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항은 ‘넛 크래커(nut-cracker)’에 낀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홍콩과 선전, 광저우 칭다오 등 중국 항만들이 위 아래에서 부산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넛 크래커’는 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까는 기계를 뜻한다.
지난 2003년 이후 11년 연속 세계 5위 자리를 지켰던 부산항의 순위 하락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2013년에 비해 높은 물동량 상승률을 보이며 2014년 목표한 1820만TEU(20피트 컨테이너)를 초과달성했지만 순위 유지에는 실패했다. 반면 지난해 누계 컨테이너 처리 실적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닝보·저우산항의 세계 5대 항만 진입은 유력한 상황이다.
닝보·저우산항의 세계 5위 도약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010년 들어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닝보·저우산항은 2013년 9월 부산항과의 격차를 불과 1만TEU까지 좁혔으나 세계 5위 달성은 불발됐다. 2014년의 한을 풀려했던 것일까. 닝보·저우산항은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며 지난해 연초부터 부산항을 앞서나갔다. 9월에는 부산항과의 격차를 무려 100만TEU 이상이나 벌렸다. 궤를 같이해 다른 중국 항만들도 득의양양했다. 광저우 칭다오항은 폭풍성장하며 부산항과의 누계 물동량 차이를 약 150만~200만TEU로 좁혔다. 이대로 가다가는 부산항의 순위는 몇 년 내로 9위까지 추락할 판이다. 물동량 실적으로만 항만의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부산항의 순위 하락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반면 세계 2위 싱가포르항의 행보는 눈여겨 볼만 하다. 중국 항만이 기세등등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서 싱가포르항은 생존의 활로를 모색하며 특유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벙커링(급유)시설, 선용품 공급뿐만 아니라 수리조선사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특히 싱가포르의 선박수리 매출액은 2000년대 이후 연평균 7.7%씩 성장하며 연간 약 40억달러에 이르렀다. 반면 국내에는 80여개의 선박수리 조선소가 있지만 대부분 영세한 규모다. 더욱이 3만t급 이상 대형선박을 수리할 수 있는 곳은 부산에 전무하다. 부산항을 찾는 대형선박들은 수리할 곳을 찾지 못해 중국이나 싱가포르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정부는 대응책으로 2009년 부산 신항에 대형 수리조선소를 건립하는 건을 내놓았으나 선박통항 안전성 논란 등으로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되고 말았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수리조선소 사업은 최근 재점화되며 본격적으로 논의되고있다. 해양수산부는 부지면적과 수리 독(Dock) 등 사업규모를 더욱 확대해 대형 수리조선소 건립을 제3차 항만기본계획(2011~2020년) 수정계획에 올해 반영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민자사업자 선정, 기본 설계 등의 절차를 거치면 2017년께나 조선소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산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리조선소 조성은 시급한 부분이지만 넘어야할 산이 있다. 부산항에는 다양한 전문 분야별 소규모 수리업체가 산재해있어 선박수리 부문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세제혜택, 선박금융 지원 등의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 특히 세계 1위의 국내 신조선 업체들이 가진 기술력을 선박수리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신조선 업체와 선박수리 업체간 협업 체계도 마련돼야한다. 이밖에 선박급유기지 건설사업과 선용품 시장 활성화도 반드시 병행돼야 부산항이 싱가포르항처럼 양적성장 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고루 갖춰 영양가있는 항만이 될 것이다.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날이 저무는 마지막 날까지 부산항이 어려움을 딛고 독자 생존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항만으로 거듭났다는 기사를 작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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