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6 09:50

기자수첩/ 무한경쟁의 장, 동남아항로

갈수록 치열해지는 정기선 시장에서 선사들이 나눠먹는 파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원양항로는 이미 파이의 바닥이 드러난 반면, 아직까지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항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최근 동남아지역도 선사들이 앞 다퉈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여유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올 들어 동남아항로는 선사들의 잇따른 서비스 확대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1분기에 이어 2분기가 지나고 있는 현재에도 선사들의 레이더는 동남아항로로 향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따금씩 들려오던 항로개설 소식을 최근에는 2~3주에 한 번꼴로 접한다. 선사들의 서비스 개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태국·베트남항로는 그야말로 무한 경쟁이다.

이 항로들은 항차수가 많고 수많은 컨테이너선의 기항으로 저운임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베트남항로는 과거엔 20피트 컨테이너(TEU)당 300~350달러대를 유지했지만 최근엔 200달러를 손에 겨우 쥘 정도로 암울한 모습이다. 선사들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태국항로 역시 피차일반”이라며 “선사들이 한정된 물량을 쪼개 가져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동남아항로는 서비스 개설뿐만 아니라 선박의 크기도 대형화되며 공급과잉을 부추기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수많은 컨테이너선과 항차수는 마치 수도권 지하철과 버스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중교통 노선을 연상케 한다.

최근 동남아항로에 기항 중인 선사들은 컨테이너선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예전엔 1000~2000TEU급 컨테이너선이 동남아항로에서 주를 이뤘지만 요즘은 3000~4000TEU급 사이즈의 선박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원양항로에 대형 컨테이너선이 배치되며 캐스케이딩(선박 전환배치)으로 떠밀린 선박들이 동남아항로에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배가 커지다보니 실어야할 적재량도 늘어나 선사들의 화물 집하경쟁은 뜨겁다.

“물량도 줄고 운임도 떨어져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요.”  동남아항로에 기항 중인 선사 관계자의 넋두리다. 최근 동남아항로를 취항하는 선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십중팔구 어렵다는 말을 한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동남아항로의 5월 수입물량은 10여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매년 3~5%의 성장률을 꾸준히 이어갔지만 하락 반전한 것이다. 10개의 컨테이너 화물을 두고 경쟁을 펼쳐온 선사들로서는 9개를 두고 더욱 고달픈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연스레 물량이 줄어 배가 비자 선사들은 운임덤핑을 시도해 선복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떨어진 운임을 회복하고자 동남아항로를 기항하는 선사들은 매달 운임인상(GRI)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경쟁선사가 많은 상황에서 어느 한 곳이 운임을 올리면 금세 다른 선사로 물량이 흡수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선사들은 눈치만 보며 쉽사리 운임인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아직도 무궁무진해 선사들의 경쟁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사들의 선복 감축이나 운임인상 등의 노력과 자구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양상이 근해항로에 만연할 것이다. 서로간의 공조를 통해 운임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화물을 가득 채우고도 손가락을 빠는 현실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선사들은 언제라도 불어 닥칠지 모르는 변수에 대비해 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네트워크 관계를 마련해 나가야할 것이다.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남아 지역을 발판으로 삼아 선사, 더 나아가 해운업이 호황을 누렸으면 한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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