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8월31일 세계 7위의 정기선사이면서 국내 최대의 해운회사인 한진해운이 장기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물류대란이 일어나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해운무역업 종사자들도 경제적인 손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에 빠져 있다.
해방 이후 해운의 선각자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해운산업을 일으켜왔다. 정부는 1949년 대한해운공사를 설립하여 해운산업의 초석을 닦게 하였다. 1965년 미주정기항로가 개설되었고 1968년에는 뉴욕까지 그 항로가 연장되었다.
1975년 풀컨테이너선박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고, 선배 해운인들은 멀리 유럽에까지 항로를 개설하였고 드디어 세계 일주 정기항로를 만들어 우리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우리나라 선박이 시간을 정하여 우리 화물을 날라주는 세계 일주망을 갖춘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진해운은 연간 7조원 이상의 매출(2011~2013년은 10조원대, 대한항공 연간 매출 11조원)을 올리는 정기선사다. 비록 현재 부채가 많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2014년 2015년과 같은 경우 영업에서는 오히려 흑자가 났다. 한진해운의 영업수익 구조는 국내화물 운송에서 2조원, 외국화물 운송에서 5조원이 발생한다.
한진해운의 7조원 매출액은 항만하역료, 도선료, 예선료, 선박연료유 대금, 내륙운송비용, 선원의 임금, 용선료, 조선소의 수리비, 선박안전검사비, 컨테이너박스 임차료, 보험료, 해상변호사 법률비용 등으로 지급된다. 일부는 선박금융을 제공한 은행 등 금융권에도 분배된다. 또한 화주가 운송주선인(포워딩회사)을 사용하여 한진해운과 운송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진해운은 포워딩회사 및 집화 관련자들의 수입 원천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이와 같이 한진해운의 매출은 수많은 해운무역 관련자들에게 배분된다. 한진해운이 없어진다면 한진해운에서 수입을 의존하던 많은 경제주체들의 생계가 위험에 처한다(이외에도 한진해운의 컨테이너 운송계약은 한국법을 적용하고 우리 법원에서 사건을 처리하도록 약정되어 있어서 많은 해상사건을 창출하여 우리 해상법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 용선계약은 모두 영국법을 적용하고 런던해사중재에서 처리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매출을 전혀 창조하지 못하는 기업이 부채까지 많다면 도산시켜야 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매출이 꾸준하여 다른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경우는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고 하여 그 기업을 반드시 퇴출시켜야하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무역입국을 오랫동안 국시로 채택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무역을 위하여는 해운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상품을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원료를 수입하거나 완제품을 수출하는 경우에 필요한 선박이 없다면 무역은 차질을 입게 된다.
우리나라 해운회사가 없어도 외국의 선박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제3국간의 운송에서 벌어오는 해운수입(한진해운의 경우 연간 5조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므로 큰 국부의 손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 해운회사가 우리 상품을 실어 나르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외화 가득율이 높은 외국상품 운송으로 인한 운임수입 획득의 비중이 더 큰 것임을 간과하면 아니 된다. 한국해운이 2000년대 해운 활황기에 반도체, 자동차, 선박수출 등과 같이 5대 외화가득 산업으로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진해운의 최대주주가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이라고 한다. 법정관리행의 운명은 이들 대주주에 의하여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한진해운은 전체 국민과도 이해관계를 가진다.
특히 한진해운은 1949년 설립된 대한해운공사의 후신으로서 대한민국의 해운을 대표하여 왔다. 수많은 선원들이 가족과 헤어져 고립된 공간에서 바다에서 목숨을 바쳐가면서 한진해운을 지켜왔다. 도선사, 하역회사, 육상의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해운을 담당한 우리 정부도 교통부 해운국, 해운항만청, 해양수산부로 이름을 바꾸어가면서도 정기선사를 키우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와 같이 대한해운공사, 대한선주의 영업망과 노하우를 이어받아온 한진해운은 지난 70년간 관련자들의 피와 땀이 어린 결정체다. 그렇기 때문에 한진해운을 포기하여 청산의 길로 간다는 결정을 누군가가 하였다면, 그러한 결정 이전에 일반 국민 특히 해운 및 무역 종사자들에게 그 의사를 물어보았어야 한다. 선후배 해운무역인들이 피땀 흘려 일구어온 대한민국의 자존심인 한진해운은 사주가 바뀌어도 존속되어 우리 무역과 해운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해운 구조조정이란 매출 규모 7조원인 한진해운의 국제적인 영업망과 노하우를 가장 훼손이 적은 상태로 이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한진해운발(發) 물류대란이란 운송인이 약속한 화물을 약속한 대로 운송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진해운 신뢰의 추락이며 이것이 장기화되면 영업망의 와해를 가져온다.
