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운시장은 저운임 악재라는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 선사들의 시름을 깊게 만들었다. 해상운임이 원근해를 가리지 않고 바닥을 헤맨 결과 아시아-유럽항로에선 20피트 컨테이너(TEU)당 200달러대까지 하락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 사상 최저 운임으로 몸살을 앓았던 선사들은 새해벽두부터 유럽·미주 등 원양항로를 중심으로 운임인상(GRI)을 단행했고 지난 연말 200달러대였던 해상운임은 올 들어 1000달러 초반대로 훌쩍 뛰었다.
선사들은 채산성 확보를 위해 GRI를 시행했지만,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들은 이 상황이 썩 달갑지 않다. 이들은 갑자기 오른 운임을 화주에게 어떻게 전가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화물혼재(콘솔)업계는 해상운임이 적정수준으로 올라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인상된 운임을 화주에게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콘솔사 관계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낮은 해상운임이 어느 정도 올랐으면 하는 게 콘솔사들의 바람이지만, 월초에 올랐다가 월말에 떨어지는 운임을 화주에게 적용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콘솔사들은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화주에게 인상분 전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1월에 이어 3월까지 선사들의 GRI가 진행될 수 있기에 향후 추이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해상운임의 변동 폭이 크지 않았던 탓에 콘솔사들은 호조를 맛봤다. 대형 콘솔사들의 채산성은 대부분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000달러대 운임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아 콘솔사들의 마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콘솔사 관계자는 “선사들과 포워더들이 먹고 살려면 유럽항로의 경우 1000달러대 이상으로 운임이 오르는 게 좋지만 물량이 크게 늘지 않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LCL 콘솔시장은 마이너스 운임으로 얼룩져 있다. 너나할 것 없이 단가를 후려치면서 총성 없는 전쟁이 잇따르고 있는 것. 특히 이메일이나 팩스로 마이너스 운임을 뿌리는 몇몇 업체들의 횡포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저운임 기조는 몇 년 새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한국발 홍콩행 수출운임은 CBM(=㎥)당 -80달러까지 곤두박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밑바닥에 머문 해상운임이 고개를 들 수 없었기 때문에 지난해에는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라면서도 “연초에 개시된 GRI가 콘솔사에게 반가운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방물류시장, 험난한 가시밭길 예고
포워딩업체들이 올해 가장 어려울 것으로 지목한 지역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연초부터 국제 유가 급락세로 루블화 환율과 주가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루블화 가치는 2014년 12월 이후 최저치인 달러당 75.33루블로 곤두박질쳤다. 러시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북방물류시장의 체감경기 역시 꽁꽁 얼어붙고 있으며, 이 지역을 타깃으로 하는 포워딩 업체들 역시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형국이다.
올해도 북방물류시장은 긴 터널을 지날 될 것으로 보인다. 빗장이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란이 석유 수출을 본격화한다면 러시아의 현지 구매력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포워딩업계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북방물류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몽골의 상황도 좋지 않다. 과거 1달러대 1200투그릭을 밑돌았던 몽골 환율은 2013년에 뛰기 시작해 2014년 2100투그릭을 찍었다. 현재는 2000투그릭에 머물러 있다. 몇 년 전까지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왔던 대(對) 몽골 수출은 투그릭 가치 하락으로 지난해 반토막 난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의 주요 교역품목인 구리 수출량이 급감하면서 현지에서 진행되는 건설 프로젝트도 일손을 놓은 지 오래다. 몽골지역을 서비스하고 있는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좋아져 물량이 늘어나는 것 외에는 달리 해답이 없다”며 토로했다.
해봤자 ‘덕’ 보기 어려운 대형화주 입찰
“앞으로도 해상운임이 오를 것으로 예상돼 대형 화주와의 입찰이 쉽지 않네요.” BCO(대형화주기업) 입찰을 앞둔 어느 포워더 관계자의 말이다. 1월 초 선사들의 GRI를 시작으로 중국 춘절 전까지 추가 운임인상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후, 비수기가 끝나는 시점부터 선사들의 GRI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포워딩업계는 술렁이고 있다.
