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권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소탈한 성격에 더해 해운실무에 정통한 고헌영 변호사.
국내 유수 해운선사인 고려해운 상근 변호사로 재직하면서 해상법과 다양한 해운실무를 연계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고헌영 변호사는 글로벌 선사들의 송사를 맡을 정도로 해상법 분야에서 주목받는 변호사다.
이에 고헌영 변호사를 만나 기억에 남는 송사 사건과 해상법 시장 전망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법무법인 나은 고헌영 변호사 |
수많은 해운클레임 경험 ‘큰 보탬’
Q. 변호사께선 국내 유수의 해운선사인 고려해운의 상근 변호사로 활동하시면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해상법률 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해운에 2년여 동안 근무하시면서 숱한 클레임 등을 다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먼저, 국내 해상분야의 경험과 지식 및 국제적 역량을 갖추신 저명한 해상 전문 변호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에 비하면 그 역량이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제가 감히 해상전문 변호사로 불리어 질 수 있을지 부끄럽기만합니다.
저에게는 해운회사의 사내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직접 해운실무를 겪은 변호사로서의 특이한 경험이 있을 뿐인데 지금은 여러 해운회사에서 많은 사내 변호사님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에 저의 현장 경험 역시 이제는 특별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고려해운에 근무하면서 현장 경험과 해운실무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례로서 기억되는 것은 수하인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검정보고서에 기초해 컨테이너에 내장된 화물의 수량이 부족하다거나 화물손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해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수령하고 이미 증거가 멸실된 이후 뒤늦게 보험사가 운송인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검정보고서의 증거력을 배척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명시적인 심증을 어렵게 탄핵, 보험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시킨 사건입니다.
이와함께 고려해운 선하증권 이면약관이 대한상사중재원 전속 중재조항 개정 전·후에 발행된 일련의 선하증권에 관한 소송에서 개정 전 선하증권에 관한 소송에선 제 1심 재판에서 전부 패소했으나 개정후 선하증권에 관한 중재 판정 과정에서 일람불신용장(At Sight L/C)을 가지고 기한부신용장이 가지는 금융효과를 얻기 위한 일종의 금융편법으로 선적일로부터 일정기간 동안 선적서류를 매입은행에 제시하지 않는 이른바 지연네고 거래를 용인한 은행의 과실을 입증해 일부 승소했습니다.
중재 판정부의 적극적인 인식 전환을 계기로 개정 전 선하증권에 관한 항소심 재판에서 다시 제 1심 판결의 결과를 뒤집고 일부 승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사건 모두 실무부서와의 원활한 의사교환과 적극적인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재판부에 직접 컨테이너의 일부를 절단한 실물을 제시해 시연하거나 해상운송 실무에 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으로 어렵사리 재판부를 설득시킨 결과였습니다.
Q. 세계 유수선사와 관련된 송사를 맡아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어떤 내용인지요.
외국선사와 국내 대형 화주 사이에 체결된 부산에서 아르헨티나 자라테항 까지의 장기운송계약 이행이 계약기간 도중 중단돼 화주가 선사를 상대로 잔여 계약기간에 해당하는 대체운임 등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으로서, 당시 해당선사로서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해운경기 불황에 따른 정기선사들의 항로 통폐합과 선박의 계선에 따른 선복감소 및 부에노스아이레스항에서 자라테항까지의 지선(피더) 서비스를 제공하던 선사가 자라테항의 극심한 항만적체 등의 사유로 해당노선의 운항을 중단함에 따라 부득이 화주와의 계약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중남미 시장의 운임이 계약당시보다 대폭 상승해 계약 운임과 대체운임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더욱 문제됐던 사안이었는데, 역시 피더 서비스 운송구조의 이해 및 알파라이너나 쉬핑가제트의 해운시황에 대한 관련 정보와 기사가 계약 중단 당시의 중남미 해운동향과 해운실무에 대한 재판부 및 화주의 인식전환에 큰 도움이 됐고 결국 화주가 소송을 취하하면서 선사가 손해배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잘 마무리됐습니다.
“해운물류업계 은어(?)를 이해한다”
Q. 해운선사에 재직하면서 해운선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습득한 것이 변호사님의 큰 자산이라 생각합니다. 현장감, 실무 경험이 있는 변호사들의 선호가 갈수록 커질 것 같습니다. 이와관련 변호사님의 견해는 ?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실무의 이해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비단 해운물류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고 해운물류 분야의 많은 의뢰인들이 화주나 변호사 상담 및 재판과정에서 해운물류에 관한 사실관계의 이해전달부터 많은 답답함을 느껴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해운물류 분야에 첫 발을 내 딘 경위도 도대체 사실관계 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어느 해운물류 관계자와의 상담이었고 해운물류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면서도 안개속처럼 도통 실무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막연함이 고려해운에 입사케 된 계기가 됐습니다.
