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춘삼월이 성큼 다가왔지만 북방물류시장을 주력으로 하는 국제물류주선업계(포워더)의 체감도는 아직 쌀쌀하기만 하다.
서방 경제제재와 유가하락 등에서 비롯된 러시아 루블화 폭락이 북방시장을 강타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시황회복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불황의 터널이 길어지면서 시황 회복을 기원하는 북방물류 전문 포워더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있다.
러 루블화 상승 불구, 프로젝트 발주 ‘잠잠’
북방물류시장이 좀처럼 침체의 늪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루블화 가치가 상승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북방지역을 오가는 화물은 2~3년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줄었다. 프로젝트 화물 유치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포워더들은 일감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현지구매력이 크게 저하된 탓에 평소 이곳으로 흘러들어갔던 중고차·전자제품 등의 물량은 크게 감소했다.
한 때 기회의 땅이라 불렸던 북방시장이 좀처럼 기지개를 못 펴고 있는 것은 러시아 루블화 폭락에서 비롯된다. 러시아의 경기침체 후폭풍은 중앙아시아(CIS) 지역을 강타했다. 특히 수입량이 폭증했던 ‘블루오션’ 몽골의 경제성장 둔화는 업체들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왔던 대(對) 몽골 수출은 투그릭 가치 하락 이후 평년 대비 40%로 줄었다. 최근 IMF로부터 6번째 구제금융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 몽골이지만 침체의 늪에서 언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통상 이 시기에 많은 화물이 몽골로 들어갔지만 언젠가부터 물량이 크게 줄었다”며 “몽골에 투입된 회사들이 철수하고 있어 상황이 매우 암담하고”고 토로했다.
그나마 바닥을 보였던 러시아의 루블화 상승은 북방시장의 전망을 밝게 하는 부분이다. 3월15일 현재 기준 러시아 환율은 1달러당 59.17루블에 거래됐다. 지난해 1월 말 달러당 83루블을 찍으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루블화 가치가 크게 상승한 셈이다. 지난달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對)러시아 제재 수정 발표 이후 루블화는 강세를 보였다. 일부 포워더들은 루블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러시아 수출 화물이 소폭 증가했다고 전했다.
다만 물류업계는 루블화 상승이 ‘시황 회복’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한편, 조금 더 시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다. 현지 공장의 재고 소진으로 물량이 일시적으로 수입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포워더 관계자는 “루블화와 유가가 올랐다는 것만으로 시황이 회복되고 있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며 “러시아와 CIS 지역의 경제상황이 우선은 나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방물류업계도 中 사드보복에 ‘주목’
장기간 지속되는 시황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포워더들은 해외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포워더들은 시황이 회복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미-러 외교관계’ ‘저유가’ ‘러시아 루블화’ 등이 안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포워더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지금 당장 물류 수송에 대한 브레이크는 없지만 혹시라도 보복 강도가 높아질 경우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악의 경우엔 TCR(중국횡단철도)에 대한 통관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일부 포워더들은 TCR를 통해 중앙아시아로 운송해 최종목적지인 유럽까지 화물을 보내고 있다. TCR를 통한 물류길이 막힌다면 중국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주력으로 하는 업체들의 고민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업계는 사드 보복으로 중국이 제동을 건다면 TSR(시베리아횡단철도)로 물량이 몰릴 수도 있어 TCR에 대한 운임 상승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운임하락으로 TCR를 통한 물량이 증가한 상황에서 화물을 섣불리 TSR에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황침체로 운임 ‘보합세’ 지속
북방물류시장의 시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탓에 운임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연초부터 소폭의 운임인상만 있었을 뿐, 전년과 비교해 운임 변동폭이 크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꽁꽁’ 얼어붙은 시황으로 러시아철도청은 TSR(시베리아횡단철도)의 운임인상분을 쉽사리 물류기업들에게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물량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물류기업들에게 운임인상분 전가는 열차 이용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온다.
