 선택과 집중에 더 신중을 기하는 게 옳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역대 정부 역시 항만, 공항 등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인프라 구축에 지역 균형 발전 및 지역 민심 달래기라는 논리를 들이대 전국에 무분별한 항만, 공항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는일본의 전례를 밟아 2015년 개장한 마산 가포신항(총사업비 약 3270억원·부산신항에서 불과 25km 위치), 무안공항 등을 필두로 장사가 되지 않는 항만과 공항이 하나둘씩 생겨 정부 및 지자체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 때 세계 5위 항만으로 자리매김한 고베항은 지난 1995년 대지진 사태 이후 외국선사 이탈과 자국 항만들과의 무리한 경쟁으로 이젠 전 세계 컨테이너 항만 중 상위 순위에서 한참 떨어져 군소 항만으로 전락해 있는 상태다.

이러한 일본의 일례를 빌어 이젠 세계 각국이 허브 중심항만 개발에 힘쓰고 있을 때, 대한민국은 수년 전부터 한반도를 전부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만드는데 큰 역량을 기울이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파급효과가 큰 항만이나 공항이 들어서면 지역경제로서는 분명 좋은 점은 많겠지만 만약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막대한 세금 낭비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앞서 말한 가포신항 역시 지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어 책임소재 파악 및 대책 마련에 분주한 실정이다.
 



부산항 부가가치, 세계 주요항만 40%에 불과

우리나라 최대 관문이자 동북아 최대 허브항만으로 성장한 부산항은 현재 전 세계 386여개의 항만과 연계돼 다양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부산항이 제공하는 물류서비스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할 사항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한창 성장세를 구사중인 인천항 광양항 울산항 역시 지역 중심 항만으로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어 미래가 기대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항만 외 신규 항만 건설로 인한 처리능력 증가와 한정된 물동량으로 인한 치열한 물동량 확보 경쟁에 내몰려 자칫 제살 깎아 먹기 식 경쟁으로 인한 서로의 공멸을 조심스레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즉 향후 항만물류관련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악화될 소지가 다분하기에 많은 항만관계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 PA(항만공사)를 비롯한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의 긴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단순 선박 입출항 등 항만물류에 그치는 항만산업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항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계 주요 항만에 비해 부가가치가 매우 낮다는 것이다.

부산항 역시 부가가치 규모는 약 6조원으로, 세계 1위의 환적항만인 싱가포르항(16.5조)의 35%, 로테르담항(14.3조)의 40%, 상하이항(16.8조)의 34% 등 해외 주요 항만의 40%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들 세계 주요 항만들의 특징은 대륙을 대표하는 허브환적항만으로 선용품산업, 해양관광의 중심지이자 넓은 배후단지, 선박급유업, 선박수리업, 공항과 연계 등 이용자들의 편리성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이들 항만이 벌어들어는 부가가치는 부산항을 비롯한 국내 주요 항만을 압도하고 있다.

최근 BPA를 비롯한 부산항 관계자들은 항만 연관산업 육성과 항만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본격 실행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항뿐만 아니라 인천 광양 울산 등 국내 대형 항만 관계자들은 지역 항만발전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 측의 현 항만 상황에 대한 현실 직시와 세부적인 지원책 마련에 그 성공의 열쇠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하이항 싱가포르항과 같은 고부가가치 항만이 될지, 아니면 군소항만으로 전락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정부의 결단이 요구된다.

 

< 부산=김진우 기자 jw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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