또 고려해운에 입사해 부산-상해간을 운항하는 컨테이너선에 직접 승선해 선박운항의 실제와 각 항만에서의 선적·하역작업 과정 및 중국과 한국의 각 터미널 현장을 직접 겪어볼 수 있었고 해상운송을 매개로 한 부킹에서부터 선하증권의 발행, 교부와 관련된 문제들, 내륙운송의 구조나 컨테이너 및 화물의 포장과 고박(Securing)에 관한 문제들, 선적과 하역 작업 및 그 장비들의 구조에 관한 문제들, 장기 체화 화물의 처리나 화물인도, 운송물의 하자와 관련된 문제들과 신조·용선·공동운항·피더 등 선박 운용의 문제들, 부산신항 참여와 관련된 해운물류 관련 기업들의 이해 관계에 대한 문제들, 영업과 관련된 화주와의 문제들 그리고 운임회수의 문제들을 경험함으로써 비록 그 경험과 지식의 정도가 깊지는 못하지만 해운물류업계 그들만의 은어(?)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해운물류업계의 관계자들 역시 그들만의 은어를 알아듣는 변호사를 선호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 같습니다.
Q.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해운시황은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불황기에는 어떠한 사건들이 많은지요.
아무래도 해상의 특화 분야에서는 해운시황에 민감한 용선 분쟁과 조선 분쟁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해상의 일반 분야에서도 해외 파트너의 계약 불이행에 관한 분쟁과 운송계약의 불이행이나 불완전 이행의 분쟁과 운임에 관한 분쟁이 많아졌습니다.
Q. 우리나라 해운물류 분야 법률시장을 평가하신다면...
해운물류의 특성상 대부분의 해운관련 계약이 우리나라 법이 아닌 외국법에 기반을 둔 계약서에 의해 체결돼 외국 법원이나 외국 중재 관할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근 유명 영국 로펌의 서울사무소 대표자로 내정된 변호사님도 영국에서 해상분야의 파트너로 근무하신 분이고 이에 따른 해상분야에서의 한국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공략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제 1세대 변호사님들이 개척해 그 틀을 마련한 우리나라 해운물류 법률시장은 제 2세대 변호사님들을 통해 이론적으로 더 공고해 져서 많은 판례들이 축적되고 다시 역동적인 제 3세대 변호사님들을 통해 이론과 실무의 기반이 공고해졌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법원 역시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결과 신속한 재판진행으로 정평이 나 있고 대한상사중재원에 의한 해사중재 역시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해운물류 법률시장의 역량 또한 충분하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해외 로펌들의 적극적인 공략에 따라 불가피하게 해운물류기업들의 선호도가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고려해운이 적극적으로 선하증권 이면약관에 대한상사중재원의 전속적 중재조항을 규정함으로써 분쟁해결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기한 것은 우리나라 해운물류 법률시장의 역량을 반영하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시적인 법률자문체계 필요
Q. 해상 전문변호사로서 해운물류업계에 당부하고 싶은 바가 있으시다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해상전문 변호사라는 이름하에 인터뷰에 응하는 것 자체도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저의 해운물류에 관한 경험과 지식은 짧고 오히려 아직도 법률자문의 과정에서 해운물류업계로부터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얻고 있는데, 해운물류업계에 대한 당부라기보다는 제가 오히려 해운물류업계에 수업료를 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자문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해운 법률문제는 물론이고 민·상사 등 일반 법률 문제에 대해서도 수시로 자문을 구하면서 저를 아주 잘 활용하고 계신데, 자문대상의 범위나 자문계약의 범위를 불문한 상시 자문체계가 저로선 고문(拷問)이지만 회사로서는 자문(諮問)이 곧 이문(利文)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법률자문 비중으로 보자면 오히려 해상의 특정 법률 문제보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민·상사의 법률문제가 더 많고, 다른 해운물류 회사들도 기업으로서의 기업 법무에 대한 법률 수요가 클 것입니다. 아울러 그 기업 법무 또한 해운물류 실무와의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법무에서도 변호사와의 의사소통에 많은 애로를 겪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여건에 따라 사내 변호사를 확충하거나 상시적인 법률자문 체계를 통해서 분쟁의 초기단계에서 적절한 대응과 조치를 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물론 기업의 여건과 자문 대상 사안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호사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입니다. < 정창훈 편집국장 chjeo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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