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3 10:49

추억의 명화/ 라이언의 딸(Ryan’s Daughter)

서대남 영화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의 가장 훌륭한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주장에는 반대하기 힘들다”고 피력한 그의 여섯번째 부인 ‘산드라 린(Sandra Lean)’의 언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0년에 발표된 영화 ‘라이언의 딸(Ryan’s Daughter)’- 국내 개봉 제목, ‘라이언의 처녀’는 흥행은 비교적 성공적이었으나, 테마가 참혹할 정도의 악평을 받아 영화사적으로 매우 안타까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를 인상깊게 봤고, 기억남는 스타들이 출연했기에 이번 기회에 꼭 한번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신혼때 같이 본 옆방 권사와의 기억 합집합으로 정리했다.

아일랜드 해변을 거니는 젊은 여인의 모습과 높디 높은 절벽아래 푸른 바닷물 위 우산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해변 모습이 첫 장면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6년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서부 해안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드라마, 불륜 로맨스 서사극으로 추억되는 영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벌이는 격동기에 사랑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하고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을 갈망하며 스스로 사랑을 찾아다니는 자유분방한 처녀, ‘로지 라이언(사라 마일스/Sarah Miles)’은 술집을 경영하는 ‘토마스 라이언(레오 맥컨/Leo Mckern)’의 외동딸로, 줄무늬 우산을 쓰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을을 활보하며 눈길을 끄는 처녀로 등장한다.

마을의 나이 든 은사 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던 로지는 상처를 하고 홀로 지내며 베토벤을 좋아하는 소심한 초등학교장 ‘찰스 소네시(로버트 미참/Robert Mitchum)’와 연령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다. 그러나 신혼 첫날밤 남편과의 관계에서 크게 실망한 로지는 결혼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토마스 라이언이 경영하는 술집에, 손님이라곤 단 한사람, 부상으로 다리를 저는 젊고 잘생긴 전쟁영웅, 영국군 수비대 장교 ‘랜돌프 도리안(크리스토퍼 존스/Christopher Jones)’소령에게 매혹되어 강하게 끌린 데서 부터 말썽은 시작된다.

두 남녀는 첫 눈에 친해져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금지된 열정적 사랑에 깊이 빠진다. 그러나 이웃의 바보, 오래도록 로지를 사모해온 벙어리에다 절름발이, ‘마이클(존 밀스/John Mills)’이 이들의 밀회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폭로하자 온 마을은 삽시간에 이들의 불륜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아일랜드인이 적대시하는 공적, 영국군 장교와의 정사였기에 더욱 불륜에 대한 추문에 휩싸여 온갖 냉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애당초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하며 심지어 아내와 불륜행각을 벌이는 도리안 조차도, 전투중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된 사람이라 고통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라며 안쓰러워할 정도의 호인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터지게 한다.

하지만 나이든 남편에게서 찾을 수 없던 육체의 쾌락과 황홀한 사랑의 환희에 몰입한 로지와 도리안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밀한 만남을 계속하자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마을의 존경받는 성직자 ‘콜린스 신부(트레버 하워드/Trevor Howard)’가 로지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그녀는 위험한 사랑의 불꽃을 지핀 스스로에 대해 아니라고 자성을 하긴 한다. 한편 영국에 대항하는 독립군은 주민들과 함께 거대하게 폭풍이 몰아치는 해안에서 무기를 운반하는 대 역사를 벌이다 영국군에 체포된다.

도리안과의 관계를 아는 주민들은 로지가 밀고한 것으로 오해, 그녀의 옷을 벗기고 긴 머리칼을 자르며 집단 폭행으로 린치를 가한다.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혼자 괴로워하던 남편 찰스는 로지가 이성을 되찾고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며 애써 무시해 왔지만 그녀가 여전히 도리안을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크게 실망한다.

드디어 도리안은 로지의 아버지까지 집단 린치를 당하자 자신때문에 로지가 고통받는 것을 알고 끝내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 삶을 마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불륜은 비극으로 끝을 맺고 로지와 소네시는 새로운 삶을 위해 마을을 떠난다.

70mm 대형 화면에 담아낸 바닷가의 수려한 풍광과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비평면에서 낙제점을 받기는 했지만 말 못하는 절름발이 바보, 마이클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로 제43회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과 제28회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존 밀스는 시상식에서 한마디 말 없이 인사만 꾸벅해서 ‘가장 짧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으로 기록되고 있고 ‘프레디 영(Freddie Young)’은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아 평단의 혹평과는 상반된 결과를 낳기도 했다.

1942년 ‘토란호의 운명(In Which We Serve)’에서 공동 감독으로 데뷰해서 그의 대표작,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이후 5년만에 발표된, 62세 린 감독의 신작이었는데도 악평을 받자, 그 충격때문인지 유작인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이 나오기까지, 비록 42년간에 16편에 불과한 작품을 연출한 소수정예주이자이기는 했지만, 실패를 모르던 그가 무려 14년간이나 침묵했었던 일은 당시 큰 화제거리로 회자됐다.

일부 평론가나 매니어 관객들, 심지어 필자같은 아마추어들도 이 영화가 소재나 영상 예술면에서 충분히 재평가의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분류하고픈 건 혹평을 어루만져 주려는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영화 내내 시야에 사로잡히는 바닷가의 아름다운 서정적 풍경과 관능적 로맨스가 그 어느 작품보다도 정적으로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 줬다는 평가가 있었으며 오스카 촬영상이 이를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데이비드 린의 4대 불륜작으로 불리는 밀회(Brief Encounter/1945), 여정(Summer Time/1955),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965)에 이어, 그리고 이 영화 라이언의 딸(Ryan’s Daughter/1970)은 ‘로버트 볼트(Robert Bolt)’ 각본에 ‘로이 스티븐스(Roy Stevens)’가 3년간에 걸쳐 무려 1,400만불의 제작비를 쏟아 부었고 무려 3시간 18분짜리의 장편을 만들었으나 평론가들은 데이비드린이 거장의 객기를 부리며 여기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결같은 혹평을 보였으나, 필자는 지금도 45년전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사라 마일스와 크리스토퍼 존스가 욕정의 화신이 되어 해변에서 불태우던 정사장면을 회상하며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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