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추진 중인 해운사 유동성 지원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선박해양금융공사와 해운보증기금이다. 선박금융공사 관련 법안은 2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지난해 7월6일 이진복 의원(새누리당 부산 동래)이 발의한 선박금융공사법을 비롯해 올해 3월5일 김정훈 의원(새누리당 부산 남구갑, 정무위원장)이 제출한 해양금융공사법이 국회에서 입법 경쟁 중이다.
두 법안은 자본금이나 지원 대상만 조금 다를 뿐 기본 골격은 같아 무늬만 달리한 같은 법안이란 얘기도 나온다. 공사를 금융위원회 산하로 부산에 설치하거나 자본금을 정부에서 전액 출자토록 한 건 두 법안 모두 같다. 발의한 의원들도 금융위원회 등을 소관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다.
두 법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선박금융공사법은 자본금 2조원을 조성해 해운사와 조선사에 선박의 건조․구매 또는 거래를 지원토록 한 반면 해양금융공사는 자본금을 3조원으로 늘렸으며 지원 산업도 해운 조선 항만 해양플랜트 수산 해양과학기술개발 해양환경 해양관광 해양정보 등 범해양산업으로 확대했다.
선박금융공사.해양금융공사 나란히 법안 발의
그렇다면 왜 선박금융공사법이 국회에 계류 중임에도 김정훈 의원은 해양금융공사법을 다시 발의했을까? 김 의원 측은 해운·조선업만 지원할 경우 공사 운영에 리스크가 큰 데다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가능성도 있다고 해양금융공사법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김정훈 의원은 정무위원장이란 ‘파워’를 앞세워 법안 통과에 힘을 싣고 있다. 추후 병합심사 과정에서 두 법안은 하나로 통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는 별도로 해양수산부는 해운보증기금 도입을 준비 중이다. 해운보증기금법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장윤석 의원(새누리당 경북 영주)에 의해 조만간 발의될 예정이다. 입법이 추진 중인 두 금융공사와 달리 해운보증기금은 지원 대상이 해운산업인 데다 기관을 해양수산부 산하로 둘 수 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해운산업 지원책으로 평가된다. 장윤석 의원도 지원기금은 정부와 민간에서 출연한 초기자본금 2조원으로 설립될 전망이다. 정부에서 1조8천억원을 출연하고 나머지 2천억원을 선사 금융회사 대량화주 등 민간에서 조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맡는 역할은 크게 해운사 대출 보증과 선박은행(Tonnage Bank) 역할이다.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엔 넘어야할 산이 많다. 통상마찰 가능성이 가장 큰 쟁점이다. 정부는 해양․선박금융공사 설립을 통한 해운조선산업 지원이 이뤄질 경우 규정 위반이 된다고 보고 있는데 회피책을 찾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해운업과 조선업 지원 필요성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통상마찰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밖에 타산업과의 역차별 문제와 부실화 가능성 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 의원과 관련 단체가 만나 이 같은 과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마련된 건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된다.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주최로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 관련 법률 제정에 관한 공청회’에선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전무와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선임연구원,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유병세 전무,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원 이재민 선박금융학과장 등이 참석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해운산업 지원방안에 대한 문제점과 그 해법을 제시했다.
이날 선주협회 김영무 전무는 빠른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중은행에서 유동성 공급이 되면 공사 등 전문기관 필요 없으나, 현재 상황은 시중 은행들이 선박금융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해운산업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고 있다. 대형선사의 경우 대한해운,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도 고전하고 있다”며 시중은행이나 정부 등에서 관심표명이나 지원이 없다면 국내 선사들은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김 전무는 불황기 안정적 자금조달을 위한 안전망 구축, 대출한도를 확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여신창출기관 설립, 해운시장 정보를 예측, 분석할 수 있는 전문기관 등 선박금융 전문기관 설립의 3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1단계 해운보증기금 설립을 통한 해운산업 지원(보증업무), 2단계 선박금융공사로 발전(대출업무 추가), 3단계 해양금융공사로 확대(해양산업 전반 지원) 등 단계적 설립방안이 해운·조선·해양산업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무는 금융위기 이후 중소형 선사들 사이에서 자연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선주협회 회원사는 2007년 180개사에서 올해도 180개사로 변화가 없다. 하지만 그동안 80여개 선사가 퇴출되고, 80여개 선사가 새로 협회에 가입했다. 김 전무는 해외의 해운선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에 관심을 보여주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형선사의 경우 대한해운,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도 고전하고 있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매출의 80%는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벌어오고 있는 것이며, 이 선사들을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다.”
그는 “2008년 이후 5년간 선사들은 선박 127척과 컨테이너 터미널까지 매각하는 자체 구조조정으로 5조원을 마련했다”며 “해운업계가 IMF 때 선박을 헐값에 매각해 3~4년 뒤 고가로 선박을 다시 매입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박 헐값매각을 재발하지 말자고 다짐했으나 이번 금융위기 이후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에선 해운조선산업 지원법안의 WTO 규정 위반 우려가 핵심이슈로 떠올랐다. 김정훈 위원장은 민간 참석자들에게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이 WTO 규정 위반을 피할 방법은 없는 지 물었다.
