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1 09:33

시선/ 국내 1위 선사도 못 지킨 대한민국의 국격

국내 1위 선사 한진해운이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달 30일 채권단은 한진해운에 유동성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추가 지원을 해도 향후 해운업 불황지속으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손을 떼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금줄이 끊긴 한진해운은 자율협약 만료일(9월4일)을 목전에 둔 31일 법정관리행을 결정했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에 해운업계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구조조정이 결국 국내 1위 선사를 벼랑끝으로 밀어버렸다는 울분이다.

한진해운은 2014년부터 주요 자산 매각 등을 통한 경영정상화를 추진해 3.7조원의 자금을 모았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보유자산인 벌크전용선사업부(에이치라인해운)와 미국, 스페인의 해외 터미널을 매각했고, 런던과 도쿄사옥 등 부동산을 내다 팔았다. 이어 중국 계열사 지분과 근해항로 영업권까지 매각해 자금을 끌어모았다. 돈 되는 사업부까지 팔 수 있는 것은 죄다 매각하라는 정부의 구조조정 가이드를 믿고 따랐다.

하지만 마지막에 정부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알아서 해결하라’라는 것이었다. 자체적으로 유동성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가서는 어쩔 수 없다며 손을 놔 버린 금융당국의 결정이 제대로 된 것인가?

한진해운이 끝내 마련하지 못한 3천억원의 유동성을 두고도 말이 많다. 조선업에 4조2천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고도 해운업에 지원할 3천억원이 없어 해운강국을 이끌어 왔던 선사를 등져 버렸다.

금융당국은 조선업을 필두로 어마어마한 유동성이 수혈된 데다 해운업에까지 혈세가 투입되는 상황을 끊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쓰러질 경우 4만여명의 실직자가 발생해 관련 지역경제에 미치는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여파가 적을 것으로 보이는 한진해운을 ‘옥석을 가려 살린다’는 구조조정의 본보기로 사용한 것이다.

현대상선보다 더 여유로웠던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두고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9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설이 불거져 나올 당시 금융위원회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합병이 공식적으로 언급되면서 올 것이 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31일 열린 한진해운 관련 금융시장 점검회의에서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선박, 영업, 네트워크, 인력 등 우량자산을 인수해 최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한진해운의 보유선박 중 영업이익 창출에 기여하는 선박과 해외영업 네트워크 인수 등 강점만 뽑아 현대상선에게 유럽과 미주 등 원양항로 운영권을 넘겨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뜻이다.

정부에서는 극심한 손실을 떠안으며 골칫거리로 전락한 해운산업을 지원하기보다는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자율협약 신청 전부터 꾸준히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론이 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지원 한 번 없이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내버린 정부는 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한다고 밝혔지만 그 피해 여파는 해운·항만·물류업계에 전가돼 일파만파 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강국을 이끌던 쌍두마차가 사라지고 절름발이 신세가 된 대한민국의 해운경쟁력을 되찾기에는 다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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