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2 11:44

한진해운 사태 헛발질 정책에 부산항 분노

정부에 "세계 해운시장 몰라도 너무 몰라"
현대상선 2M내에서 점유율 확대 어려워

지난달 30일 주채권단의 신규 자금 지원 중지 결정 뒤 이어진 한진해운의 급작스런 법정관리 신청으로 지금 국내외 해운시장은 한마디로 혼돈 그 자체다.

국내 최대의 항만이자 동북아 환적허브 역할을 수행 중인 부산에선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이번 결과에 다들 큰 충격에 빠져 있다.

부산항 관계자와 시민단체들은  이번 주채권단의 결정과 한진해운 측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지난 31일 긴급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 결의대회까지 개최할 만큼 현 사태에 대해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다.

한진해운 측의 법정관리 신청이 불과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벌써부터 여러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어 가뜩이나 해운시장 침체기에 상황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다들 불안해하는 눈치다.
 
특히 항만업계에선 현 사태까지 끌고 온 정부당국의 졸속 대책과 한국산업은행 측의 해운항만물류분야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각종 비리연루로 시끄러운 대우조선해양엔 4조40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해운업계엔 단돈 한푼 지원하지 않고 내친 정부 대처에 심한 박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지난 31일 시민 결의대회에서 만난 항만산업 종사자들은 정부 측 및 산업은행 측의 처사를 싸잡아 비난했다. 국제해운업의 특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왜곡된 시각으로 이번 결정을 내렸다는 지탄이었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의 길을 선택했지만 실상 회사 운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 및 산업은행 측에서는 “한진해운의 공백을 현대상선이 보완할 것”,“한진해운 네트워크, 영업 등 우량 자산을 인수해 최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해운항만업계에선 해운시장을 전혀 모르는 발상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결의대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조업과 달리 해운업은 정시 입출항을 생명으로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서비스산업인데, 세계 물류시장에서 한번 추락한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정부 측의 현실성 없는 뒷북 정책에 코웃음을 쳤다.

정부 측의 또 다른 헛발질은 현대상선 선복량 증대를 통해 한진해운 몫을 수행하겠다는 대책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비전문가들이 당장의 위기만 모면하려고 세운 근시안적인 대책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올해 7월 글로벌 얼라이언스 재편으로 세계 1,2위 선사인 머스크 MSC가 속한 2M과 공동운항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내년 4월부터 공동운항 서비스를 개시한다. 세계 양대 선사는 한국시장에 강한 현대상선을 전략적 파트너로 받아준 것으로 풀이된다.

정작 문제는 2M의 터줏대감인 머스크와 MSC의 동의 없이는 정부가 바라는 것처럼 현대상선이 선복을 늘리고 노선을 확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2M은 머스크 319만TEU, MSC 278만TEU로 세계 컨테이너선대의 28.5%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반면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44만TEU로 전체의 2.1%에 불과한 실정이다.

두 선사가 현대상선의 14배가 넘는 선복을 확보하고 있는 시점에서 향후에도 2M 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리란 관측이 우세하다. 내년 4월부터 현대상선이 2M에 본격 합류한다고 해도 기존 머스크와 MSC가 자신들의 선대 몫을 줄이지 않는 한 현대상선이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은 제한적이란 분석이다.

한 외국선사 지사장은 “일정한 선복량을 서로 정해두고 움직이는 세계 해운 얼라이언스에서 현대상선이 2M 내에서 선복량을 늘릴 경우 자연스레 머스크와 MSC는 선복량을 줄여야한다”며 “이는 곧 매출 및 이익감소로 이어지는 건데 두 선사가 응해 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새누리당 의원들도 정부의 안일한 한진해운 정책에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진해운 관련 새누리당 부산시당·해운업계 긴급간담회'에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한진해운 지원 중단 결정에 대해 “바보같은 결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3000억원을 아껴서 10조원이 넘는 국력 손실을 발생시켰다”며 “배가 항구로 들어오지 않아 하역을 못 하는 등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해수부 장관 출신의 유기준 의원은 “경제부총리와 금융당국, 주채권자인 산업은행 모두 너무 안이한 결정을 내렸다”며 “(한진해운과) 비슷한 선사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들겠느냐? 한진해운 사태로 부산에만 일자리 1만1000개가 사라지고, 연관사업이 사라지며 국가신인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정훈 의원은 “3000억원만 지원하면 되는 회사를 잃어서 매년 17조원씩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걸 청산에 들어가게 놔둔다는 것은 직무유기”며 "GM을 미국정부가 지원한 것처럼 법원에서 채무를 조정하고 산은이나 정부에서 인수해서 구조조정을 거쳐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소식이 타전된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서 모두들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와 관련기관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분주함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는 정책 발표와 이 말에 쉽게 반응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누군가는 이야기 한다. “조선산업이었으면 이렇게 대처했겠나. 차라리 조선소야 다시 만들면 되지만 글로벌 선사는 최소한 20~40년의 노력이 없으면 재건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아야한다”고.

국적선사 하나 없어지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모르겠다는 정부 측의 반응에 한 물류관계자는 “지도를 놓고 보면 실제로 우리나라는 섬나라로서 모든 화물의 99%를 배로 수송하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아픈 현실”이라며 어깨를 떨궜다.

< 부산=김진우 기자 jw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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