이재민 한국해양대 교수는 “어떤 것이 WTO규정 위반이고 어떻게 하면 회피할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며 “상대국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WTO에 제소를 하면 그때서야 WTO는 패널을 구성하고 심사해 규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절차를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정성, 재정적 지원은 WTO 규정 위반에 해당된다고 생각되지만, 혜택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면 WTO 문제는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사를 운영할 때 차별금리 등을 통한 금전적 혜택이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 부분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보완조치를 취하면 된다는 의견이다.
WTO위반 핵심은 '차별적 금리'
김영무 전무는 조선산업을 지원할 때 해운산업을 통해서 지원하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조선업계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조선협정, WTO 규정 등을 통해 시비를 걸 수 있는 것이 많지만 해운은 그런 것이 없다”며 “세계 각국은 해운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도 조선산업을 지원하는데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해운을 통해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그리스 해운사에 대출하는 방법으로 자국조선소 수주를 지원하는 게 한 예다. 세계 모든 국가가 해운산업을 자국의 기간산업 또는 안보산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규제를 만들지 않는 까닭이다. 미국의 경우도 해운에 대한 규제 도입을 꺼려하고 있다.
김 전무는 해양금융공사 또는 선박금융공사가 적용 금리를 시중금리보다 낮지 않게 지원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병세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는 “WTO 문제는 특정 산업을 지칭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특정국가에서 제소를 하면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상황이 된다”며 “이러한 낭비요소를 제거하는 차원에서도 특정산업을 지원한다는 인식을 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소 입장에서 제작금융이 문제가 생기면 선박의 95%가 수출화물이기에 신박이 인도되지 않아 수출에 차질이 생기고 나아가 조선소의 이미지도 악화될 수 있다”며 “WTO 문제는 보조금의 성격이 통상 WTO에서 인정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연장선상에서 타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논의됐다. 해운산업 불황으로 선박금융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선박해양금융공사를 신설할 경우 타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기준 의원(새누리당 비례)이 지적하자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선박금융 확대 방안은 신설 공사 설립 또는 기존 정책금융기관의 활용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도 “타산업과의 형평성 문제는 불거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존 정책금융이관은 '제살 깎아먹기'
공청회에선 신설되는 공사가 기존 정책금융기관의 업무를 이관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병세 전무는 “해운조선에 대한 금융지원을 위해 설립되는 신설 공사가 정책금융기관의 업무 이관을 통해 만들어진다면 제살 깎아먹기가 된다”며 “신설기관은 중소 해운조선업체를 지원하는 특화된 기관으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선박금융이 거대 금융상품이기에 단일은행이 큰 금액의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여러 다국적 은행이 연합해서 협조융자를 제공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해서 공유하는 특성을 보인다”며 “금융기관이 여러 군데 만들어진다고 해서 업무중복성이나 비효율성이 발행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참석한 의원들 중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은 선박해양금융공사가 특혜나 덤핑요인만을 조심한다면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유럽과 우리나라의 조선보조금 문제의 논쟁의 초점을 과거의 특혜시비에서 이제는 덤핑요인(선가가 원가 이하라고 주장하는)이 있다는 쪽으로 바뀌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공사를 만들어 유동성 지원을 할 때 국제통상질서를 위배하는 것인가의 부분은 단순 유동성 확대만으로는 시비거리가 되지 못하고 특혜가 있었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자금을 선박금융으로 이용하는 방안이 없느냐는 의원들의 질문도 나왔다. 김기준 의원은 “최근 상황을 보면 시중은행들도 자금 운용할 곳이 없어서 고민중인데 이런 유동자금을 선박금융에 활용하는 방안은 없느냐”고 물었다.
양종서 선임연구원은 “시중은행이 선박금융 시장에 들어온다면 유동성 지원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해운선사들의 유동성 부족이 심각하고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하락한 상황에서 시중 은행들이 쉽게 이들 선사에게 대출해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해 시중은행의 선박금융 참여 가능성을 낮게 봤다.
선박해양금융공사의 부실화를 우려하는 의원도 있었다. 조원진 의원(새누리당 대구달서병)은 “재정문제, 불황회복전망 등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만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중국의 ‘국수국조’원칙에 따라 선박금융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중국과 선박금융으로 경쟁할 수 있겠는가를 고려해야 한다”며 “해운-조선-금융이 같이 움직여야 다같이 발전할 수 있는데 이런 중국과의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공사의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재민 교수도 조 의원 말에 동의하며 “경기가 회복돼야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금융공사를 만든다고 해운 조선경기 침체가 회복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선박금융의 금액이 크고 대출기간도 장기간인 점 등으로 해운조선의 발전을 위해서는 금융발전이 필수적인 요소지만 근본적으로 금융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가 끝난 뒤 이윤재 한국선주협회 회장은 김정훈 정무위원장을 만나 해운보증기금의 조속한 설립과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회사채 및 영구채의 원활한 발행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김정훈 위원장은 해운보증기금 설립, 회사채 및 영구채의 발행을 위한 지원에 대해 필요성을 공감하고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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