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1 17:32

‘속타는 한진해운’ 화주 클레임 1조 육박할듯

컨선 97척 중 30척만 하역…반선못해 하루 25억씩 용선료 불어나
한진해운 사선대 가치 2조원대 추정

70척에 가까운 한진해운 선박이 여전히 화물을 하역하지 못한 채 항구를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점항구로 이동시켜 화물을 하역한다는 정부의 전략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하역 차질로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한진해운은 하역이 늦어져 용선 선박들을 반납하지 못함으로써 하루 25억원씩 늘어나는 용선료를 지켜보고 있다. 운송 지연으로 화주들에게 배상해야 하는 금액은 1조원대에 달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21일 정부와 한진해운에 따르면 총 97척의 한진해운 컨테이너선대 중 국내외 항만에서 하역을 하지 못한 채 대기 중이거나 억류된 선박은 총 67척으로 확인됐다.

전체 선박의 3분의 1도 안 되는 30척만이 하역을 마쳤다. 국내와 해외 각각 15척씩이다. 지난 12일 미국 롱비치를 시작으로 스페인 발렌시아 등지에서 하역을 진행 중이지만 추석 전과 비교해 하역을 마친 선박은 6척이 더 늘어났을 뿐이다.
 
<한진수호>등 억류선박 총 11척

가압류 또는 출항이 금지된 선박은 총 11척으로 확인된다. 국가별로 중국이 가장 많은 5척의 선박이 잡혀 있다. 이밖에 캐나다에서 2척, 싱가포르 미국 호주 파나마에서 각각 1척씩 억류된 상태다.
 
고(故) 조수호 회장의 이름을 딴 1만3100TEU급 <한진수호>호도 억류 선박 명단에 포함돼 있다. 지난 2012년 건조된 이 선박은 한진해운을 대표하는 초대형 선박으로, 법정관리 전까지 CKYHE얼라이언스의 아시아-유럽항로인 NE6에 취항 중이었다.
 
한진해운은 현재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압류금지명령(Stay Order)을 승인 받았으며 싱가포르에선 임시 승인 결정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한진해운의 첫 가압류 선박인 5300TEU급 <한진로마>호를 스테이오더 대상에서 제외했다.
 
미국 롱비치에서 연료공급업자들의 요청으로 가압류됐던 4250TEU급 <한진몬테비데오>는 압류가 풀렸지만 여전히 하역을 못한 채 내항에 정박해 있다. 한진해운 측은 <한진몬테비데오>의 경우 연료비를 모두 지급했으며 짐을 내린 뒤 광양항으로 회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항만에서 하역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보다 하역료 연체다. 정부는 62척의 선박을 미국 스페인 등 해외 항만에서 하역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해외 하역업자나 항만노조는 한진해운이 밀린 하역료를 먼저 정산하면 하역에 들어가겠다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조양호 회장이 출연한 400억원으로는 하역비를 지급하는 데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진해운 측은 밝히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지원을 약속했으나 대한항공 이사회가 집행을 거부한 600억원이 하루 속히 지급되거나 정부가 별도 자금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박들도 하역을 못하긴 마찬가지다. 부산항에 닻을 내린 28척의 선박 중 13척은 공해상에서 하역 일정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화물을 내려야 하는 까닭에 선박 1척을 하역하는 데 보통 2~3일 정도 걸려 작업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

한진해운신항만(HJNC)은 빈 컨테이너를 웅동배후단지로 옮겨 자리를 확보한 뒤 배에 실린 화물을 내리는 식으로 어렵게 하역을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부산항 한진해운 부두 장치율이 80%에 달해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며 “스케줄을 짜서 하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익채권 1조 넘으면 회생 불가능

하역이 늦어지면서 한진해운의 빚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개시 이후 용선을 대부분 반선하겠다고 선주사 측에 통보했다. 하지만 하역이 미뤄지면서 반선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한진해운이 용선한 컨테이너선 60척 중 반선이 마무리된 건 5척에 불과하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긴급간담회에서 한진해운은 이 같은 속사정을 털어놨다. 선사 측은 하역 지체로 발생하는 용선료와 연료비 등은 하루 약 210만달러(약 25억원)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회생절차 개시 이후 발생한 미지급 용선료는 400억원을 넘어섰으며 하역이 원활하게 진행됐다면 절감할 수 있었던 비용이라고 선사 측은 전했다.
 
화주들의 손해배상청구(클레임)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한진해운 선박에 실려 있는 화물 가액은 140억달러(약 15조7000억원)에 이른다. 한진해운 측은 당초 운송 일정에서 3~4주가 지나면 화주들의 클레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화주 손해배상채권은 적게 잡아도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회생절차 개시 이후 발생하는 각종 채권은 모두 우선 변제 대상인 공익채권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공익채권자의 선박 압류는 스테이오더로도 막을 수 없다. 하역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또 다른 재앙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법원 측은 하역작업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한진해운과 정부 채권단이 신속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법원 관계자는 “화주나 용선주의 선박압류가 현실화할 경우 막대한 규모의 공익채권을 변제해야 하역 재개가 가능하므로 물류대란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며 “회생절차개시 후 발생한 미지급 용선료와 화주의 손해배상채권 등 공익채권의 합계가 조 단위의 금액에 이를 경우 회생계획 수립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전체 사선대의 가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추후 선박 매각을 통해 채무 변제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국 해운조사기관인 베셀즈밸류닷컴(VesselsValue.com)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건조 중인 선박을 포함해 총 63척의 사선을 보유하고 있다. 컨테이너선 39척, 벌크선 19척, 유조선 5척이다.

이들 선박의 총 가치는 17억6200만달러(약 1조9700억원)로 추산된다. 현대상선의 9억6550만달러(1조800억원)에 비해 8억달러 가량 많다. 컨테이너선대가 13억9440만달러(약 1조5590억원), 벌크선대가 3억1340만달러(약 3500억원), 유조선대가 5420만달러(약 600억원)로 각각 평가됐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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