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6조50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사태 이후 내놓은 거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책’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3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을 2배로 늘리고 선박은행(Tonnage Bank) 설립, 캠코 선박펀드 확대, 해운조선 상생 생태계 조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해운산업 정책 비전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통해 세계 해운강국으로 재도약’으로 정하고 세계 5대 초대형 글로벌 원양선사 육성, 중견선사 세계 15위권 도약 저변 마련 등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선박 신조 지원 2.6조로 확대
먼저 경쟁력 있는 선박 확보 지원 확대 정책이다. 금융위원회는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 규모를 기존 12억달러(1조3000억원)에서 24억달러(2조6000억원)로 두 배 증액할 계획이다.
지원 대상도 초대형 고효율 컨테이너선 신조를 중심으로 벌크선과 탱크선까지 확대한다. 터미널 등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자산 구매도 지원 대상에 포함했다.
해양수산부는 시중자금이 선박건조에 활용될 수 있는 투자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중에 선박투자회사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선박운용회사 겸업제한을 완화해 자문업을 허용하고 사모펀드 판매사 경유 의무를 면제해 비용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해양보증보험 활성화 정책도 제시됐다. 해수부와 금융위는 선박금융 후순위대출 보증 활성화를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적격담보 인정기관을 확대하고 신규 보증보험 상품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는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수협 부산은행 등 4개 국내은행에서만 담보 적격성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해운업계의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 신용등급이 없거나 낮은 중소선사를 대상으로 하는 신규보증보험 상품을 개발해 나갈 방침이다. 민간자금 유치 등 자본금 확충을 통해 보증 여력을 확보하고 현재 1.35배인 보증배수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해운업계의 숙원과제였던 선박은행 설립도 추진된다. 기획재정부와 해수부 금융위는 정책금융기관 등이 주도하는 가칭 ‘한국선박회사’를 설립해 선사 원가경쟁력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지원할 계획이다.
출자 비율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80%(정부 포함), 자산관리공사(캠코) 10%, 민간 10%로 잠정 결정됐다. 민간출자비율은 수요를 고려해 최대 20%까지 확대키로 했다.
‘한국선박회사’는 선사 소유선박을 시장가로 인수해 선사에게 재용선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선박은행은 선사 정상화에 따른 주가나 시황회복에 따른 선박가 상승 등 자본이득을 통해 용선료 외적인 수익 확보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선박은행 자본금은 초기 1조원 규모로 추진하되 수요를 살펴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민간투자 유도를 위해 민간투자자 우선배당, 세제지원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인수 대상은 출자자로 구성되는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되 경쟁력이 취약한 원양선사컨테이너선을 우선 인수 추진키로 했다. 인수 대상, 유상증자 등 주요사항에 대해 의사 결정하는 등 이사회 기능 역할을 맡게 되는 투자위원회는 출자 비중에 비례해 참여토록 할 방침이다.
이와는 별도로 금융위는 기존 선박은행 역할을 해왔던 캠코선박펀드의 중고선박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매입 후 재임대(세일즈앤드리스백) 규모를 확대해 선사 유동성을 지원하게 된다.
지난해부터 2019년까지 매년 2000억원씩 총 1조원을 지원키로 했던 것에서 내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5000억원씩 총 1조9000억원을 해운업계에 공급한다. 지원 선박도 벌크선 위주에서 컨테이너선과 탱크선까지 확대된다.
글로벌 해양펀드는 선사가 터미널 항만장비 등의 자산 매입 시 공동으로 지분투자해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개편된다.
수은 등 정책금융기관이 결성을 주도하고, 사모펀드·연기금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별 지원 규모를 사업수요와 연동해 내년 3천억원 등 2020년까지 총 1조원을 목표로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호불황을 반복하는 해운업의 특성을 고려해 건실한 기업에 대한 과도한 자금회수와 대출 기피를 최소화하는 선박금융 개선책도 추진된다.
불황기에 선박을 확보, 선가가 비싼 호황기를 대비하는 선박투자가 필요함에도 불황 시 금융기관의 대출 기피, 조건 강화로 선사 금융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개별기업의 위기 발생 시 산업 전체에 대한 유동성 축소로 인한 흑자 도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기관 지도·감독을 실시할 방침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10월31일 오후 광화문 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해운조선 협력네트워크 신설
해운조선 상생프로그램도 가동한다. 해수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해운-조선 협력네트워크’를 신설해 해운·조선간 선박 수요-공급 정보를 통합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상생 체계를 공고화한다는 방침이다.
협력네트워크엔 선주협회와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조선공업협동조합 해양금융종합센터를 비롯해 화주 측 발전사 가스공사 석유협회 철강협회 등이 참여하게 된다.
아울러 기재부와 해수부는 노후선 조기 폐선을 유도해 친환경·고효율 선박을 신규로 건조케 함으로써 해운기업엔 선대 개편, 조선기업엔 일감확보를 각각 지원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조사에 따르면 국내 컨테이너선 132척 중 조기폐선이 필요한 노후선 또는 비효율 선박은 40척 정도다. 벌크선은 758척 중 208척이 해체 등의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친환경선박 연구개발(R&D)을 확대해 LNG 추진선, 극지용 선박 설계 및 제작 기술, 배출가스 저감장치 개발 등 에너지 효율화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1조원 규모의 수은 에코쉽펀드를 활용해 신조를 확대할 예정이다.
해운기업의 화물 유치를 확대하는 정책도 추진된다. 산업부와 해수부는 무역협회와 선주협회 주관으로 ‘선·화주 경쟁력강화협의체’를 구성해 화주와 선사간 협력을 유도하고 대량 벌크화물의 경우 기존 장기운송계약은 재연장하고, 신규계약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석탄 등 국가전략물자 운송에 대한 운송 입찰참여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종합적격심사제 도입도 추진된다. 종합적격심사제는 물자의 안정적 수송과 적정운임 보장을 위해 현행 최저가낙찰제를 보완한 방식이다.
선사와 대량화물 화주가 공동으로 선박을 발주하고 화물을 수송하는 수송합작회사(JVC) 모델도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
해운시장 진입요건도 강화된다. 해수부는 해운법을 개정해 외항운송사업 등록기준을 높이고 용선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용선 신고대상을 현행 2년 이상 용선에서 1년 이상 용선으로 확대하고 용선료까지 신고하도록 법제화 할 방침이다.
내년 상반기 목표로 선사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 재보험 상품 취급을 허용하는 제도 개선에도 나서기로 했다. KP&I가 해외 P&I 조합과 공동으로 보험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 KP&I 경쟁력 확보와 선사 경영관리를 안정적으로 지원토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수부는 해운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련부처가 참여하는 가칭 해운산업발전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부처가 해운업 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와 업계 애로사항을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대응책을 논의하는 협력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선원퇴직연금제도 도입 검토, 원격의료 확대지원, 선박금융 전문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 해운전문인력 수급 정책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이날 경제 관련 장관 회의에서 “한진해운의 회생절차 신청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산업도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 세계 5대 해운강국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전기를 마련하겠다”며 “선사들이 경쟁력 있는 선박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박신조 프로그램 등 총 6.5조원의 금융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발표에 대해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해운산업 지원정책을 발표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세계 7위 선사인 한진해운 사태로 대외적인 한국 해운의 신뢰도가 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때 늦은 지원책으로 보인다”며 “정부 정책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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