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6-13 17:30
한진해운 김외태 일항사
지구의 가장 북단에 위치한 ALASKA 원주민이 아직도 얼음집에서 살고 있다
는 마지막 순수함이 살아 숨쉬고 있는 땅 KENAI. 이곳에 첫발을 막 내딛는
1월 27일 새벽. 온몸에 느껴지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아직 잠이 덜 깬 상
태에서 선교로 발거름을 옮겨 놓았다. 상쾌한 새벽 내음은 갑갑했던 내 마
음을 활짝 열어 젖히고 물결에 반사된 달의 정취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이
로움과 함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려 갑판상을 내려보니 -20℃
이하에서 본선을 휩쓸고 지나가 버린 SEA SPRAY와 밤새 내린 눈꽃이 어느
듯 하나가 되어 평생 보기 힘든 장관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
한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현실은 너무나 막막했다. 그저 한숨섞인 쓴웃음
만이 나올 뿐이었다.
비료 선적을 위해 갑판에 널려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과연
접안 전에 가능할까? 라는 의문에 휩싸이며 온 몸은 식은 땀으로 흠뻑 젖
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에 비하면 이것은 행복한 비명에 불과했
다. HOMER에 무사히 묘박은 했지만 수시로 변하는 기상으로 인해 첫날밤을
맞이하는 우리로선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신혼의 첫날밤은 달콤하다지
만 ALASKA의 첫날 밤은 그러지 못했다. 밤새 묘박지 주위로 소리없이 몰려
온 유빙으로 결국 본선은 두 차례나 주묘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얼음에 쫓겨
DRIFTING할 수 밖에 없었다. HOMER에서 머무는 둘쨋날 갑판상 얼음을 제거
하면서 서로 미끌러져 엉덩방아 찧는 것은 예사였고 그 때마다 여유가 있었
기에 한 바탕 어울러졌고 그래도 아팠지만 웃음으로 넘길 수가 있었다. '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남자들끼리지만 다 큰 어른들이 어린 애들처
럼 눈싸움도 하고 그 위에 누워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면서 잠깐동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기도 했다. 모두가 영화감독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일류 배우였다. DRIFTING하는 동안 -20℃ 이하의 강풍밭에서 투양
묘 작업을 하는데 손발이 얼어 감각마저 사라져 버렸고 입술도 얼어 붙어
말과 행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선교와 통신이 잠깐씩 두절되기도 했다. 눈
만 가리지 않았지 누가 보아도 외계인이나 다름 없었다. -20℃이하에서 살
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살갗을 갈기 갈기 찢어 나갈 정도로 매웠고 그
로 인해 크레인 전체에 착빙되어 있는 얼음 제거도 만만치는 않았다. 40
KTS의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속에서도 8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얼음
덩이가 떨어질 때면 위험도 잊어 버린 채 동네 꼬마들처럼 환호성을 지르기
도 했다. 더구나 Crane Wire에 착빙된 얼음을 제거키 위해 뒷바람을 받도록
조선하면서 Wire에 몸을 의지하며 Crane Wire와 Sheave에 붙은 얼음을 떨
어내는 목숨 건 승조원들의 외줄타기 쇼가 연출되기는 했지만 그 위험한 순
간을 지켜보는 자체가 말없는 고문아닌 고문이었다.
본선 주위를 맴돌며 떠다니는 유빙군을 이리 저리 피해 다니는 우리는 스스
로 이방인일 수 밖에 없었고 정착할 곳을 찾아 헤매이는 월남 난민과 비슷
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지치고 힘든 상처 투성이의 몸으로 어둡고
두려웠던 긴 겨울밤을 보내고 새로운 아침 을 맞이 할때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갑판을 또다시 눈밭으로 만들어 놓은 기막힌 상황 재현에 자연의 위
대함을 두려움으로 느낀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혼자 선교에서 밤을 지키
고 있을 때면 너무 힘들어 옷 소매를 적시며 모든 것을 그만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도 싶었다. 하지만 검붉게 타오르는 새벽 태양을 볼 때면 좀 전
의 생각은 눈 녹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며 새로운 의욕으로 또다시 도
전, 이를 극복해 결국 마지막 승자가 되고 싶었다.
