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2 10:51

기획취재/택배·퀵 제도화 발목 잡는 용달차

용달업계 반발로 택배법 도입 ‘제자리’
정부, 소화물운송업계 갈등 해소 직접나서야

택배, 용달, 퀵서비스는 고객이 원하는 물건이나 상품을 원하는 장소에 직접 배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이들 모두는 물류의 한축을 담당한다. 하지만 업종별 서비스 형태는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띤다. 택배는 다량의 상품을 차량에 적재해 개개인의 고객들에게 직접 배송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용달의 경우 다수의 고객이 아닌 개인고객이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물품을 원하는 장소까지 배송하는 경우가 잦다. 퀵서비스 역시 이륜차를 중심으로 고객이 원하는 물품을 신속하게 배송하는 특송 개념으로 특화돼 있다.

얼핏 보면 이들 업계 간 서비스 영역이 차이를 보여 이해충돌이 없을 듯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물류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택배, 용달, 퀵서비스 종사자들 간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다.

택배업계, ‘택배법’ 제도화 요구

우선 택배업계는 택배차량 증차를 포함한 택배법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택배업계는 택배회사 간 과당경쟁으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과열 경쟁은 집·배송 수수료 인하와 택배기사 이직을 초래하고 운영비 증가 및 서비스 품질 하락과 수수료 인하라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택배시장은 꾸준한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요금하락에 신음하고 있다. 택배평균단가는  2001년 3190원에서 지난해 2500원대로 떨어졌다. 지난 12년간 20% 이상 하락한 것이다. 택배사 간 가격경쟁은 TV 홈쇼핑 등 대형화주보다는 온라인 유통업체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용실적에 따라 백마진을 제공하는 형태다.

과당경쟁에 따라 서비스 수준도 나빠진 건 물론이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택배서비스 관련 피해상담은 2010년 9905건에서 2012년 1만660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택배기사의 열악하고 강도 높은 근무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곧 택배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택배업계는 과당경쟁을 해소하기 위해 택배법 제정을 절실히 요구하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10년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과 2011년 민주당 최규성 의원이 택배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용달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 발의조차 못한 채 무산된 바 있다.

당시 택배회사와 전문가들은 ▲택배차량 증차 ▲외국인 노동자 고용 허가 ▲택배품질 서비스평가 ▲표준수수료제 도입 ▲택배산업 육성 등을 담은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특히 2004년 정부가 파업에 돌입했던 화물연대와 화물차량을 늘리지 않기로 합의한 뒤 금지된 택배회사의 증차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택배대리점과 택배기사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내년부터 일명 택배 카파라치 제도를 전면 시행함에 따라 비영업용 번호판을 사용하는 택배기사는 밥줄이 끊기게 생겼다. 현재 서울시에서 비영업용 번호판을 사용하는 택배기사는 1만3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14일 증차심의위원회를 통해 택배증차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택배차량 증가를 합의했다. 하지만 증차 규모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데다 증차 규모에 따라 용달협회의 반발도 예상되는 만큼 택배차량 증차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물품에 따라 배송 서비스 형태가 다른 만큼 택배를 이용할 것인지 용달을 이용할 것인지 소비자의 자율적인 선택에 맡겨야 한다”며 “용달업계는 번호판 프리미엄을 위해 증차를 반대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용달업계, 택배증차 ‘절대 불가’

택배법 제정에 대한 용달업계의 시각은 곱지 않다. 용달업계는 택배차량 증차에 대한 절대 불가 입장을 여러차례 밝힌 상태다. 용달업계는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합법적인 차량이 충분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증차를 반대하고 있다.

용달업계 한 관계자는 “합법적인 영업을 하는 차량은 충분하지만, 일거리가 없어 수익도 내지 못한다”며 “비영업용 차량을 이용해 영업을 하는 행위가 다반사지만 실제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용달업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은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불어 용달업계가 불만을 제기하는 부분은 수익적인 측면이다. 용달협회 관계자는 “용달업 종사자의 한달 평균 수익은 100만원에 그친다. 하지만 택배업 종사자는 이보다 수익이 나은 편이다”며 “정부가 버스나 택시 등 여객 번호판 거래는 크게 문제 삼지 않지만 유독 화물차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화물차 번호판 프리미엄이 올라간 것은 시장논리에 의해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번호판이 필요하면 값을 지급하고 구매를 하면 된다. 택배업체에서는 정당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정책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에 의하면 지난해 K택배사와 D택배사는 각각 150개의 화물차 번호판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관계자는 내년부터 전격 시행 되는 카파라치 제도에 대해서는 “택배회사 본사에서 택배대리점 또는 택배기사에게 합법적인 자격요건을 갖춰 영업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피해는 택배대리점과 택배기사들에게 전가될 것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마스와 라보를 포함하는 것을 골자로 추진되는 퀵서비스업의 법제화에 대한 반대의견도 피력했다. 다마스와 라보는 엄연히 화물차 번호판이 부여되고 있는데 별도로 퀵서비스업에 포함시키는 것은 ‘밥그릇을 뺏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륜자동차를 대상으로 하는 법제화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퀵서비스 산업, 제도화 될까

퀵서비스는 이륜자동차를 이용해 화물을 유상으로 문전배송을 하는 사업형태다. 사업은 관할세무서에 등록하면 누구나 가능하고 기사는 이륜자동차 면허만 소지하면 누구나 종사할 수 있는 자유업이다.

