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24 09:39

'역외탈세' 표적된 해운업계…'세금폭탄' 전조에 '끙끙'

최근 해운업계에 과세당국의 강력한 세무조사에 이은 거액의 과세처분이 이어지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24일 국세청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해부터 국내 10여개 중대형 해운업체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세무조사를 진행했거나 진행 중이며 '역외탈세'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결과 일부 역외탈세 혐의가 발견된 업체에는 가차 없는 '세금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세청은 최근 대양상선에 역외탈세 혐의를 적용, 소득세와 법인세 등 총 478억원을 추징했고, 관세청과 공조를 통해 두성선박에도 300억원 상당의 세금을 부과했다.

또한 수십여 척의 상선, 화물선을 운영하며 연매출 5000억원에 이르는 중견해운사 폴라리스쉬핑에도 역외탈세 분야를 담당하는 국제조사국 요원들을 투입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80여개 달하는 해운업계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세금폭탄' 소식에 잔뜩 움츠리고 있는 상황이다.

▲'편의치적' 관행에 메스 댄 과세당국 = 국세청과 관세청이 최근 해운업계의 세금탈루와 불법적인 외환거래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해운업계 전반에 걸쳐 형성된 '편의치적(便宜置籍)' 관행 때문이다.

편의치적이란 세금이나 인건비 절약 등을 위해 선주가 소유하고 있는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제3국에 명의로 등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주로 선진국에 해운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선주들은 홍콩, 파나마, 싱가포르, 필리핀, 라이베리아, 바하마 등 세율이 극히 낮거나 거의 없는 조세피난처 국가들의 현지법인 명의로 선박을 등록한 뒤 영업을 해오고 있다.

과세당국은 일부 해운업체가 상대적으로 높은 세금부담과 선원법 등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조세피난처 국가 명의로 선박을 등록시켜, 소득을 해외로 반출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지난 2011년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선박왕' 시도상선 권혁회장도 200여대의 대형 화물선 등을 홍콩 등 현지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등록시켜놓고 제대로 세금신고를 하지 않다가 무려 4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 받고 법정구속,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국세청과 관세청 양 기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의적인 세금탈루 의혹에 대해선 국세청이 사후검증을 통해 세금을 추징하고, 관세청은 외국환거래법에 위반되는 불법자금세탁 혐의를 조사를 강화하는 추세다.

▲편의치적, 무조건 탈세인가? = 그렇다면 수십년간 해운업계에 관행으로 굳어진 편의치적 방식을 모두 역외탈세 혐의가 적용되는 불법행위로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들과 세무·회계 전문가들은 과세당국의 시각과 상당히 다른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제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확인할 문제이지, 편의치적 자체가 탈세라는 인식은 와전(訛傳)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편의치적 자체를 탈세로 보는 것은 한참 잘못된 것"이라며 "실제로 선박수주나 거래과정에서 선박금융 문제로 파나마, 라이베이라 명의로 선적등록을 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설명했다.

세금탈루를 위해 고의적으로 선박명의를 제3국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선박 가격이 대체로 비싸서 대출을 끼고 사는 경우가 보편적이어서 이자와 원금을 완전히 지불할 때까지 중립지대 명의로 놓는 것을 원하는 거래 상대방이 상당히 많다는 것.

그는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대부분 조사를 받은 것 같은데, 실제로 이 문제로 세금이 추징된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사는 "우리나라는 선박을 취득할 때 약 4%의 취득세율이 적용되는데 배 1척에 수십~수백억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세금만 수억원이 넘어간다"며 "어짜피 운항을 해야될 배라면 세금을 거의 납부하지 않는 조세피난처에 선박을 등록하는 것은 정당한 의사결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안에서도 서울에 집을 지을지, 지방에 지을지는 개인의 의사선택이다. 지방의 취득세율이 싸다면 지방에 집을 짓는 게 맞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조세전문가는 "한국 세법에서도 파나마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는 자회자로 인정 된다"며 페이퍼컴퍼니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세당국, 당분간 과세기조 이어갈 듯 = 과세당국은 추후 법리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은 세무조사 후 과세처분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선주나 회사대표가 내국인이고 국내 거주가 분명한 상황에서 소득을 고의로 은폐하는 것은 명백한 탈세로 불법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해운업체는 보통 중견규모 이상이어서 보편적인 소득탈루 규모도 상당하기 때문에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일반인들과의 역차별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현재 해운업계 불법외환거래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분석과 조사를 하고 있다"며 "작년부터 해운업계 역외탈세 제보가 급증해 10여건 정도의 사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국세청과의 정보공유가 더 확대될 경우, 최근 밝혀낸 1500억원대 이상의 불법 역외탈세 사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세청 관계자도 "역외탈세 분야 조사강화는 이미 지난 업무보고를 통해 수차례 밝힌 내용"이라며 "비단 해운업체 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들도 역외탈세 혐의가 발견될 경우 사후검증을 통해 세금을 추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선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과세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과세당국이 세수 부족문제가 현실화 된 시점에서 적극적인 과세로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의구심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민감한 법률해석으로 과세를 미뤄왔던 태도를 바꿔 일단은 과세 후 법정 분쟁을 통해 결론을 얻겠다는 기류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류는 비단 편의치적 문제가 아니라 기타 세무조정 과정에서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업계 전반으로 파급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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