포워더들은 운임이 높지 않은 이유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TSR를 이용해 CIS향 화물을 늘려왔다. 하지만 지난해 3분기 중국철도청이 운임을 내린 까닭에 TCR로 다시 돌아선 기업들도 존재한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철도청은 40피트 컨테이너(FEU)당 약 700~800달러의 운임을 인하했다. 이밖에 중국 내에서 보조금제도를 시행,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려는 것도 TCR 이용률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TSR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A기업은 운임 인하로 TCR로 갈아탔다. 포워더 관계자는 “지난해 TCR 운임이 내려가 TSR과의 운임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고 말했다.
업계는 조만간 중국철도청이 운임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TCR를 통한 화물량이 예전만큼 높지 않아 인상률은 약 1~2%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TSR 운임인상은 화물이 크게 급감한 상황에서 실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TSR를 통해 화물을 보내는 한 포워더는 일주일에 컨테이너 5대도 보내기 어렵다며 하소연했다. 포워더 관계자는 “TCR는 지난해에는 약 1~2%의 운임 인상만 있었고, 큰 변화는 없었다”고 전했다.
시장부진에도 컨 장비 가격올라 ‘이중고’
얼어붙은 북방시황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 매매단가는 모처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저점을 찍었던 컨테이너 박스 가격이 반등을 보이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고 컨테이너 박스는 20피트 컨테이너(TEU)당 1000~1100달러선에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 지역의 컨테이너 역시 TEU당 약 700달러로 상승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약 200~300달러 오른 셈이다.
지난 2015년 컨테이너 박스가격은 10년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 쳤다. 매출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포워더들에게 컨테이너 장비의 단가 상승은 엎친데 덮친 격이다.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은 평소 컨테이너 수요가 많은 편이다. 북방으로 들어가는 중고 컨테이너 거래량이 많다보니 컨테이너 매매업체뿐만 아니라 포워더들은 이곳의 시황을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단가가 오른 원인은 공급량이 크게 늘어난 것에서 비롯된다. 업계는 SM상선이 컨테이너 박스 확보에 주력한 점과 아직 한진해운 컨테이너가 시장에 풀리지 않아 중고 컨테이너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소유했던 컨테이너가 아직 시장에 다 풀리지 않았다”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아직도 묶인 컨테이너가 많은 걸로 안다. 컨테이너가 다시 풀리면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신조 발주량 둔화, 해상운임 하락 등 해운시황 침체로 컨테이너 박스를 쥐고 있는 선사들의 행보가 공급 부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즈벡 프로젝트, 하반기 시황반등 신호탄 될까
“바닥을 찍었으니 이젠 반등할 일만 남았다.” 불투명한 시장 상황이지만 올해 하반기 우즈베키스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시황회복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포착된다.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프로젝트가 주춤한 가운데 CIS에서 터져 나오는 프로젝트 운송계약은 ‘가뭄에 단비’와 같다.
현재 업계에서 거론되는 먹거리로는 우즈베키스탄 GTL(천연가스 액화정제시설)’과 러시아 나홋카 비료공장 건설사업 등이 꼽히고 있다. 또한 기존에 중단됐던 중동발 프로젝트도 조만간 가동될 것이라는 소식도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 우즈베키스탄 천연가스 개발사업에 대한 물류운송건을 업체들이 눈독을 들일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러시아가 주춤한 가운데, 우즈베키스탄 지역만이 기업들의 희망의 불씨를 겨우 살리고 있는 것이다.
물량이 쏟아져 나와도 기업들의 인상이 쉽사리 펴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포워더들은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CIS 지역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후발주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며 기업들의 이윤폭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게다가 2자물류기업들의 북방시장 잠식 현상 또한 가속화되고 있어 포워더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높지 않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기업들이 건당 운송건을 처리해도 카자흐는 약 100달러, 우즈벡은 약 150~200달러의 마진을 남기는 정도”라며 “프로젝트 운송건이 나와도 예전만큼의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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