들쑥날쑥한 해상운임은 입찰에 참여하고자 하는 포워딩업계의 근심을 더욱 깊게 만든다. 또 입찰을 따내도 운임이 너무 떨어지면 그만큼 포워더의 마진율도 내려갈 수밖에 없다. 해상운임과 입찰운임 사이에서 운임 수수료를 떼는 포워더에게는 해상운임이 높게 형성돼야 유리하다.
이제는 공개입찰이 만연하면서 물류비용을 절감키 위한 화주들의 노력은 포워더들을 더욱 괴롭게 만든다. 가뜩이나 업체난립에 따른 고질적인 운임하락에 포워딩업체들은 공개입찰 확산에 뼈아플 수밖에 없다. 업계 안정화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중소 포워더들은 단순히 ‘경험쌓기’나 ‘관계유지’를 위해 직원들을 입찰에 참여시키고 있다. 계약을 따내도 저가운임이 난무하다보니 대형화주 입찰에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을 따내도 수익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기업 화주를 관리하기 위한 인력소비만 더 클 뿐”이라고 말했다.
포워딩업체들은 2016년이 결코 녹록치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물량유치가 수월했던 해는 없었지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콘솔시장은 마이너스 운임으로, 프레이트 포워더들은 글로벌 포워더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수출입 실적 감소는 업체들의 근심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1~12월) 우리나라의 수출입 실적은 전년에 비해 쪼그라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출은 7.9% 감소한 5272억달러를, 수입은 16.9% 급감한 4368억달러를 기록한 바 있다.
기업들 불황극복에 ‘안간힘’
국제물류주선업체들은 각각의 살길을 모색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들의 대응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새해를 맞아 새판 짜기에 더욱 분주한 모습이다.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대응전략은 ‘영업’이었다. 서울 굴지의 콘솔사인 A사는 현장에 영업을 나가는 인원을 더욱 늘려 경쟁사를 긴장케 했다. 알고 보니 A사는 인력을 늘린 게 아니라 내근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업무부 일부 직원에게 영업까지 병행토록 한 것이었다. 고객 니즈를 선제적으로 발굴해 거래처 관리에 힘쓰겠다는 의도지만 상황이 그만큼 녹록치 못하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다.
또 다른 B사 역시 인력 충원을 통해 영업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B사는 신규 거래처 유치를 위한 ‘공격’도 중요하지만, 기존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한 ‘방어’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형화주 한 곳 보다는 중소형 화주 여러 곳을 거래처를 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영업만 잘하고 관리를 안 하면 타 업체에 거래처를 뺏기기 십상이다. (거래처를) 뺏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도 중요해 두 가지가 잘돼야 한다”고 밝혔다.
M&A(인수합병)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해운물류시장에서는 M&A가 화두였다. CMA CGM의 넵튠오리엔트라인(NOL) 인수, 코스코홀딩스와 차이나쉬핑컨테이너라인(CSCL)의 합병, LG상사의 범한판토스 인수 등이 성사됐다.
포워딩업계에서도 M&A는 이제 먼 얘기가 아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약 100억원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는 업체라면 M&A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포워딩 업체가 수천 개에 달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 상황에서 M&A를 통해 운임 경쟁력과 영업력을 강화해 회사의 외형을 키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기자가 몇몇 포워딩 업체를 방문한 결과, M&A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곳이 꽤 있었다. 인수합병이 성공적으로 성사된다면 서로가 ‘윈윈’해 글로벌 기업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야 한다고 업체들은 입을 모았다. 이밖에 업체들은 삼국간 네트워크 구축, 리퍼(냉동) 컨테이너 유치, ISO탱커운송 등의 유치를 통해 수익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지속되고 있는 운임하락으로 업체들의 구조조정이 활발히 일어날 것으로 진단했다. 1~2인 체제로 사무실을 꾸려 개인사업 위주로 영업을 하는 업체와 점차 대형화되어가는 업체로 나눠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포워딩 시장은 상향 평준화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들의 인수합병이 진행되며 포워딩 시장은 점차 대형화되는 회사와 소규모 기업으로 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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