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기간을 기록했던 철도파업이 끝났다. KTX 민영화 반대를 내세우며 진행됐던 전국철도노조의 총파업은 정부와 노조 간의 강경한 입장차를 내세우다 파업 22일째인 12월30일 국회에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철회절차를 밟았다.
철도 노조는 2016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의 법인 설립이 철도의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며 12월9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코레일(철도공사)은 수서발 KTX 법인은 코레일 계열사로 민간 지분 참여 가능성도 차단해 노조의 파업을 명분 없는 불법파업으로 간주하며 양측은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모습을 보였다.
대규모 철도 파업은 철도 민영화 논란과 이사회 의결, 파업참가자 직위해제 및 고소·고발 등 외부상황이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 코레일은 노조 집행부와 파업 참가자 4356명 전원을 직위 해제하고 기관사 300여명, 열차승무원 200여명 등 모두 500여명을 기간제로 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가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강제 진압했다 검거에 실패하며 비난 여론이 거세진 상황에서 코레일의 이 같은 신규 인력 채용 방침까지 발표되자 노조의 반발은 거세졌다.
극단적인 입장차를 보이던 철도노조와 정부는 결국 국회의 중재로 일단락됐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지만 철도 운행 정상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정부는 기존 원칙과 계획대로 수서발 KTX 개통을 준비한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는 12월27일 일과시간을 넘겨 긴급하게 추진한 수서발 KTX 운영 법인의 면허 발급이 국민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코레일측은 ‘불법’ 파업자에 대한 징계는 원칙대로 강행할 뜻임을 시사했다. 철도 노조의 파업은 철회됐지만 노조가 정부와의 입장을 좁히지 않고 수서발 KTX 법인 면허발급에 대한 무효소송에 들어가면서 여전히 불씨를 남겨두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져
파업은 일단락됐지만 예상치 못한 철도파업으로 운송사들은 정신없는 연말을 보냈다.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화물열차 운행이 대폭 감소되면서 파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운송사들에게 전가됐다.
화물열차는 불가피하게 평소운행량 대비 3분의1 수준으로 감축운행에 들어갔다. 파업시작인 12월 초만 해도 문제없었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연말 수출입 물동량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의왕ICD(내륙컨테이너기지)내 컨테이너 야적장에는 선적되지 못한 컨테이너가 수북이 쌓였고, 선적 기일을 맞추려는 물류업체들은 대체 운송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유례없이 바쁜 연말을 보냈다.
한국철도물류협회는 “철도물류업계가 선적기일을 맞추지 못해 국제적 망신을 당할 처지에 있고, 수출입 차질로 인한 고객 불만이 폭주하고 있어, 국가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 된다”며 철도파업 철회를 부르짖었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철도파업으로 인한 수출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운송사들이 힘들게 막아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뿐 그 피해는 1조원대에 육박한다”며 “화물열차 운행이 30%대로 떨어지자 철도로 수송되는 화물을 육로수송으로 대체하느냐 밤낮으로 뛰어다녔다”고 파업으로 인한 업무과중을 토로했다.
국토교통부는 파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철도수송 화물을 대체 수송하는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컨테이너 및 석탄 수송차량에 대해 고속도로 통행요금을 면제키로 했지만 위수탁(지입)계약이 대부분인 운송사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나마 장기간 파업에도 수출차질의 파괴력이 크지 않았던 것은 비수기에 들어간 수출도 한 몫했다. 업계는 시기적으로 2~3개월 앞당겨 철도파업이 일어났더라면 그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파업초반까지만 해도 철도와 육상 모두 물량이 부족할 때라 물류에 차질이 없었지만, 3주차에 접어들면서는 버티기 힘든 상황까지 직면했었다”며 “철도로만 수송해야하는 화물은 적체가 되면서 고비를 맞았었다”고 설명했다.
철도파업에 운임인상 이중고
운송사들의 처지는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은 모습이다. 철도공사의 갑작스러운 10월 철도 화물운임인상의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12월 철도파업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 것. 연말연시 불우한 이웃으로 운송사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코레일은 10월1일부로 철도운임을 최저 8%에서 최고 15%까지 인상했다. 컨테이너화물의 경우 1km마다 20피트 컨테이너는 449원에서 516원으로 40피트 컨테이너는 기존 741원에서 800원으로 인상됐다. 45피트 컨테이너는 1km당 876원에서 946원으로 인상됐다.
철도공사의 운임인상은 예고된 사항이 아니어서 운송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코레일측은 “2006년 11월 철도운임인상 이후 7년 동안 동결해왔지만 물가상승 및 유가인상 등의 원가부담으로 인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철도공사의 지주회사와 자회사 체제 전환으로 철도공사의 적자부문인 화물부문이 철도물류회사로 따로 나올 경우 철도운임 인상 가능성이 제기돼왔지만 갑자기 운임인상을 통보한 상황이었다.
운송업계는 철도공사가 적자 줄이기에 나서는 점은 공감하지만 갑자기 화물운임을 인상한 것은 황당하다 못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철도공사가 공식적으로는 7년 만에 운임을 인상했지만 그동안 꾸준히 블록트레인 등 기타 할인율을 낮춰와 운송사들에겐 매년 운임인상이 돼온 격이기 때문이다.