영업망이 깨어진 상태에서는 기업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크게 나올 수는 없다. 그렇다면 회생계획안이 나올 수도 없고 한진해운은 청산으로 가게 될 것이다. 다른 해운회사와의 합병이나,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우량자산의 흡수, 인가 전(前) M&A(인수합병) 등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는 한진해운의 건실한 영업망과 인력 그리고 노하우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해운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함에는 공감하지만 한진해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7조의 매출이 모두 없어지는 구조조정이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가 과연 이런 결과를 바라겠는가?
이제부터라도 하역작업이 조속히 이루어져 화물이 수입자의 수중에 들어가도록 운송인인 한진해운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금융권을 포함한 채권단도 조속한 하역작업은 자신들에게도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므로 법원이 요청한 DIP 금융(법정관리 중인 기업이 법원 허가를 얻어 신규 자금을 조달하는 제도) 제공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현재의 물류대란은 단순히 한진해운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나라 전체 해운과 무역의 문제로까지 파급되고 있으므로 정부도 적극적으로 하역작업이 가능하도록 나서야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업망과 조직 및 노하우가 온전하게 남게 되면 한진해운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정기선 운항은 국제적인 경쟁 하에 놓여있고 선사들은 경쟁력을 갖추어 승자가 되기 위하여 각종 방법을 강구하여 왔다. 전 세계적인 물동량이 오히려 줄어든 상황에서 선박의 수가 과잉되어 있기 때문에 해운은 불황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선박의 척수가 줄어야 하는데, 어느 나라 정기선사가 도산이 되는지 그런 싸움이 국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가 전 M&A 등을 통하여 한진해운이 온전히 새 주인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공중분해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국제적 정기선 전쟁에서 패하게 되고 한진해운이 벌어오던 연간 10조 내지 7조원의 운임수입은 모두 외국정기선사에게 내어주게 되고 많은 일자리도 없어지게 된다.
한진해운은 이미 용도 폐기된 그런 보잘 것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가? 그렇게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후 나타난 긍정적 시그널에 유의해 보자.
미국 서부 항로의 운임이 컨테이너 1개당 500달러가 인상되었다. 한 척의 선박에 4000개의 컨테이너가 실렸다면 한 척당 2백만달러(약 20억원)의 수입이 늘어난다. 미주항로 운항 선박이 20척 있다면(한 척당 1년에 12회 운항), 미주항로에서 총수입의 증가는 4.8억달러(약 5300억원)가 된다. 5300억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한 척에 실리는 컨테이너박스의 숫자가 수천개에 이르므로 운송에서의 수입과 적자 폭은 그 등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정기선사는 잘 관리하여 호경기를 타게 되면 큰 흑자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바로 선진국이 컨테이너 정기선사를 지원하면서 유지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30년간 한진해운의 총 매출이 얼마였는가? 그리고 2002년에서 2007년까지의 호황기에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인가를 확인하자. 그 매출은 수많은 해운무역 종사자들에게 흘러들어가서 국민경제에 큰 이바지를 하였다. 해운은 원래 10년 불황에 1년 호황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불황의 마지막 터널을 지나고 찾아올 호황을 기다리는 중이다. 2~3년 뒤에 호경기가 찾아와서 대량의 수익이 나는 때를 그려보자.
우리 해운 물류인들은 온몸을 바쳐 이 땅에 해운산업을 일으켜 세운 선배 해운행정가, 해운경영인, 선원, 하역회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들은 선배님들의 개척자 정신을 이어받아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한진해운 사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격려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해운산업은 다시 한번 효자산업임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금융권이나 정책 입안 당국자들도 한국해운 70년의 역사성과 치열한 국제경쟁 하의 정기선 운항을 이해하여 한진해운의 회생에 힘을 보태줄 것을 부탁드린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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