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2억달러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해 국내 해운기업들의 선박 신조를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떨어뜨리는 선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방침이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30일 열린 2015년 제24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산업별 구조조정 계획을 확정했다.
이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지막으로 주재하며 “기업구조조정은 원칙에 입각해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해나가겠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부담이 초래되는 경우, 이해당사자의 엄정한 ‘고통분담’ 원칙을 확실히 지켜나가겠다”고 기본방침을 밝혔다.
그는 “조선업은 대주주 책임하의 구조조정,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 경영정상화, 다운사이징을 통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해운업은 개별회사의 유동성 문제는 자체 노력으로 해소하도록 하되, 12억달러 규모의 선박펀드를 조성해 부채비율 400%를 달성하는 해운사에 한해 선박발주를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석유화학은 합금철과 TPA(테레프탈산, 폴리에스테르 주원료) 분야에서 자율적 설비감축을 유도해 수익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해운업의 경우 민관 합동의 ‘선박펀드’를 조성해 나용선(BBC) 방식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BBC는 BBC-HP(소유권이전부나용선)와 달리 용선기간이 끝나도 소유권이 선박펀드에 있어 용선자는 매각과 선가하락 위험을 지지 않는 데다 부채비율에도 영향을 받지 않아 해운기업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내년 1월 중에 해양수산부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은행과 전담팀(TFT)을 만들어 재원 조성 등의 후속조치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만 기업 스스로의 자구노력 등을 통해 재무상태가 부채비율 400% 이하를 달성할 때에만 지원한다는 단서를 달아 해운업계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덴마크 머스크라인, 프랑스 CMA CGM, 일본 3대선사 등 주요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의 부채비율을 비교한 결과 대부분 400% 이내라고 말했다. 국적선사들의 부채비율을 외국선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지원 계획의 타깃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양대 국적선사의 부채비율이 700%대여서 기준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9월 말 현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별도 기준 747% 786%, 연결 기준 687% 980%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번 지원 계획이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도 아니고 선박확보금융에 그치는 것이어서 한시가 급한 선사들로선 실망스러운 정책”이라며 “부채비율을 낮춰야 지원해준다는 단서 조항을 붙인 건 개선이 필요하다. 재정상태가 건전하고 좋으면 도와달라고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부채비율 400%의 기준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며 “400% 이하이면 재정이 건전하다는 논리라면 해운업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이날 시장안정화 정책도 제시했다. 내년부터 운임공표제를 강화해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대형 선사들의 운임 덤핑 행위를 집중 단속한다는 방침이다.
운임공표 대상을 현행 ‘10개 항로 35개 항만’에서 ‘전 항로 전 항만’으로 확대하고 운임협상 범위도 현행 공표운임의 20%에서 10%로 강화한다. 유가할증료(BAF) 통화할증료(CAF) 터미널조작료(THC) 3가지로 돼 있는 부대운임 공표 범위도 확대할 예정이다.
수시 점검반을 운영해 제도를 지키지 않는 선사에겐 과징금 부과나 등록취소, 기항 금지 등의 행정처분과 항만시설사용료 감면 제외 등의 제재책도 마련됐다.
정부는 국적 선사가 포함된 얼라이언스의 환적 물량 유치 활성화를 위해 터미널 간 환적화물 이동(ITT)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부산 신항에 연근해 선사물량 전용 부두를 마련한다.
아울러 시황 변동 대응능력 강화를 위해 한국 해운거래소 설립해 운임변동 등에 따른 해운사들의 리스크 헤징을 위한 운임선도거래 시장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기업 부실이 산업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사간 재용선 현황, 해운 부대업 거래 연체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고 공유해 해운 기업 부실 확산을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채권단은 대형 해운사의 자산매각 등 자구 노력과 함께 시장안정 유동화증권(P-CBO)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다만 신규 채권 인수는 2015년을 끝으로 종료하는 한편 과거 인수했던 물량의 재차환은 2017년까지 한 차례 연장할 방침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 2013년 7월 P-CBO 도입 이후 각각 8387억원 1조432억원을 지원 받았다. 이 중 2013년 차환 발행한 물량 3000억원과 1360억원이 2016년에 만기 도래한다.
두 선사는 자구계획도 성실히 이행 중이다. 2015년 12월 현재 한진해운이 3조원 현대상선이 2조5000억원의 유동성을 각각 자구계획으로 확보했다. 목표치인 2조5000억원 2조9000원 대비 122.9% 89.2%의 이행률이다.
하지만 해운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제한적인 자본확충 등 기존 자구노력과 지원만으로는 여전히 정상화에 한계를 띠고 있다. 채권단은 해당 기업별로 경영상황을 점검해 자본확충 자산매각 등 추가적인 자구계획을 마련해 유동성 문제에 대응할 계획이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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