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9 14:20

“호황일 때 불황 대비했어야”

인터뷰/ 한국선주협회 이윤재 회장
해운보증기금 설립 최우선 추진
STX팬오션 법정관리로 한국해운 불신 우려 커


“해운사의 현재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금 지원밖에 더 있겠나? 정부와 협회가 합쳐서 열심히 뛰고 있다. 보증기금과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이윤재 회장(흥아해운 회장)은 해운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필요성을 이 같이 간명하게 표현했다.

이윤재 회장은 사장단 연찬회에서 기자와 만나 해양수산부에서 추진 중인 해운보증기금 설립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와 해운업계 금융권 등에서 보증기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자본금으로 2조를 모으려고 하고 있다는데, 2000억원 정도는 선사들이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보증기금법 발의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선 “금융당국과 협의할 사항이 남아 있는 데다 보강할 내용도 좀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당국은) 처음엔 반대가 심했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관련기관이 많아서 의견을 하나로 모아내야 하는 게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운보증기금법은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이 해운법 개정을 통해 입법화를 추진 중이며 당초 5월께 발의할 예정이었으나 내용 보완이 길어지면서 발의도 계속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해운보증기금이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선 “모럴해저드는 어느 룰에서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운영하는 쪽에서 각자가 지켜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증해주는 기준을 만들 거다.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서 기준에 적합하면 보증을 해주게 된다. 해운경기 전문기관역할도 하게 될 것이기에 경기추이를 지켜보면서 엄격한 기준에 의해 (해운사에 대한 보증을) 할 것이다. 모럴해저드가 발생하게 무분별하게 보증해주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금 설립 시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선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질문엔 이달 초 수협은행과 맺은 중소선사 유동성 지원 협약을 언급했다. “수협과 1차적으로 30억원 한도 내에서 중소형 선사의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 지금 수협에서 적극적으로 (자금 지원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상당한 도움을 수협에서 받지 않겠나?”

수협에선 보증에 대한 금융을 맞춰주고 부담을 해주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길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답답한 사람이 가서 대화를 시도해 봐야지. 지금 보면 제일 답답한 사람들이 정작 찾아가서 대화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유동성난을 겪고 있는 중소선사들이 수협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STX팬오션 법정관리 사태에 대해선 한국 해운업계에 파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운사에 대한 불신 심화, 공동운항선사 피해 등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동남아항로에서 공동운항을 진행 중인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은 공동운항을 해지해야 할 지 말아야 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STX팬오션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가급적이면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선사 하나가 없어지면 경쟁자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해운산업은 오히려 국적선사들끼리 공동운항을 외국선사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관계기관에 회사채 리볼빙, 유동성 지원책 등을 여러 차례 진정했지만 현실적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STX팬오션은 매출로 따져 국내 3위이지 세계적으로 보면 벌크선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 아닌가? 독보적인 회사의 법정관리로 한국 해운회사가 다 불신을 받게 된다. 자그만 문제도 곳곳에 있다. 용선주나 공동운항 선사 피해, 기름값 하역료 문제 등 여러 문제가 터지고 있다. 한국선사의 신용이 다 무너진 거다. 신용으로 거래해왔던 걸 현금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자율을 올려달라는 은행도 있다고 하더라. 선주협회에서 사례를 수집해 정부에 건의하겠다.”

이 회장은 해운산업 시황 회복은 2015년이나 돼야 가능할 것 같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놨다. 하지만 그 때까지 버틸 해운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란 우려도 함께 덧붙였다. “예전엔 2년 좋고 8년 안 좋은 패턴이었다. 2년간 번 돈으로 8년을 먹고 살았지. 관건은 중국이라 생각한다. 중국이 좋아지면 우리도 좋아지고 세계 전 해운경기가 살아난다.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다. 중국이 문을 닫으니까 모든 게 올스톱 됐다. 호황 때 조심해야 하는 데 다들 한탕 하려고 (해운시장에) 달려들었다. 늘 얘기하는 게 있지 않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거다. 그걸 알면서도 실천을 못한다. 지난 호황기 때 해운보증기금을 만들었으면 금방 만들었겠지. (해운보증기금에 대한 해운사의) 매칭펀드도 금방 냈겠지. 근데 (호황을) 좋아만 할뿐 전혀 (대비할) 생각을 안했다. 요즘 보면 (20)15자가 보이더라. 15자가 보이면 안된다. 2년 동안 견디는 회사가 몇 개나 되겠나?”

이 회장은 또 해양대 증원에 대해선 업계와 해양대측에서 요구하고 있는 2000명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부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양 해양대의 해사학부 정원은 700명이다.

“500명 정도까진 안 늘려 주겠나 생각한다. (정부에서) 해양대의 시설등록, 수용능력 등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2000명까지 늘리려면 새로운 시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계획이) 바뀌었다. 요즘은 육상 관리자 육성도 문제다. 2000명으로 늘리면 1000명은 타고 절반은 해운관련 산업으로 간다. 배 1척 늘어나면 선원 10명이 필요하고 관리감독도 10명이 필요하다. 일반대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지만 해양계열은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많기 때문에 정원을 늘리는 게 좋다.”

요즘 3자물류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 등의 대기업물류자회사 문제에 대해선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글로비스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로 인해) 물류 일부를 내놓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덤핑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런 부분을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정부와) 얘긴 다 돼 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 (물량을) 배분하자고 합의해야 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대기업 계열사간 20% 이상 거래 금지)는 분모를 늘리는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수송물량을 제한하는 건 어떠냐고 하는데 이 또한 문제점이 있다.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담론으로 대기업들도) 과거처럼 막 쓸어 담는 게 아니라 조심을 하게 된다. 싸워서 될 게 아니라 서로 상생협력을 해야 한다.”
이 회장은 요즘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SPC) 설립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그는 “신고를 안해 역외탈세를 하면 문제지만 대부분의 SPC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머스크는 세계상선대 리드를 하고 있지 않느냐. 적자 내는 부분을 100억 흑자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자기 힘이 크기 때문이다. 프랑스 CMA CGM도 벼랑 끝에 몰렸다가 국가가 살려놓지 않았나? 독일 하파그로이드도 마찬가지”라며 “우리나라는 그런 대처를 못했고 정부가 지원도 안했다. MB 정부 때 해양수산부가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하며 해양수산부 부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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