운송업계 한 관계자는 “철도공사가 그동안 운임인상은 안하고 탄력운임할인, 인센티브 등을 축소해와 운송사들은 비용만 늘어났다”며 “처음부터 운임인상을 해왔더라면 화주들에게도 적용해왔겠지만 할인율축소라는 명목으로 코레일도 운송사들도 제대로 운임인상을 하지 못하게 된 꼴”이라고 밝혔다.
연간 계약을 진행하는 운송사들은 10월 운임인상분을 대부분 고스란히 떠안았다. 철도운임인상분을 거론하면 화주들은 철도수송을 육로로 바꾸라는 말만 내뱉을 뿐이다. 운송사들은 연간 운임인상으로 인한 비용증가로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됐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10월 대대적인 운임인상에 철도파업으로 인한 운송 차질까지 운송사들은 그야말로 오른쪽 뺨을 맞자마자 왼쪽 뺨도 맞은 꼴”이라며 “파업으로 인한 운송사들의 피해는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며 운임인상 돼도 화주에게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누구에게 풀어야하나”라며 울분을 토했다.
새해부터 모든 열차 사전계약 판매
여기에 철도공사가 철도화물운임을 인상하고 두 달도 채 안 돼 운송사들에게 모든 컨테이너 열차를 사전계약 방식으로 판매하겠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철도물류업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업계는 철도공사의 방침은 철도수송을 그만두라는 행동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코레일은 11월 운송사들에게 2014년 1월부터 모든 열차를 ‘사전계약’으로 판매한 후 정기열차로 운행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사전계약 미계약분에 대해서는 정기열차의 10%내에서 임시열차를 운행하되 운임은 20% 할증된다. 이마저도 사전계약 수요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조건을 달고 있다.
대상열차는 총 82개로 오봉-부산 구간은 오봉역 도착 후 출발 때까지 화차 체류시간이 단축되도록 왕복열차로 그룹을 구성하게 된다. 판매방식은 철도공사의 구간별 왕복열차 시간표 중 운송사가 선택하고 여러 업체와 컨소시엄 형태로 신청 할 수도 있다.
업계는 ‘컨테이너 열차단위 판매안’은 현재 경부구간에 집중돼있는 블록트레인(BT 전세화물열차)을 전 구간에 상용화하겠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블록트레인 개념이지만 할인율은 대폭 축소됐다. 사유화차 할인을 제외한 기존에 시행되던 탄력운임제 등 각종 할인은 열차단위 계약 할인으로 통합돼 업체들 입장에서는 기존 할인율이 다 사라져버린 꼴이 됐다.
운임은 기본운임에 할인 적용해 산출하고 할인은 사유화차 할인과 열차단위 할인으로 나뉜다. 사유화차 할인과 열차단위 할인은 중복해서 받을 수 없다. 여기서 열차단위 할인이란 오봉-부산 광양 구간은 기존 탄력할인 5%에서 선 계약 인센티브 5%를 반영해 최대 10%를 받을 수 있고, 그 외 구간은 개별 협상 방식이지만 운임이 높지 않아 10% 이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사유화차를 보유하지 않고 블록트레인으로 혜택을 보던 업체들은 대략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BT 할인율이 낮아지면서 사유화차의 할인이 상대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그동안 사유화차의 할인이 블록트레인보다 낮은 기이한 현상이 바로잡아지긴 했지만 BT의 혜택을 누리던 업체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여기에 운송사들이 열차단위 판매 계약을 맺었다하더라도 월 운행률이 90%에 미치지 못하면 운임의 5%를 추가로 내야한다. 운휴의 경우 운행일 15일전에 신청해야한다. 계약은 1년이지만 필요한 경우 6개월도 허용한다. 운임의 추가 인상요인이 발생할 경우 자동 적용할 수 있는 협약을 추가해야한다고도 명시했다.
철도수송하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아리송’
운임인상도 인상이지만 1년 단위 화물을 계약하는 것은 운송사들에게는 커다란 짐이다. 현재 블록트레인도 물량 채우기에 급급한 상황에 선뜻 계약에 나설 운송사들은 찾아 볼 수 없다. 운송사들은 철도공사의 제안방식에도 불만을 표출했다. 철도공사는 운송사들을 대상으로 ‘컨테이너 열차단위 판매안’에 대해 여러 차례 설명회를 열었지만 철도공사의 일방적인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설명회를 거듭할수록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철도공사는 결국 철도물류협회와 운송사들의 입장을 받아들여 ‘열차단위 판매’를 3개월 유예해 4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지선구간에 대한 열차단위 판매도 운송사들의 부담으로 판매상품에서 논의가 제외됐다. 현재 운송체계가 3월까지 이어지게 됐지만 그 동안 철도공사와 운송사들은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나갈 계획이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운송사들의 반대가 심하자 코레일에서도 처음 제안에서 물러나 할인율을 다시 높여 블록트레인은 20% 할인율까지 인정해주기로 했다”며 “결국 매년 공사가 조금씩 조정해서 축소해왔던 할인율과 다를 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친환경 운송수단인 철도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한 전환교통보조금의 목적도 불분명해졌다. 전환교통보조금은 철도수송 활성화를 위해 도로로 수송하던 화물을 철도로 전환할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지만 코레일의 일방적인 운임인상으로 오히려 철도의 퇴보를 앞당기고 있는 형국이 됐다.
한 운송사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철도를 늘리고자 하는 업체는 한 곳도 없다”며 “전환교통보조금은 유명무실 해지고 다들 철도수송에서 육로수송으로 비중을 늘려갈 것”이라며 정부의 철도전환율 높이기가 이율배반적이게 들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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