낮은 진입 장벽으로 인한 각종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진입장벽이 없이 누구나 시장진입이 가능하므로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이 문제로 지적된다. 더구나 신분확인 없이 누구나 취업이 가능한 구조는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 퀵서비스 기사는 “시장 진입 장벽이 아예 없다 보니 신분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퀵서비스 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다수다. 이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신분확인 절차가 미비해 각종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또 “시장 진입장벽이 없어 가격경쟁력도 크게 떨어졌다.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퀵서비스의 품질은 더 낮아질 것이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퀵서비스를 이용해 운송되는 품목은 입찰 및 계약서류, 기밀서류, 영화필름, 여권비자, 신용카드, 고급의류, 고가 전자제품 등 부피는 작지만, 매우 고가의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신분확인 절차 없이 운송될 경우 자칫 분실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더구나 업체와 기사 간 고용관계가 불명확해 사고발생 시 보상체계와 책임범위 주체를 규명하기도 어렵다.

한 물류 전문가는 “불특정 다수의 기업과 국민들이 빈번하게 이용하는 퀵서비스를 물류의 한 부분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며 “이륜차를 이용한 소화물배송서비스의 효율적인 관리를 통해 소비자와 퀵서비스 운수종사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퀵서비스업의 건전한 발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상 화물운송수단을 규정하는 ‘자동차관리법’상 화물자동차의 범위와 기준을 단순히 자동차의 구조가 아닌 용도 측면에서 분류해 이륜차도 화물자동차의 범위에 속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퀵서비스 기사 산재, 자동차보험, 적배책 보험 등 안전망 구축과 퀵서비스사업의 영세성을 고려해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우수 퀵서비스사업자 등록제 또는 인증제 등을 도입해 퀵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일부 퀵서비스사업자의 요구에 따라 다마스와 라보가 퀵서비스산업에 포함될 경우 업무영역이 중복되는 택배업계나 용달업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한 용달협회 관계자는 “이륜차 제도화는 찬성하지만, 퀵서비스산업 제도화를 이유로 다마스와 라보를 포함한다면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며 “다마스와 라보는 이미 용달차 번호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상태인데 왜 새로운 법을 제정해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국회 ‘눈치보기’

정부와 국회는 큰 틀에서 택배법 제정을 통해 택배가 산업으로 육성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다른 사업자들과의 이해관계를 우선 조정해야 하고 소비자들의 택배 이용료 증가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태도다.

국토교통부는 택배법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한국교통연구원에 의뢰한 상태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오는 7월쯤 자세한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며, 아직까지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는 단계다”고 말을 아꼈다.

퀵서비스산업 제도화도 지난해 새누리당 이이재 의원과 민주당 박수현 의원이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국회 차원에서 논의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이들 의원들도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듯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퀵서비스 종사자는 “국회의원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퀵서비스 제도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며 “지방선거가 끝난 뒤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중국 등 제도 마련…한국은 거꾸로

이웃 일본의 경우 일찍이 1983년 ‘택배운임 인가기준’을 제정, 택배업을 소화물 운송업으로 지정했다. 국토교통성의 허가를 받은 사업자만이 인가받은 운임에 따라 택배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한 것이다. 운송비는 정기적으로 국토교통성에 신고한 뒤 허가를 받도록 했다. 아울러 1990년 12월에는 ‘화물자동차운송사업법’에 따라 화물경자동차운송사업으로 분류함으로써 퀵서비스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구축했다.

중국도 2008년 ‘택배시장 관리방법’이라는 법률을 제정한 뒤 업체별 규모와 조건에 따라 취급 물품 및 지역 범위를 정하는 방식의 ‘경영허가제’를 시행해 서비스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97년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하면서 택배 허가제를 폐지하고 신고제로 전환했다. 운임이나 화물의 중량·부피도 완전 자율화했다. 이 때문에 영세업체나 개인사업자에게 도급을 하는 ‘다단계 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내 택배시장은 몇 년 전부터 5~6%대 성장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올해도 최소 8~9%대 성장은 거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모바일 등의 신규 판매 채널을 확보하려는 유통업체 증가와 T커머스, 모바일 쇼핑 등에서 발생하는 신규 택배물동량이 크게 늘어 연 택배물동량이 16억개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돌고 있다.

하지만 각 업계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한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 택배와 용달, 퀵서비스 종사자들이 한데 모여 이해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물류산업 선진화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법망에 벗어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물류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대면해 물류산업 선진화 마련의 발판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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