오늘로서 화물선적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Hatch Cover
위에 30~50cm로 결빙된 얼음을 제거한 지도 3주일째. 우리의 운명이 안스러
웠지만 이런 악조건하에서도 언제든지 접안하여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상
갑판에 사람키의 한 질도 넘는 높이에 스무 걸음도 넘는 길이의 애기 언덕
을 15여개나 만들었다. 뒤돌아 보면 HOMER를 빠져나와 DRIFTING을 하는 동
안은 모든 것이 HIGH COMEDY였고 모두가 서커스단의 광대와 곡예사들이 되
어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알기 위해 제작하는 한 편의 다큐멘타리
같았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작가의 대책없던 시나리오는 BLUFF POINT에
묘박하고 나서부터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해가 뜨고 지기를 헤
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며 동료들끼리 위로하고 어려움도
서로 격려하면서 서로의 아픈 곳도 어루만져 주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화물
을 실을 준비는 언제든지 가능하게 되었고 선체가 우현으로 약 1.5도 기우
는 의아해 하면서도 믿기 어려운 사실도 경험했다. 이제 하룻밤만 자고 나
면 UNOVAL 부두에 접안한다는 현실에 모두가 마지막 혼신을 다하기로 마음
을 굳게 뭉쳤지만 자연의 거센 도전엔 너무나도 인간의 힘은 미미했다. 42
년만에 찾아 온 기상불청객으로 전속 전후진해도 버티기는 더욱 힘들었고
더욱이 본선이 비료 선적을 위해 네번씩이나 SHIFTING을 해야 하는 현실과
접안 내내 조선의 차이로 본선을 쪼우며 엄청난 힘으로 밀고 지나가는 유빙
근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의 연속으로 1분1초를 보내야 했다. 2박
3일동안 주야로 잠도 잘 수 없었으나 이런 여건에도 LOADING은 조금씩 끝
나가고 출항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본선의 노력도 소용없이
한없이 밀려오는 얼음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몰렸다. 주위에 보
이는 것은 바다가 아닌 얼음 뿐이었고 반대편 육지와 어느 듯 하나로 연결
돼 있었다. 결국 출항만이 최선의 길로 선택되어 약 1만6천8백60톤만을 선
적하고 본선을 이끌고 우여곡절 끝에 유빙군을 빠져 나와 HOMER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지긋지긋하던 이곳을 떠나려 했지만 KENAI는 우리와의 인연을 쉽게
끊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동안 배척만 하던 이방인을 이제는 떠나지 못하도
록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과도한 선체 진동으로 프로펠러 수중검사 결과 B
LADE 4개가 모두 손상되었고 임시 수리를 위해 스웨덴에서 전문 기술자가
비행기로 공수되면서 수중에서 BLADE를 절단하는 대 수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 인해 KENAI와의 질긴 인연도 본사에서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한
국행이 결정되어 선수를 돌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떠나는 발걸음을 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한 항구에서 접이안을 위해 아홉번의 파이롯트 승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면서 그간 울리지 못했던 출항 뱃고동 소리를 길게 울리며
미끄러지듯 HOMER를 빠져 나왔다.
정들었던 님을 두고 못내 떠나는 아쉬움을 몰래 감추기라도 하듯이 희미한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두며 떠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더이상 어
둡게 가려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 설 땐 모두의 뇌리에 되돌리고 싶지 않
은 심정에서였는지 37일간의 지난 날들을 잊혀질 기억 저편으로 영원히 날
려보내고 있었다. 지금도 잠시 회상에 빠져 들때면 그 어떤 항차보다도 길
고 힘들어 눈시울을 적신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가족과도 같은 동료들
과의 일들이 내 짧은 인생사의 드라마틱한 소설같은 이야기로 남아 먼 훗날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들려주고 싶고 평생 간직하고 싶은
살아 숨쉬는 값진 경험과 세상에서 가장 별난 이양기로 항상 나의 곁에 남
아 있을 것이다.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